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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방의학장교로 베트남전 참전…의료진이 美유학 권유…“美서 여행하듯 살자”아내에 했던 프러포즈가 현실로
영재서 박사까지…인간 김의신의 일·사랑·인생
김의신 박사는 1942년 전북 군산에서 출생했다. 가부장적인 부신 출신의 아버지와 호남 출신의 어머니 밑에서 그리 유복한 시절을 보내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열성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분이어서 늘 교회만 열심히 다니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소리를 귀가 닳도록 들었죠. 어머니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식모처럼 살았지만 고아를 보면 집에 데리고 와서 밥을 먹일 정도로 따뜻한 분이었어요.”

김 박사는 군산에서 천재소리를 들을 만큼 공부를 잘했다.

“내가 중학교에서 전교 1등 하니까 교장이 자기 아들과 같이 지내게 해달라고 부모님에게 부탁을 했어요. 그때부터 몇 부락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교장 집에서 남의 집 살이를 했어요. 한 달에 한 번밖에 집에 못갔는데 처음에는 내가 친자식이 아닌가 하고 섭섭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경험이 자립심을 키우고, 전 세계 어딜 가나 음식도 뭐든 잘먹고 잠도 잘자는 원동력이 된 거 같아요.”

미국과의 첫 인연은 초등학교 때부터였다.

“초등학교 때 집 근처에 군산비행장이 있었는데 조종사가 주말에 시내로 종종 나왔어요. 아이들이 쫓아다니면 초콜릿을 주곤 했는데 나도 많이 쫓아다녔지. 5학년 땐가, 어떻게 미군을 알게 됐는데 헬리콥터도 태워주고 했어요. 그러니까 주변에서 쟤는 커서 미국 가서 살 거라고 얘기하곤 했죠.”

군산에서 고등학교 마친 김 박사는 1967년에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다. 처음엔 뭘 전공할지 막막했다.

“당시 제 롤모델은 서울대총장, 서울대병원장도 하고 문교부ㆍ보사부ㆍ환경부 장관까지 한 권이혁 선생이었어요. 그 분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오신 후 진로를 고민하던 저에게 예방의학을 한 번 해보라고 했어요. 이후 베트남전이 터졌고, 마침 의대에 열대의학연구소가 생겨 예방의학장교로 베트남에 갔어요. 당시 베트남 사이공에 파스퇴르연구소가 있었는데 열대병에 대한 6개월 특수연수까지 받았죠. 그 덕분에 영어도 좀 배웠어요.”

멋모르고 간 베트남은 비록 의학장교로 갔지만 말 그대로 살벌한 전쟁터였다. “진료소에 부상병이 한꺼번에 70~80명씩 쏟아져 들어오는데 외과의사는 10명도 채 안됐어요. 교전지역에서 헬리콥터로 부상병을 싣고 가는데 베트콩이 밑에서 기관총을 막 쏘아대요. 짚차로 후송할 때는 근처에서 폭탄도 막 터지고. 지금 생각하면 참 그땐 겁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베트남전 참전은 미국유학으로 이어졌다. 김 박사를 눈여겨본 미국 의료진이 김 박사에게 유학을 올 것을 권유했다.

“미국 유학을 가려니까 주위에서 미국 가면 결혼할 여자가 없으니 한국에서 하고 가라고 했어요. 그래서 대학 때 가정교사를 하면서 가르쳤던 학생의 친구였던 지금의 아내를 꼬드겨서 결혼하자고 했어요. 당시 이화여대 4학년이던 아내를 뚝섬에 데리고 가서 말했죠. 난 미국 가서 성공할 거다. 같이 미국 가서 아들 둘에 딸 하나 낳고 살자. 외롭겠지만 처음 시작하는 미국 동부에서 시계방향으로 평생 여행하자는 생각으로 살자 그러면서 프러포즈를 했어요. 그런데…참 말이 씨가 되는지 그대로 됐어요. 아들 둘에 딸 하나를 순서대로 낳고, 직장도 동부인 존스홉킨스병원(볼티모어), 미네소타대(미네아폴리스), MD앤더슨(텍사스 휴스턴), 지금 재직 중인 UCI(캘리포니아)까지. 방향도 똑같이 그대로 된 거죠. 뭐든 간절히 원하면 꿈은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경험으로 믿게 됐죠. 암도 똑같아요. 긍정적인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면 꿈은 이루어져요.” 

김태열 기자/kt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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