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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사람 · 문화 · 향기…거리, 색을 찾다
홍대와 신촌의 인디밴드·클럽 문화…
가로수길의 브런치 문화·이태원의 작은 지구촌…

신세대도 기성세대도 서로 융합되는 길의 힘
다만 그 길의 주인은 그 곳을 찾는 사람이어야



역사는 시간과 공간의 합작품이다. 시간 못지않게 공간에 대한 연구가 최근 들어 활발해지는 건 일상의 삶을 중시한다는 뜻도 된다. 공간 중에서도 ‘길’이 살아나고 있다는 건 반가운 신호다. 서울 홍대 앞, 신촌, 대학로, 명동 길, 가로수길, 이태원 등이 고유의 색깔과 문화를 가진 장소로 자리 잡았다. 자기 색깔이 분명한 ‘길’에는 외국 관광객들도 몰린다.

물론 과거에도 ‘길’은 있었다. 아니, 유행의 첨단을 걷는 곳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전쟁 직후인 50년대 중반~60년대 명동, 70년대 명동ㆍ종로, 70년대 후반~80년대 신촌ㆍ이화여대 앞 등이다. 기자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70년대 중반에는 뭔가 신나는 것을 찾고 싶을 때는 신촌과 이대 앞으로 갔다. 그곳에서 예쁜 여대생과 장발의 남자 대학생들이 자유분방하게 어울리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황홀했다.

도시의 ‘길’은 인간의 향기와 욕망, 그리고 그것이 만든 문화가 자연스럽게 섞여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너무 삭막해진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하지만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본격적으로 ‘길’이 문화계급적인 함의를 가지게 된 것은 90년대 초 압구정동 거리였던 것 같다. 압축적 성장 가도를 달리던 당시로써는 부의 상징이었던 현대아파트와 국적 불명의 포스트모던한 건축물이 들어선 고급 패션가 로데오거리는 그 자체로 스펙터클(볼거리)을 제공했지만 기성세대에게는 그리 달가운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출몰하는 ‘오렌지족’이라는 단어 자체가 기성세대의 질투와 거부감이 반영된 것으로, 기껏해야 지배적 문화가 아닌 ‘서브컬처(하위문화)’였다.

압구정동은 92년 서태지의 등장과 때를 같이하는 신세대 문화 담론과 어우러져 과소비와 향락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좀 더 급진적인 좌파들에게는 철저히 자본에 의해 조성된 공간으로, 계급적으로는 배타적이고, 문화적으로는 타락하고 한심한 장소였다. 그래서 그 바로 옆 청담동 골목에는 좀 더 고상한 취향의 사람들(노블레스족)이 뉴요커를 살짝 흉내내며 퓨전 레스토랑과 카페문화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길’은 신세대와 기성세대가 자연스럽게 혼재돼 있다. 가로수길 식당 등에서 가족끼리 식사를 즐기기도 한다. 가로수길에는 브런치 문화가 있고, 홍대에는 록카페와 인디밴드가 나오는 클럽이 있으며, 이태원에는 태국식당 등 동남아식과 유럽식 레스토랑이 있다. 사케 등 일본 술(니혼슈)을 파는 이자카야는 이들 거리 도처에 침투해 있다. 홍대 문화도 90년대 초에는 기성세대로부터 욕을 많이 먹었다. 하지만 이제 기성세대도 재미있고 좋다면 문화적 취향에 따라 그 ‘길’로 들어와 융합되는 분위기다. ‘길’은 젊은 세대가 주축이기는 하다. 하지만 60~70대의 노년도 문화적으로 세련되면 40대처럼 살 수 있고, 40대도 관리를 잘 못하고 구린(?) 취향의 소유자라면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시대다.

‘길’에 모이는 사람들은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튀스(Habitus)’처럼 문화와 취향으로 구분 짓기를 하려는 사람처럼 보인다. 집단과 계급의 표상처럼 굳어지는 습관 체계 말이다. 그들은 가로수길과 홍대에 가면 문화적으로, 심리적으로 동질감과 안정감을 느껴 ‘길’을 자주 찾는 ‘문화부족’이다.

길 문화가 최근 더 두드러지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길은 걷는 곳이다. 차를 타고, 몰고 갈 때에는 안 보이던 것이 걷게 되면서 보이는 게 많다. 실용성에 지친 인간들이 사람과 일상을 관찰하는 그 자체가 재미의 원천이다. 이를 앉아서 감상하는 곳이 실내 문화를 실외로 확장시킨 노천카페다. 캐노피(차양)를 갖춘 노천카페가 늘어나는 건 인간의 그런 욕망을 마케팅한 것이다. 수시로 열리는 버스킹(거리 공연)도 ‘길’ 문화를 활성화하는 요인이다.

욕망ㆍ소비ㆍ주체의 시대에 ‘길’의 중요성은 단연 부각된다. 하지만 ‘길’의 주인이 누구냐를 생각해봐야 한다. 길을 도시계획에 의해 단면적으로 잘라 개발하면 말끔하게 변할 수는 있지만 사람과 문화, 흔적과 향기가 사라진다. 청계천, 종로 피맛골, 남대문로는 이미 그런 과정을 경험했고, 인사동 길은 해체 위험에 직면해 있다. 홍대 앞도 자생적인 문화가 자본의 논리에 의해 많이 축출됐다.

아무리 멋있는 길도 문화와 향기가 없다면 걷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SF영화에 나오는 거리는 아케이드의 상품을 보는 것 같다. ‘길’의 주인은 무조건 그곳에 오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의 욕구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긴 거리를 기능적이 아닌, 자연스럽게 그 문화를 이어줘야 ‘길’은 생명력과 의미가 부여된다. 인간과 생명과 향기가 없는 ‘길’은 단언컨대 ‘길’이 아니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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