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게임
  • [휴먼다큐]MMORPG의 아버지 송재경 “인류 전체로 봤을 때는 남는 건 게임 밖에 없을 것”

  • 기사입력 2014-01-09 06:34
    • 프린트
    • 메일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헤럴드경제=서지혜 기자] “게임은 최첨단의 엔터테인먼트....인류 전체로 봤을 때는 가장 마지막까지 남게 될 겁니다.”

한 사업가가 다소 놀랍고도 의외의 예언을 했다. 그는 “미래 세계에는 운전조차도 인간이 직접하지 않고 로봇이 하잖아요”라며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많이 줄어들고 결국 사람들이 할 일은 게임 뿐일걸요”라고 말했다.

어눌한 말투에, 덥수룩한 머리를 한 이 사람은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 엑스엘게임즈는 다소 생소한 기업이지만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의 개발자라고 하면 90년대를 추억하는 30~40대는 금방 알아차린다.

한국에 ‘온라인 게임’이라는 산업군을 만든 주인공, MMORPG의 아버지, 그를 표현하는 차고 넘치는 수식어들을 보면 그의 예언에 신뢰가 간다. 온라인이라는 가상세계에서 아기자기한 캐릭터로 빙의해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과 게임을 하고 대화를 하는 세계최초의 그래픽상용화 MMORPG ‘바람의 나라’를 만들고 트랜드를 선도한 그이기 때문이다.

송 대표는 업계에서 게임을 둘러싼 각종 논란에 ‘유일하게’ 할 말을 하는 사람이다. 지난해 11월 지스타에서 MMORPG ‘아키에이지’로 게임 대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그는 “17~18년 전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대한민국에 게임산업이라는 것이 없었다, 또 특혜를 받은 적도, 보호를 받은 적도 없다. 오히려 역차별과 규제 속에서 세계 정상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했다”며 후배들에게 자부심을 가질 것을 독려했다. 절친한 사이인 김정주 넥슨 회장도,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도 하지 못한 말이었다. 한국 게임산업이 곧 송재경의 인생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게임에 대한 선견지명으로 지난 20여년 간 국내 게임 산업의 중심이 되어왔던 ‘개발자’ 송재경이 최근 러시아, 중국에 진출하며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사업가로서는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잘 만든 게임인만큼 자신이 있다”며 옹골찬 모습을 보이고 있다.

▶‘평범함’에서 ‘비범함’으로= “제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수줍음이 많았어요.” 송 대표는 유년시절 하루동안 하는 말이 채 열마디가 되지 않는 내성적인 학생이었다. 60명 가량 되는 학급에서 4~5등 정도를 하는 비범하지도, 뒤쳐지지도 않는 평범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어떻게 서울대를 갔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 3때 열한시까지 하는 야간자율학습을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더니 졸업할 때는 전교 1등을 하더라”고 말했다. 스스로 비범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비상한 재주를 갖고 있는 것만큼 분명하다.

그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90년대 초반은 한국에 막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기다. 부유하지 않았던 가정환경 탓에 집에 컴퓨터는 없었지만 컴퓨터를 갖고 있는 친척이나 친구 집을 방문할 때마다 어떻게는 컴퓨터를 해 보고자 하면서 흥미를 갖게 됐다. 책을 보면서 ‘베이직’ 등으로 간단한 프로그램을 짜는 데 취미를 붙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수백 페이지의 프로그래밍 책을 읽으면서 컴퓨터의 세계에 빠지기 시작했다.

1986년 그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서 김정주 현 NXC(넥슨 창업자) 대표를 만난다. 두 사람은 다양한 게임을 제작해보면서 본격적인 프로그래머 인생을 시작했다. 대학교 4학년 때 송재경은 카이스트에 입학해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인 전길남 박사를 만난다. 이곳에서 송재경은 유닉스에서 한글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 등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카이스트 전산과 학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유망해진다. 송 대표는 “모두가 왜 카이스트 씩이나 들어와서 게임을 만드냐고 말할 때 전 교수는 많은 것을 이해해주고 조언해줬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 때까지도 그는 게임개발자는 아니었고, 게임을 좋아하는 프로그래머였을 뿐이다. 그러다 1992년 카이스트 박사 과정에 진학해 우연히 당시 유행하던 머드게임을 처음 접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당시의 온라인 머드 게임은 채팅을 하면서 게임을 하는 방식으로 텍스트로 게임이 구현되는 방식이었다. 송 대표 역시 머드 게임에 빠졌지만 “텍스트를 이미지로 구현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송재경의 게임인생’이 시작됐다.

송 대표는 1993년 박사 과정을 중퇴하고 한글과 컴퓨터에 입사한다. 이곳에서 x-윈도 코딩 관련 업무를 맡으며 프로그래머 인생을 살아가던 중 ‘주라기 공원’이라는 텍스트 머드 게임을 제작하게 된다. 삼정데이터 서비스의 오충용 대표가 제안해 천리안을 통해 서비스된 이 게임은 한 달에 5000만 원 가량의 수익을 올리는 히트 게임이 된다.

천재프로그래머가 MMORPG의 아버지로= 주라기공원 프로젝트가 끝난 후 송재경은 문자로만 이루어지는 머드 게임을 모두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이 돌아다니며 각종 작업을 수행하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온라인 게임의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가 몸담고 있는 한글과컴퓨터는 온라인 게임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카이스트 박사과정을 때려쳤을 때처럼 그는 회사를 과감하게 퇴사하고 1년 늦게 카이스트에 입학한 김정주 대표를 찾아간다.

두 사람은 서울대 재학시절부터 궁합이 잘 맞았다. 송 대표보다 1년 늦게 카이스트에 입학한 김 대표와 함께 카이스트 실험실에서 가상세계와 MMORPG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미래의 꿈을 키웠다. 김 대표가 레밍스, 심시티 등 당시 인기 게임을 구해 오면 두 사람이 함께 밤새 게임을 해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꿈을 키우는 식이었다. 송 대표는 “정주는 심시티처럼 머리 쓰는 게임을 좋아했고. 가끔 레밍스, 심시티 등 인기 게임을 구해 오면 같이 밤새 게임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며 “하지만 20대가 사업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그러진 않았고 학교 다닐 때는 단지 게임을 좋아하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한글과컴퓨터를 퇴사한 후 두 사람은 1994년 서울대 컴퓨터 관련 동호회 출신으로부터 5000만 원 가량을 투자받아 역삼동에 작은 사무실을 차린다. 국내 최대 게임사 ‘넥슨’과 ‘바람의 나라’가 이 회사에서 시작된다. 두 사람은 김진 작가의 역사 판타지 만화 ‘바람의 나라’를 콘텐츠로 해서 게임을 설정하기 시작했다. 송재경은 프로그래밍을, 김정주는 사업을 담당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도 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지는 않았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모여 게임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투자를 받아 게임을 개발하는 식이었지만 투자를 받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서울대-카이스트씩이나 나와서 게임을 만들고 있느냐는 질타는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송 대표는 “돈을 벌기보다는 정말 게임을 좋아서 시작하게 됐다”며 “지도교수였던 전길남 교수님이 여러가지로 조언해주시고 몇몇 선배들이 도와주신 덕에 사업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전 교수는 인터넷 히스토리 프로젝트를 하면서 국내 인터넷 역사를 정리하는 프로젝트에 온라인 게임 분야를 송 대표에게 감수를 맡겼다. 송 대표는 이 프로젝트에서 피드백을 하면서 국내 인터넷의 역사를 기록하며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바람의 나라 개발 이후 공식 서비스를 목전에 두고 송 대표는 돌연 넥슨을 퇴사한다. 이후 넥슨은 서민 현 넥슨코리아 대표를 후임 프로그래머로 고용했고 송 대표는 아이네트에 입사해 새로운 그래픽 머드 게임 개발을 시작한다. 역시 신일숙 작가의 만화 ‘리니지’를 배경으로 했다. 15년간 국내 온라인 게임의 상징이 된 ‘리니지’의 모태다. 송 대표는 신일숙 작가를 찾아가 리니지 사용 허가를 따내고 개발에 착수한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를 만난 것도 이 무렵이다. IMF가 터지면서 아이네트 역시 경영 악화 상황에 빠지고, 불확실한 게임 사업에 투자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김 대표로부터 스카웃 제의가 들어온 것. 한글과 컴퓨터에 근무할 당시 현대정보기술에 재직중이던 김 대표가 송 대표를 눈여겨본 것이다. 송재경은 리니지를 들고 엔씨소프트로 가서 1998년 11월 출시한다.

김정주 대표는 지난 해 제주도 넥슨컴퓨터박물관 개관식에서 “바람의 나라 원년 멤버들과 함께 바람의 나라를 복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엔씨소프트도 최근 리니지 15주년 기념 행사를 하는 등, 송 대표가 직접 개발한 두 게임은 여전히 국내 온라인 게임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축이다. 송 대표는 “엔씨소프트에서 15주년 기념 행사를 할 때 김택진 대표도 참석하지 않고 해서 약간 서자 취급을 받는건가 하는 아쉬움도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사실 리니지는 현재 엔씨소프트에 남아서 열심히 하신 분들의 공로로 지금까지 이어졌고, 최근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것 같아 뿌듯하다”며 아들 같은 게임에 대한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리니지가 막 개발되던 시기 가장 큰 경쟁자는 바람의 나라였을 정도니, 결국 제가 게임을 잘 만든 탓 아니겠어요”라고 말하는 여유를 잊지 않았다.

▶“돈 버는 재주는 없나보다”... 엑스엘게임즈 대표라는 명함= 엔씨소프트 부사장으로 재임하던 송재경은 2002년 김택진 대표와의 불화로 엔씨소프트를 퇴사한다. 송 대표는 “에피소드가 있지만 사소한 일이었다”며 말을 아꼈다. 당시 리니지 차기작이었던 ‘리니지포에버’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던 송재경은 퇴사 직후 엑스엘게임즈를 설립한다. 처음으로 자신만의 사업을 하게 된 것. 이때부터 그의 인생에 처음으로 역경이 다가왔다. 리니지 프로젝트를 함께 한 직원들과 꾸린 회사에서 창립 3년 만에 XL1이라는 레이싱 게임을 세상에 내놨지만 흥행에 실패했다. 송 대표는 처음 게임 개발을 시작할 때처럼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한다. 당시 유행에 맞춰 레이싱 게임 개발을 했지만 잘 되지 않았던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좋아하고 잘 할 수 잇는 일인 MMORPG 개발에 착수한 것. 2006년부터 시작된 아키에이지 개발에는 꼬박 6년이 걸렸다. 투입된 자금은 400억 원이고 500여 명의 인력이 투입됐다. 그렇게 아키에이지는 지난 1월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키에이지는 그가 그간 개발한 작품들에 비하면 큰 히트를 치지 못했다. 올해 국내 게임 시장은 모바일로 급격히 전환됐고, 모바일 기기가 PC 시장을 잠식하면서 온라인 게임 시장이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키에이지 출시는 큰 모험이었다. 결국 엑스엘게임즈는 최근 가슴아픈 구조조정을 단행, 전체의 30% 가량의 인력을 감축했다.

송 대표는 “제가 개발 능력만큼 돈 버는 재주는 없는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그는 “최근 러시아에서 시범 서비스를 시작한 게 반응이 폭발적”이라며 “러시아는 겨울 시즌이 중요한만큼 개발팀에서 죽는 소리를 하지만 채찍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발자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지 10여년, 이제는 더 이상 의견 충돌로 회사를 퇴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님을 인정하는 느낌이다.

아키에이지는 오는 15일 서비스 1주년을 맞는다. 최근 엑스엘게임즈 신년사를 통해 그는 “대규모의 업데이트를 통해 아키에이지를 다시 태어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아키에이지는 러시아 뿐 아니라 중국 등 국가에서 해외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대륙을 공략해 MMORPG 신화를 다시 쓰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세계적 인기 게임 문명 온라인의 비공개 테스트도 준비 중이며 새로운 RPG 장르의 모바일 게임도 준비 중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온라인 게임 산업은 송재경이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잠시 주춤했던 그가 10조 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국내 게임산업에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지 주목된다.

gyelove@heraldcorp.com
포토슬라이드
  • '돌아온 트와이스'
    '돌아온 트와이스'
  • '건강미 넘치는 머슬마니아 선수들'
    '건강미 넘치는 머슬마니아 선수들'
  • '테이프로 만든 옷(?)'
    '테이프로 만든 옷(?)'
  • 'World Bodypainting Festival'
    'World Bodypainting Festival'
핫 클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