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윤석남 “그것이 나무든,동물이든,사람이든 함부로 재단하지말자”
[헤럴드경제= 이영란 선임기자] 윤석남(74)은 한국의 ‘여성주의 미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가이다. 지난 1993년 ‘어머니의 눈’, 1996년 ‘핑크룸’ 등 그가 선보인 일련의 작품은 이 땅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팍팍하고도 억압받는 삶을 드러낸 강렬한 작업이었다.

이후로도 그는 어머니의 모성과 강인함, 현대여성의 불안한 내면을 포착하며 억눌려 지내온 여성들을 복권시켰다. 낡은 빨래판에 그려진 어머니의 초상, 여성용을 상징하는 핑크빛 의자에 뾰족하게 솟은 대못 등은 주체적 존재임에도 존엄성을 짓밟힌채 살아가는 여성의 실존을 표현한 의미있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후 윤석남은 버려진 반려견 1025마리를 나무판에 깎고 그린 설치작업 ‘1025:사람과 사람없이’(2008)을 선보이며 여성 이야기를 생명 이야기로 확장시켰고, 일흔을 넘어서며 투쟁적 작업에서 화합과 치유의 작업으로 차분히 선회하고 있다.

윤석남이 서울 소격동의 학고재갤러리(대표 우찬규)에서 개인전을 개막했다. 전시부제는 ‘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 독특한 타이틀에 대해 작가는 “사람들은 미지의 것이 나타나면 즉각적으로 이름을 붙이고 이를 재단한다. 당연한 듯 만물을 규정하곤 하는데 그것은 오만이다. 소나무는 정작 자신이 소나무라는 사실을 모를 뿐더러, 일방적으로 명명되는 걸 원치 않을 수 있다. 나 자신 여성주의 미술가로 규정되는 걸 원치않듯 말이다”. 

윤석남 그린 룸, 2013 혼합재료. [사진제공=학고재]
윤석남 너와25, 우연이 아닙니다,필연입니다. 2013 [사진제공=학고재]


윤석남은 이번에 인간의 편의를 위해 모든 사물에 이름이 붙여짐으로써 그 의미가 일방적으로 규정되고, 분류되는 현실을 꿰뚫은 작업을 내놓았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임을 자임하며 자연을 정복하고, 문명을 발전시켰다고 믿지만 이는 지극히 이기적 사고일 뿐,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있는 작업이다.

전시는 세 파트로 구성됐다. 과거 선보였던 ‘방(房)’시리즈의 연작인 ‘그린룸’과 ‘화이트룸’, 그리고 ‘너와 작업’이다. 녹색 한지로 방 전체를 꾸민 ‘그린 룸’은 자연을 훼손하는 인간의 행동을 환기시키며, 자연 속 동식물의 영혼을 달래는 방이다. 윤석남은 나비, 학, 부엉이, 꽃, 나무, 물결 등 자연의 형상을 가로세로 30cm의 사각한지에 오려 벽에 무수히 붙였고, 바닥엔 녹색의 구슬을 깔았다. 또 연꽃이 그려진 테이블과 의자를 곁들였다. 연꽃은 생명과 부활을 상징하며, 자연 회복을 소망하는 작가의 염원을 은유하기도 한다. 

윤석남 너와18, 눈 뜨고 꿈꾸다. 2013 [사진제공=학고재]
윤석남 화이트 룸-어머니의 뜰. 2013 혼합재료 [사진제공=학고재]


갤러리 초입에 꾸며진 ‘화이트 룸-어머니의 뜰’은 ‘어머니’에게 바치는 만가(輓歌)이자, 인간이란 존재가 죽음 이후 ‘빛’이 되리라는 긍정의 시선을 품은 작업이다. 윤석남은 사람이 죽으면 흰 빛으로 남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고요한 흰색 방을 꾸몄다.

한편 기와를 구하기 힘들었던 강원도 화전민들이 나무판자로 기와를 대신했던 ‘너와’에 모필로 인물을 그려넣은 ‘너와’연작도 출품됐다. 용도폐기된 너와의 나뭇결과 옹이를 그대로 살려가며 그 위에 최소한의 붓질로 여인의 초상을 그려넣은 40여점의 작품은 그 질박한 진솔함이 보는 이의 마음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킨다. 버려진 너와에 새로운 생명의 불씨를 지핀 윤석남의 작업은 11월 24일까지 감상할 수 있다. 02)720-1524 

yrlee@heraldcorp.com

작가 윤석남 [사진제공=학고재]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