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00년, 패션은 얼마나 극적이고 도전적인 모습을 띠게 될까. 컴퓨터가 옷에 장착돼 버튼 하나만 누르면 무늬가 바뀌는 스커트처럼 말이다.
하지만 패션은 더이상 ‘초현대’를 향해서만은 가진 않을 듯 하다는 게 중론이다.어떤 때는 오히려 질주하는 세계를 멈춰 세우고, 근본적 변화의 역할을 마다 않는다. 옷 역시 마냥 변하는 것보다는 사회적 책임과 공존의 가치를 담아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흔한 마케팅 구호가 된 ‘에코 프렌들리(Eco-friendlyㆍ친환경)’와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ㆍ협업). 패션에 일고 있는 이 바람은 근본적으로 ‘책임과 공존’에 대한 고민이 바탕에 깔려 있다. 당연히 큰 틀의 문화 측면에서 보면 이 두 키워드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기업이 ‘디자인 강자’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옷을 SPA 브랜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는 소식에 전세계 트렌드세터들은 열광했다. 서울, 도쿄, 베이징의 H&M 매장 앞에는 이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이 행렬을 이뤘다. 루이비통, 샤넬 등 하이엔드 브랜드 앞에서 그랬듯이 고객들은 몇 시간전부터 긴 줄을 섰다. ‘줄세우기’ 마케팅이라는 비난도 일었지만, 밑바탕엔 이 패션기업의 브랜드파워, 즉 ‘디자인 파워’가 있었다. |
‘에코 프렌들리’ 패션은 어쩌면 1960년대 초 미국 히피족들이 스타트를 끊었는지 모른다. 그들은 ‘싸우지 말고 사랑을 하자(Make love, not war)’라고 외치며, 세련되고 번지르르한 스타일을 거부했다. 또 이미 자연에 해를 주지 않는 삶, 이른바 ‘지속가능성’의 개념을 채택했다. 하지만 이것이 주류 패션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 기후변화, 살충제 사용, 오염과 폐기물 등 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문제들에 대해 소비자들이 본격적인 각성을 일으킨 것은 1990년대부터다. 패션업계가 친환경 의류, 즉 ‘에코 패션’으로 대응한 것이 일조했다는 평가다.
아이러니하게도 21세기 대표 ‘디자인 강자’는 일명 ‘패스트 패션’이라고 불리는 SPA(제조ㆍ유통 일괄형)브랜드에서 탄생했다.
스웨덴 패션업체 ‘H&M’은 서로 상충하는 두 가지 영역(패스트 패션과 에코 패션)을 공존시켰다. 눈에 보이는 실제 옷 디자인과 눈에 보이지 않는 ‘이미지 디자인’이라는 두 토끼를 잡는 전략을 펼쳤기 때문이다. SPA브랜드는 대량 생산과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소비를 조장, ‘반환경적’이라는 비난을 받곤 하는데, H&M은 이를 정면 돌파했다. 부정적 이미지의 근원을 건드린 것이다. 유기농 면화 등 친환경 직물 사용을 늘리고 ‘환경주의’ 디자이너로 명성을 얻고 있는 스텔라 매카트니와 디자인 ‘콜라보레이션(협업)’을 했다. ‘에코 패션은 소재의 제약 때문에 덜 예쁘고, 가격은 비싸다’라는 편견을 불식시켰다. 영국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의 옷은 ‘친환경’이라는 수식어를 떼고 보아도 디자인적으로 훌륭해 헐리우드 스타 등 전세계 유명인의 사랑을 받는다. 이 협업으로 매카트니는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졌고, H&M은 세련된 ‘에코패션’ 이미지를 얻었다. 디자인업계에서의 대표적 ‘윈-윈’으로 평가 받는다.
상당수 패션기업들이 친환경, 공정무역, 윤리적 소비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대부분 주목도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 수단일 뿐 실천적인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또 ‘협업’도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단발성 이벤트에 그치면서 ‘상생‘의 가치를 담아내며 브랜드 이미지를 ‘디자인’ 하지 못한다는 한계론도 일각에선 나온다.
이같은 가운데 H&M이 이미지ㆍ매출 상승의 효과를 톡톡히 본 ‘협업’에 더욱 속도를 내며, 지속적인 디자인 업그레이드를 단행한 것은 놀랍다. 칼 라거펠트, 베르사체, 소니아 리키엘, 마르니, 마르지엘라, 이자벨 마랑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 그리고 ‘하이엔드(고급)’ 브랜드와의 만남을 이어갔다.
또 ‘친환경’ 운동은 ‘컨셔스 액션(Conscious Actionsㆍ보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일련의 활동)’ 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이 브랜드 관계자는 “2020년까지 제품 전량을 유기농 면으로 대체한다는 가시적 계획 뿐 아니라 ‘의식 있는 소비자’를 양산해 내는데에 패션기업으로서의 최종 목표를 세웠다”고 했다.
기업은 친환경 소재의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사람들은 수동적이지만 일차적으로 환경보호에 기여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후 옷을 통해 환경오염, 기후변화 등 인류를 위협하는 모든 것을 ‘인식’까지 하는 것. 이것은 H&M의 옷(컨셔스 컬렉션)을 입음으로써 변화를 체험하고, 과감하게 그 변화속에 동참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질수 있게도 된다. 이것이 패션기업 H&M이 꿈꾸는 ‘컨셔스 액션’이다.
이같은 H&M 케이스는 글로벌 패션디자인 업계의 단편적 사례일 뿐이다. 지금의 패션디자인의 컨셔스 액션 흐름은 파급력을 띠며 글로벌 전체를 물들이고 있다.
박동미 기자/pd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