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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보다 엄마’ 안시현 “사람들의 시선? 그게 두려웠다면…”
그를 다시 만난 건 꼭 10년 만이었다. 미국 LPGA 투어에 갓 데뷔한 2004년 봄에 만난 게 마지막이었다. ‘얼짱골퍼’라는 화려한 수식어 만큼이나 톡톡 튀었고 거침이 없었다. 그해 LPGA 신인왕도 그의 차지였다. 그리고 10년 후. 다시 마주한 그는 한결 성숙해져 있었다. 시원시원한 말투와 미소는 그대로였지만, 그간의 세월과 사연들이 그를 조금 달라보이게 한 것같다. ‘원조 신데렐라’ 안시현(30·골든블루)이 돌아왔다. 2011년 결혼과 동시에 필드를 떠났던 그가 지난해 말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시드전을 통과해 올시즌 복귀한다. 까마득한 후배들과 지옥의 레이스를 펼쳤던 안시현은 “겁먹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떨어지면 끝이라는 생각에 죽기 살기로 쳤다”며 웃었다.

▶도망치고 싶었던 골프 감옥, 삶의 빛이 되다=“그 당시 은퇴라는 말은 안했지만 사실상 은퇴였어요. 아이를 낳으면서 몸도 예전 같지 않으니까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죠. 기분이요? 너무 신났죠! 아, 드디어 해방이구나. 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골프에서 드디어 벗어났구나 했죠.” 열두살 때부터 시작한 골프는 ‘감옥’이었다. 친구 많고 노는 것 좋아하는 그에게 골프는 족쇄같았다. 얼마나 지긋지긋했으면 골프를 그만두자마자 갖고 있던 골프채들을 모두 처분했다. 하지만 방송인 마르코와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6월 파경에 이르렀고 그는 딸과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그때 그를 일으켜 세워준 건 다름아닌 골프였다. “일종의 돌파구였죠. 바람도 쐴 겸 연습장에 한 두 번 갔는데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수 시절 단 한 번도 재미있게 운동했던 적이 없었는데 이젠 좀 후회없이, 부끄럽지 않게 해보자 했죠. 나 자신에게도, 딸에게도.” 9월부터 본격 훈련에 들어갔다. 오전 6시에 일어나 인천 집에서 수원CC를 오가며 5시간씩 공을 쳤다. 무엇보다 체력훈련에 가장 힘을 쏟았다. 11월 ADT캡스챔피언십에 추천 선수로 첫 시험 무대에 올랐다. 2년 만의 복귀전에 많은 시선이 쏠렸다. “골프 시작하고 그렇게 긴장한 건 처음이었어요. LPGA에서도 떨지 않았었거든요. 첫 홀 티샷은 어떻게 쳤는지 기억도 안나요. 그러다 6번홀 쯤에서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이러다간 여태껏 준비한 거 물거품 되겠다, 정신차리자.” 그는 당당히 공동 9위에 올랐다. ‘골프천재’의 귀환을 알린 순간이었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꽃보다 엄마, 원조 신데렐라의 성장기=‘천재’라는 말에 그는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선수 때는 다른 사람들이 어렵다고 한 부분이 나는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열심히 안했던 것같다. 연습도 대회 때 경기장 가서 한 게 거의 전부였다”고 했다. 타고난 재능이 남다른 건 분명해 보였다. “예전엔 훈련 시간은 길었지만 연습은 거의 안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아이가 있잖아요. 시간을 잘 활용해야 아이랑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시간은 예전보다 훨씬 짧지만 집중도와 연습량은 두 배 이상이죠.” 세살박이 딸 그레이스는 안시현에게 최고의 보물이다. 딸 얘기가 나오자 얼굴이 꽃처럼 폈다. 휴대폰에 담긴 사진을 보여주며 연방 싱글벙글이다. 크레용팝 등 걸그룹 춤은 한번 보면 다 따라한다고 한다. “오랜만에 다시 운동하니 솔직히 많이 힘들어요. 괜히 시작했나 싶다가도 아이를 보면 힘이 나요. 딸의 웃음소리, ‘엄마’ 라는 한마디에 ‘아, 내가 이 맛에 사는구나’ 싶죠, 하하.” 케이블TV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서 여배우 윤여정은 말했다. “60세가 돼도 인생은 모른다. 이게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니까. 나도 67세는 처음이다. 처음이라 원래 다 아프고 서툰 것이다”고. 안시현도 그랬다. “골프도, 인생도, 결혼도 그땐 내가 너무 몰랐어요. 만약에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렇게는 안했을 거에요. 하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아요. 정말 예쁜 딸이 제 옆에 있으니까요.” 많은 관심은 때론 부담스러운 시선으로 상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이요? 그런 게 두려웠으면 골프를 다시 시작하지 않았겠죠. 저는 제 자신을 찾고 그래서 아이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겠다는 마음 뿐이에요.”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안시현의 ‘시즌2’ 테마는 ‘열심히, 그래서 후회없이’=3년 만의 동계훈련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에서 2개월 간 전지훈련을 한 후 3월 말 귀국할 예정이다. 오랜 공백으로 저하된 체력과 선수 시절의 감각. 이번 전훈에서 다시 찾고 싶은 두가지다.

“빨리 시즌이 시작됐으면 좋겠어요.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더 크죠. 오래 쉬었던 만큼 우승하고 싶은 마음도 크고. 내 플레이에서 뭐가 부족한지 빨리 알고 싶기도 하고. 워낙 잘 하는 후배들이 많아서 모두가 라이벌이에요. 일단 빨리 1승부터 하고 싶네요.“

처음 투어에 데뷔하는 신인 마냥 들떠 있었다. ‘원조 신데렐라’가 골프인생 제2막에 바라는 건 예상밖으로 소박했다. “안시현 정말 열심히 한다는 소리 듣고 싶어요. 예전엔 한번도 듣지 못했거든요.(웃음). 많이 달라지고 성숙해졌다는 얘기를 듣고 싶네요.”

그래도 뭔가 더 큰 꿈이 있지 않을까. 그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그렇게 멀리 보지 않아요. 얼마나 오래 할지도 잘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 골프를 그만둘 때 후회가 없도록 하기 위해 다시 시작한 거니까요. 열심히 할 거에요. 전 엄마잖아요. 엄마의 힘. 그게 제가 가진 가장 큰 무기죠.”

조범자 기자/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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