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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들지 않은 아이…연출가 오태석
무대 위 연기자에 모두 맨발 요구하는 이유는
짐짓 아는 척·있는 척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
해가 다 지도록 질리는 줄 모르는 아이처럼
50년 넘게 연극이란 놀이터서 신나게 놀다

아버지를 잃은 6·25 전쟁의 트라우마, 전통문화 복원하는 일은 전쟁 이전 세대가 지닌 일종의 부채의식 같은 것
뜻 없이 떠돌던 학창시절 우연히 접한 전통 연희의 즐거움 평생의 길이 돼…국립극장 장막극 당선작 ‘영광’은 사실 상금 탐나 하룻밤만에 쓴 작품
우리 전통은 생활자체에 내재화돼 생명력 있어…관객에 소리치듯 연기하는 내 무대도 우리 전통극을 현대와 만나게 하는 숙명같은 소임
제자들과 창단한 동인제 극단 ‘목화’가 벌써 30년…내년 무대에 올릴 신작에선 홀로서기와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 들려 줄 터

지난 6월 말 국립국악원의 소리극 ‘아리랑’의 프레스콜이 끝난 뒤, 서초동의 한 한정식집으로 이어진 자리에 나타난 오태석 연출가(73)의 한 손에는 어린이용 공책이 들려 있었다. 문방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지가 알록달록한 초등학교 저학년용 공책이었다. 어른의 격에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기자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안쪽을 펼치는데 괴발개발은 아니지만, 아무렇게나 메모가 적혀 있다. ‘연출노트’였다. 생물처럼 공연의 즉흥성과 변화를 중요시 여기는 그는 연습 때마다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이를 공책에 적어두는 습관을 갖고 있다.

무대 위에 선 연기자가 모두 맨발이어야 하는 것도 그만의 연출 스타일이다. 인위적이고 자연스럽지 않은 것, 짐짓 아는 척, 있는 척 꾸미는 것에 대해선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는 듯했다. 휴대전화도 쓰지 않는다. 거추장스럽고 싫다고 했다. 그래서 급한 용무가 있는 사람은 그가 운영하는 극단 목화나 방배동 자택으로 전화를 해야 한다.

어렵게 연락이 닿아 최근 대학로에서 두 번째 만난 자리에서 오태석 연출은 늘 쓰고 다니는 중절모에 네 귀퉁이가 헌 낡은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명함을 너무 많이 구겨 넣어 배가 터질 듯 불룩한 명함지갑이 보기 안쓰럽다. 그게 계면쩍은 듯 크게 웃는 모습이 해맑은 아이의 표정과 닮아 있다. 한국 연극계의 대가(大家)이자 산증인인 그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오 연출은 여러 자리에서 스스로를 철들지 않은 아이로 비유하곤 했다. 놀이터에서 해가 다 져도 질리지 않는 소꿉장난에 빠진 아이. 그 아이는 데뷔작 ‘영광’(1962년) 이후 연극이란 놀이터에서 50년이 넘게 물리지 않는 놀이를 하는 중이다.

오태석 연출은 무대에서 모든 배우를 맨발로 서게 한다. 연기가 서툰 소리꾼까지 그의 연출작에선 예외가 없다. 맨발, 분장을 하지 않은 민낯의 연기자가 자연스러운 구어체로 객석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면, 관객이 느끼는 감동은 공진(共振)한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전쟁의 트라우마=‘전통의 현대화’의 대가 오 연출은 잃어버린 우리 것을 공연무대를 통해 되살리는 일에 매진해 왔다. 일제강점, 바로 이어진 6ㆍ25전쟁, 산업화와 급속한 경제발전 등으로 지난 100년간 우리 문화는 단절돼 왔다. 이를 복원하는 일은 전쟁 이전 세대가 지닌 일종의 부채의식 같은 거였다.

어린 시절 서울 한복판에서 겪은 참상은 그에게 충격이었다.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부친은 국내 2기 변호사로, 경무대(청와대 옛 명칭) 법무관이었다. 6ㆍ25가 터졌지만 어머니가 해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3남1녀인 형제자매와 할머니까지 일가족은 피란을 가지 못했다. 한 달 지난 7월 중순에는 남대문 5가에 있던 집으로 인민군이 들이닥쳐 총구를 들이대고 아버지를 끌고 갔다. 그게 부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장남인 오 연출은 당시 나이 10살이었다. 갓난아이까지 4남매만 남기고 하루 아침에 남편과 생이별한 모친의 나이가 겨우 30을 갓 넘을 때였다. 전쟁으로 인해 한 가족극이 희극에서 비극으로 예고 없이 전환된 것이다. 친모는 통일과 가족상봉의 염원을 끝내 이루지 못한 채 5년 전에 세상을 하직했다.

개인적인 비극사는 그의 연극 곳곳에 등장하는데, 최근작 ‘아리랑’에선 홍범도 장군 유골 봉환 과정으로 환치됐다. 고국으로 봉환되는 남편 유골을 기다리는 122살 먹은 할머니, 6ㆍ25때 포로교환으로 브라질로 이민 간 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통일한국 2018년’을 그렸다.

▶아룽구지의 3년=종손인 그만 할머니를 따라 본향인 아룽구지(충남 서천의 한산면)으로 피란을 떠났다. 50일을 걸어서 무전취식하며 당도한 집성촌에서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까지 3년을 보냈다. 시골에서 보낸 3년은 치유의 시간이었다. 그는 “전쟁이란 걸로 인해 세상이 바뀌는 걸 봤지만, 거머리 떼고 메뚜기 잡으면서 자연이란 더 큰 것을 경험했다”고 떠올렸다.

그의 작품 전반에 등장하는 세시풍속을 체화한 시기이기도 하다. 굿, 산대놀이, 판소리, 무가, 설화 등에 대한 원초적인 관심이 할머니와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DNA에 뿌리내린 시기다.

당시 읍내 등기소에서 유지 120여명을 한꺼번에 불태워 죽인 실제 사건, 읍내 저잣거리에서 장정들이 죽창을 들고 돌아다니던 풍경 등 10대 초반의 기억은 훗날 ‘자전거’(1983년)의 모티브가 됐다.

▶철학도가 아닌 연극인으로=그는 중ㆍ고등학교 시절을 불량하게 보냈다고 했다. 부친의 납북 사실과 전쟁 때 목격한 참상 탓인지 생존을 위해서 자신을 감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배제고 1학년 때 아이스하키부를 만들고 공부보단 또래 삥뜯기 등 ‘깡패짓’에 열중했다. 그래도 공부 머리는 있어서 대학입시에서 서울대 사회학과를 쳤는데 떨어졌다. 인생 첫 실패에 충격 받은 그는 수덕사 암자로 들어갔다. 그 사이 아들 몰래 어머니가 연세대 철학과에 원서를 넣어 수석 입학했다. 아들이 절간을 찾아갔으니 철학과도 적성에 맞겠지란 지레짐작에서였다.

하지만 철학에는 뜻이 없었다. 대학 1학년 때 집이 어려워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가정교사로 1년을 보냈는데, 그게 지겨워지던 참에 우연히 공연을 준비하던 연희극예술연구회 회원을 만났다. “라면하고 담배 걱정은 안 해두 되겠구나” 싶어 연희극회에 들어간 게 연극의 입문이었다. 남사당패 등 전통 연희의 즐거움을 깨달은 게 평생의 길이 됐다. 그는 “서당개 3년이라고, 군사정권 들어서서 자기들도 문화를 안다고 하고 다니고, 국립극장 장막극 모집에 됐고, 신춘문예 한다고 그게 돼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1962년 국립극장 장막극 당선작 ‘영광’은 공모 마감 하루 전에 공모 사실을 알고는 상금 욕심에 하루 밤만에 쓴 희곡이다. 지원금을 받아 아마추어가 올린 이 연극은 연세대 철학과 동기인 배우 이영후에게 남자연기상을 안겼다. 연세대에서 입학ㆍ졸업식 등 주요 행사에서 자주 불리는 ‘연세찬가’는 그가 교내 가사 공모에서 상금이 탐나 급하게 쓴 노랫말이다. 상금으로 연극을 올리고도 남아서 배우와 스태프들이 돈을 나눠가졌다.

이후 1967년 희곡 ‘웨딩드레스’ ‘화장한 남자들’, 1968년 ‘환절기’가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전통의 현대화=그의 연출 스타일은 색깔이 뚜렷하다. 우선 배우는 무대 전면을 보고 관객에게 소리치듯 연기한다. 현대 관객에게 친숙한 연극은 배우가 배우를 보며 연기하며 하나의 드라마를 만들어내고, 배우에겐 ‘없는 존재’인 관객은 불꺼진 객석에서 그 틀을 구경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서양극 양식이며, 우리 전통극은 연기자는 관객을 향해 얘기하듯 공연하는 ‘열린 연극’이란 게 오 연출의 생각이다. 그가 생각하는 전통은 특정 형태로 집약된 양식이 아니다. “어린아이도 사물을 두드리고 때려서 소리낼 줄 알 듯” 우리의 전통은 총체적인 집단 무의식과 숨쉬기처럼 자연스러운 삶과 같은 것이다.

오 연출은 “처음에는 ‘우리는 왜 일본 가부키처럼 형식과 기록을 만들지 못했을까’ ‘우리 조상은 왜 손닿는 곳에만 뒀을까, 바보 같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전통은 다 내재화돼 있고 생활 자체, 생명력에 있더라”고 했다.

이런 전통을 공연이란 틀 안에서 현대와 만나게 하는 일이 그의 숙명과도 같은 소임이다.

비약, 생략, 압축도 그의 작품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다.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서양극과 달리 우리 전통극은 막과 막 사이에 별다른 설명을 넣지 않고 때로는 비논리적으로 비약적으로 전환된다. 하지만 관객도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상세한 설명에 익숙해 상상력이 굳어진 현대 관객에게 그의 작품은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소리도 듣는다. 그는 “동양화를 생각해 봐라. 서양화는 화폭을 꽉 채우는데, 우리는 비워 놓는다. 개와 닭 한 마리를 그려놓으면, ‘둘이 싸우는구나’라는 해석은 보는 이의 몫이다. 생략이나 비약을 잘할 수록 관객이 재밌게 구경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고 설명했다.

커다란 오브제(소품)는 시각적으로도 볼거리를 풍성하게 만든다. 세익스피어 희극을 한국 전통극으로 번안해 올린 ‘로미오와 줄리엣’(1972년)에는 커다란 욕조가 광장의 분수대를 대신하고, 로미오와 티볼트가 싸우는 결투장이 되었다가, 결국 이들이 죽을 때 실려나가는 상여나 무덤이 된다. 그는 “소품이 비약을 하는 건데, 관객이 느끼는 상상력이 있다. 익숙한 것이 자꾸 변해가는 재미, 연극적 발상의 재미”라고 설명했다.

세조반정을 다룬 ‘태’(1974년)에서 사육신은 바스락거리는 종이옷을 입고 등장해, 시청각적인 효과를 낸다. 소리극 ‘아리랑’에서도 러ㆍ일전쟁은 커다란 소품 체스 말을 등장시킨 체스 게임이 대신한다. 오 연출은 “옛날 조선시대 규방 여인들이 종이로 만든 옷을 액자로 해넣어 전시한 것을 봤는데, 너무 예뻤다. 창호지는 조명을 받으면 예쁜데 그래서 종이옷을 자주 썼다. 다른 말로 열 마디 하는 것보다 우리의 맛, 풍취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니까 무대에 올려놓는 거다”고 말했다.

‘태’ ‘춘풍의 처’(1976년)는 해외서도 자주 공연됐다. 그는 1979년 미국 뉴욕 연수를 하면서 우리 전통극 양식의 우수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헝가리, 폴란드의 열린 연극이 높게 평가받는 것을 보면서, 그전까지 서양극이 옳고 우리극은 낮은 것이라고 치부하던 컴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2006년 영국 바비칸에서 공연했을 때는 현지 평단으로부터 “세익스피어가 와서 앉아 있다면 자기 집안처럼 편안했을 것이다”란 극찬을 받았다. 그는 “아주 맹랑한 작품아니냐”면서 “자존심 강한 민족이 자기 할아버지가 와서 봐도 재밌었다는 거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극단 목화와의 30년=오 연출과 그 제자들이 주축이 돼 1984년 창단한 극단 목화는 아시아에서도 몇 안 되는 동인제(단원 모두가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지는 운영방식) 극단이다. 방송, 영화 등 대중문화 쪽에 진출해 활발한 활동을 하는 연기파 배우들 가운데 목화 출신이 꽤 많다. 박영규, 김병옥, 김응수, 손병호, 장영남, 임원희, 유해진, 성지루, 박희순, 정은표, 김병춘 등이 목화를 거쳐간 배우로 알려져 있다.

오 연출은 “돈을 쫓아서 사는 사람들인데 진정한 배우라고 할 수 있나. 기술적으로 연기를 배워간 이들”이라고 낮춰 말했다. 방대한 연습량과 열악한 처우를 열정 하나만으로 견뎌내는 현재 단원들에 대한 애정이 큰 탓 때문인 듯했다. 목화 단원은 연극 한 편을 올리기 위해 매일 8시간 이상씩 수개월을 연습한다. 목화 연습실이 자리한 동숭동 명소 디마떼오의 이원승 대표는 “연습할 때 배에 힘을 넣기 위해 냇가에서 쭈구리고 앉듯 앉아서 소리를 지르게 한다”고 소개했다. 개그맨 출신 연극배우로 알려진 이 대표는 “오태석 연출에게 반해서 그 작품에 대한 연구로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라고도 했다.

오 연출은 내년 목화 창단 30년을 기념한 신작을 준비 중이다. 그는 신작에 대해 “근간에 우리 사회에서 좋지 않은 면이, 자신의 소견을 갖고 혼자 버티기는 힘이 미약해지지 않았나 싶다. 집단 속에 들어가고 편승하려는 집단이기주의 풍조가 생겼다. 우리 춤사위나 북장단을 보더라도 가르치는 스승을 따라가지 않았다. 고집을 세우고 자신의 소견을 어떻게든 애써 온 게 우리들이 해 온 일이다. 그 홀로서기와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내년 초에는 ‘로미오와 줄리엣’도 재공연할 예정이다.

오 연출은 주목되는 후배 연출가가 있는지 묻자 “내 공연이 바빠서 다른 이들의 작품을 볼 새가 없다. 후배들은 내가 빨리 죽었으면 하겠지”라고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그가 없는 한국 연극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게 연극인들의 한결같은 대답이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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