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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기자의 구걸 체험, 타워팰리스에선…
[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차갑습니다. 유난히 춥다는 올 겨울은 예전 보다 더 빨리 찾아온다고 합니다. 걸인, 노숙인 등 세상 언저리에 선 사람들에겐 견디기 힘든 계절입니다. 지난 3월부터는 구걸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법이 새로 생겼다고 합니다. 이런 변화를 알고 있는 걸인들이 얼마나 될 지 모르겠으나, 청천벽력같은 소리일 것입니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入冬)을 이틀 앞둔 11월 5일 기자는 걸인의 모습을 하고 명동, 강남, 경찰청 등에서 구걸을 해봤습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오전 11시께 서울 명동, 명동길 명동예술극장 앞에서 구걸을 시작했습니다. 기자는 슬리퍼에 때묻은 트레이닝 바지, 헤어진 자켓차림으로 나섰습니다. ‘몸이 많이 아픕니다. 일어설수 있게 도와주세요’라는 팻말과 구걸통을 챙겨 거리에 엎드렸습니다. 

구걸체험.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경멸의 시선이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사람’이기 보다 길바닥에 뒹구는 ‘휴지 조각’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낮은 곳에서 올려다 본 세상은 까마득했습니다.

멀리서부터 기자를 발견한 행인들은 방향을 틀어 걸어갔습니다. 아이와 함께 나선 부모들은 구걸하는 기자를 보자 아이의 손을 꼭 잡아 쥐었습니다. 그 아이는 멀어져가며 자꾸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돈통을 차고 걸어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외로움, 경멸의 시선에 어느정도 익숙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행인을 향해 구걸통을 뻗어보기도 하고 아파오는 무릎을 펴보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식당으로 향하는 행인들의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여전히 구걸통은 비어 있었습니다. 2시간가량 구걸을 하며 세상 인심의 각박함을 느꼈습니다.

자리를 옮기려는 찰나, 갑자기 정장을 입은 60대 후반의 할머니가 불쑥 나타났습니다. 할머니는 “어디가 그렇게 아픕니까. 젊은 사람이…”라는 말을 건냈습니다. 1000원 짜리 한 장을 넣고 가던 길을 가던 할머니는 자꾸 뒤를 돌아봤습니다. 


갑자기 사람들이 쏟아졌습니다. 수학여행 중인 듯한 교복차림의 일본인 남학생이 4명이 다가 왔습니다. “도조(‘괜찮아요ㆍ받으세요ㆍ부디’라는 뜻)”라는 말을 하며, 가지고 있던 동전과 지폐 한 장을 넣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가방을 맨 젊은 학생,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벙거지 모자의 할아버지, 손을 잡고 아내와 데이트에 나선 중년 남성, 백팩을 둘러맨 청바지 차림의 젊은 학생의 손길이 이어졌습니다. 이들은 총 9800원을 놓고 갔습니다. 이들 모두는 구걸통에 돈을 넣기 위해 무릎과 때로는 허리를 굽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코끝이 아려왔습니다.

쌓여가는 돈을 보며 조금의 용기가 생겼습니다. ‘배가 고프다‘며, 식당 문을 두드리는 적극적인 구걸행위에 나서 보기로 했습니다. 김밥집, 한정식집, 막국수집 등 총 7군데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배가 고프다’는 말을 건네기까지 몇번의 망설임이 필요했지만, 돌아오는 건 싸늘한 표정과 ‘손사래’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직원이다”, “아직 개시도 안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토스트 굽는 냄새를 따라 한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배가 고프다. 좀 도와달라”는 말을 건넸습니다. 종업원들은 사장의 눈빛을 살폈습니다. 사장님이 “하나 구워드려”라는 말을 했습니다. 얼굴에 뜨거운 기운이 올라왔습니다.

오후 3시께 부유층이 많다는 강남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도곡동 타워팰리스 앞으로 옮겨 구걸행위를 하기로 했습니다. 타워팰리스 1차 정문 앞에 엎드렸습니다. 30분 쯤 흘렀을까. 곧 검정색 정장 차림의 경비원이 다가왔습니다.

경비원은 “이러시면 안된다. 상황실에서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고 연락이 왔다“라며 빨리 옮겨갈 것을 요구했습니다. “여기는 길이지 타워팰리스가 아니잖느냐”고 말하자, “여기까지 우리가 관리하는 곳이다. 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타워팰리스는 걸인이 잠시라도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는 서대문구에 있는 경찰청 앞으로 옮겨봤습니다.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부터 구걸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경범죄처벌법 개정안이 통과돼 현재 시행 중입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경범죄처벌법이 개정된 지난 3월부터 10월말까지 구걸행위로 인해 처벌 받은 사람은 280명이며, 이중 248명이 통행에 방해를 주다 처벌받았습니다.

개정안이 통과될 당시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중세에 있을 법한 법이다’, ‘복지국가에서 전근대국가로 뒷걸음질 쳤다’는 주장이 나왔었습니다. 이에 경찰청 관계자는 “처벌 된 사람은 대부분 적극적으로 구걸행위를 하는 사람이다. 단순하게 길가에서 구걸통을 놓고 구걸을 하는 행위는 처벌받지 않는다”면서, “지하철 등에서 메모를 주며 구걸 하는 행위, 돈을 주지 않으면 욕을 하는 사람 등이 그 처벌 대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처벌된 사람 모두, 적극적인 구걸행위를 하다 처벌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정문에서 50여m 떨어진 곳에서 엎드리자 마자, 정문을 지키던 의경이 다가 왔습니다. 의경은 “여기는 경찰청 앞이니, 여기서 이러지 말고 다른곳에서 해라”고 말했습니다. 못가겠다고 버텼습니다. 10분 뒤 다시 찾아온 의경은 “순찰차를 부를 수밖에 없다”며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말했습니다. 20여분 정도 흐른 뒤 서대문 경찰서에서 순찰차가 왔습니다. 경찰은 “ 구걸행위는 불법이다. 딱지 물릴 수 밖에 없다. 이번에 한 번 봐주겠으니 딴데로 옮겨라”고 말했습니다. 기자가 “내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하자, “그러면 싸우자는 것 밖에 더 되냐, 딴 데로 옮기시라”면서, 주민등록증을 요구하며 신원조회를 했습니다. 신분을 밝히며, “통행에 방해를 주지 않았는데, 왜 범칙금을 부과하려 했냐”고 묻자, “(의경의) 신고가 들어왔기 때문에, ‘통행에 불편을 주고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법 적용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보였습니다.

한 나절 동안 이어진 구걸행위는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차가운 시선에 몸서리 쳤지만, 허리를 굽힌채 넣어주는 동전과 한마디씩 건내는 말들은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아직 세상은 살만한가 봅니다.

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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