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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토불이 2.0> ⑦‘깍쟁이’ 뉴요커도 농사 짓는다
세계 금융ㆍ무역ㆍ상업ㆍ패션ㆍ예술의 중심 미국 뉴욕은 요즘 ‘촌스러워졌다’. 깎아지를 듯 솟은 마천루 위로 농촌에서나 볼 수 있는 상추ㆍ토마토ㆍ파프리카 등 농작물이 주렁주렁 열리고 있다. 초고층 빌딩의 옥상 위에는 헬리콥터 주차장 표식 대신 초록색 물결이 너울거린다. 지금 뉴욕은 씨를 뿌리면 그곳이 바로 논밭이 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변모하고 있다.

유행의 최첨단을 걷는 뉴요커들의 요즘 관심은 ‘로컬푸드’. 도심 자투리땅을 활용해 채소를 친환경 농법으로 기르고 인근 ‘농민시장’에 내다 파는 도시농부도 늘고 있다. 뉴욕뿐 아니라 파리, 런던 중심가에도 도시농장이 등장했고, 시민공원ㆍ주택가ㆍ관공서 건물에는 꿀벌을 길러 벌꿀을 채집하는 ‘도심양봉’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카리브해의 더운 ‘재즈’의 나라 쿠바부터 동토의 땅 ‘러시아’까지 각국이 도시농업의 싹을 틔우고 있다.


▶뉴욕의 ‘핫플레이스’는 소호 아닌 옥상농장=뉴욕 상업중심가 맨해튼 주변에는 ‘로컬푸드’ 식당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이들 식당은 식재료를 인근 빌딩 옥상이나 겨우 한 블록 떨어진 ‘농민시장(농산물 직매장)’에서 구한다. 뉴욕 맨해튼의 알렉산드리아센터가 대표적이다. 2010년 완공된 이 건물은 애초 생명과학 콤플렉스로 지어졌지만 경제위기 여파로 개발사가 시행을 중단, 방치되자 유휴 공간에 신선한 채소나 심어보자는 단순한 아이디어 하나로 근사한 도시 미관을 자랑하는 ‘리버파크팜’으로 거듭났다.

뉴욕에는 이런 옥상농장이 여럿이다. 롱아일랜드 퀸스의 옛 공업시설은 지금은 사방 12㎞에 이르는 미국 최대 옥상농장 ‘브루클린 그레인지’로 더 유명하다. 이곳에선 콩과 무우 등 40여가지 채소가 친환경 농법으로 자라나고 있다. 레드후크에 있는 ‘애디드밸류’는 비영리 농장으로, 브루클린 남부에 사는 14~19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예비 농경인을 육성함으로써 청년 고용에도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이 밖에 농구 코트를 농장으로 바꾼 ‘텐스에이커팜’ ‘배터리어번팜’ ‘고담그린스’ 등이 뉴욕시민에게 신선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농장들은 친환경 재배법을 쓰지만 굳이 미국 농무부의 유기농 인증을 받지 않는다. 가격 인상 요인을 피하기 위해서다. 옥상 환경에 맞게 고안된 용수와 배수 시스템, 온ㆍ습도 조절장치 등은 새로운 농경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농장은 대부분 시민을 위해 개방해 공원 역할도 한다.


▶파리 국회의사당의 명물 꿀벌=지난해 4월 클로드 바르톨론 프랑스 하원 의장은 파리에 있는 국회의사당 옥상에서 벌통을 집어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프랑스 국회는 무농약 꿀 홍보 차원에서 대형 벌통 3개를 설치했고, 이곳에서 매년 150㎏의 천연 꿀을 생산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도심양봉은 런던, 파리, 도쿄, 워싱턴 등 세계 주요 대도시에서 활기를 띠고 있다. 빌딩 사이를 오가는 꿀벌은 친환경 도시의 상징물로 여겨진다. 대기오염 등의 이유로 개체 수가 줄어든 꿀벌을 도심에서 길러 청정함을 입증하고 도심농장의 농작물 재배에 필요한 수분(受粉)까지 돕도록 한다. 특히 환경운동에 관심이 많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양봉은 최고의 취미로 손꼽힌다. 뉴욕에선 2010년에 도심양봉을 금지하는 법안이 폐지되면서 이듬해 100여명이 새롭게 양봉에 뛰어들었다. 영국양봉협회에 따르면 2011년 기준 북런던 지역 양봉인구가 170명을 넘어섰다.


▶독일 ‘클라인가르텐’, 일본 ‘시민공원’, 러시아 ‘다차’=도심공원이 내 텃밭이라면? 이런 소박한 꿈이 일본 독일 러시아에서 소규모 농장형태로 실현되고 있다. 일본 도쿄도에 위치한 아다치구(足立區) 도시농업공원과 가와사키시(川崎市) 시민농원이 대표적이다. 아다치구 도시농업공원에선 벼농사는 물론, 감자ㆍ토마토 등 각종 과일과 채소를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데에 연간 이용객이 26만명에 이른다. 매월 넷째 주 일요일에는 지자체와 연계해 직거래장터가 열린다.

가와사키시 시민농원은 농지 보존 차원에 조성됐다. 시민농원ㆍ시민팜농원ㆍ체험형 농원ㆍ지역 교류농원 등 4개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 시민농원이 인기가 가장 많다. 시 당국은 시민농원을 10㎡씩 분할해 1000여개의 구획으로 나눠 2년마다 분양한다. 시민들은 연간 일정 금액의 이용료를 내고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러시아인들은 금요일 저녁이면 ‘다차’로 떠나 주말을 그곳에서 보낸다. ‘다차’는 통나무로 만든 집과 텃밭이 딸린 별장 격이다. 러시아 도시인 70%가 ‘다차’를 소유하고 있다. ‘다차’는 19세기 제정러시아 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이지만 1970년대 정부 차원에 희망하는 직장인들에게 600㎡의 땅을 무상으로 공급하면서 서민들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작은 농원’이란 뜻의 독일 ‘클라인가르텐’의 회원 수는 1200만명으로, 전체 가구의 10%가 이를 이용하고 있다. 구획당 60~120평 규모의 토지를 회원제로 임대하는 방식이다. 1구획에 연간 45유로만 내면 자녀와 함께 채소ㆍ꽃 등을 심고 기를 수 있다.

▶ ‘생태도시’ 쿠바 아바나=자립 자족형 농업도시도 있다. 카리브해 최대 항구도시인 쿠바의 수도 아바나는 시민이 먹는 채소와 과일 100%를 현지에서 조달한다. 쿠바 전체 인구의 5분의 1인 인구 220만명이 도시농업만으로 영양분을 공급받는 셈이다.

아바나의 도시농업은 아픈 역사에서 출발했다. 1990년대 소련 붕괴와 미국의 경제 봉쇄로 식료품과 연료 공급이 끊기자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쿠바인들이 속출했다. 몸무게가 급격히 줄고 영양 부족으로 실명하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이에 대한 고육지책으로 생겨난 것이 바로 아바나의 도시 농업이다. 쿠바인들은 콘크리트에서도 재배 가능한 ‘유기농법’을 개발하고 건물 옥상이나 주차장 등 약간의 공간만 생겨도 바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이 같은 아바나 시내의 농지는 전체 도시 면적의 40%에 달한다. 도시농업 종사자도 2만6000여명으로, 시 전체 고용의 7%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한지숙ㆍ천예선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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