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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람>10년 맞는 민들레국수집 서영남 대표
“사랑이 담긴 밥 한 그릇…식사대접이 아닌 사람대접”


[헤럴드경제=김기훈 기자] 인천시 동구 화수동의 야트막한 화도고개 마루엔 ‘민들레타운’이 있다. 민들레국수집, 민들레꿈공부방, 민들레가게 등으로 이뤄진 이 조그만 달동네는 가난하지만 어느 곳보다 풍요롭다.

민들레타운의 시작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만우절에 문을 연 민들레국수집은 ‘남는 것 없는 장사’로도 거짓말처럼 10년의 세월을 유지하고 있다.

이 국숫집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음식값을 받지 않는다. 민들레국수집에는 목ㆍ금요일을 제외한 매주 5일간 하루 400~500명이 찾아와 무료로 식사를 하고 간다. 민들레국수집의 서영남(60) 대표는 이곳을 찾는 노숙인들을 ‘브이아이피(VIP) 손님’이라고 부른다.

“아직 10년밖에 안 됐는데요. 뭘.” 10년의 소감을 묻자 서 대표는 수줍게 웃었다. 쌀이며 찬거리며 끊길 듯 하지만 끊길만하면 어김없이 이어지는 온정의 손길로 국숫집은 10년을 이어왔다.


“노숙하시는 분들은 작은 것에 행복해해요. 눈치 안 보고 밥 먹고 자기를 사람으로 인정해줄 때 변화가 시작되죠. 같은 음식이지만 ‘먹어’가 아닌 ‘드세요’ 하는 차이일 뿐인데 작은 차이가 희망의 씨앗이 됩니다.”

결국 민들레국수집이 내놓는 따뜻한 밥 한 그릇은 식사 대접이 아닌 사람 대접인 셈이다.

25년을 가톨릭 수사로 살아온 서 대표는 낮은 곳에서 헐벗고 굶주린 이들을 만나기 위해 수도원을 나와 거리와 인연을 맺었다. 또 교정 활동을 하며 아내와 딸을 만났다. 노숙인들에게 입을 거리를 챙겨주는 민들레가게를 운영하는 부인 베로니카, 동네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운영하는 딸 모니카는 그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다.

이들은 사랑과 나눔의 대가로 무엇도 요구하지 않는다. 기도도 설교도 없이 마냥 주기만 한다. 민들레국수집엔 다만 십자가 하나가 자리를 지킬 뿐이다.

“가진 자가 동정하고 베풀듯 약한 자들을 대해선 안 돼요. 가장 힘 없고 가난한 사람이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세상이 천국이죠.” 


그는 또 “정글 같은 세상에서 밀려나 거리를 떠도는 이들에게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가르쳐선 재활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과 이웃, 따뜻한 공동체의 기억이며 이를 실감할 때 변화도 찾아온다는 것이다.

한편 서 대표는 올해 포스코청암상 봉사부문상을 수상했다. 상금 2억원 중 일부는 최근 홀몸노인들을 위한 ‘어르신들을 위한 국수집’을 여는 데 썼고, 나머지는 필리핀 마닐라의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여는 데 쓸 계획이다.

밝은 미래를 구상하는 서 대표의 환한 얼굴 뒤로, 뜨거운 한 숟갈 밥을 뜨는 노숙인들의 어깨 너머로 따뜻하고 뭉클한 기운이 피어 올랐다.

kih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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