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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換亂극복 ‘눈물의 금모으기’…한국은 울고, 세계는 감동했다

  • 기사입력 2013-05-0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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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3일 대한민국 경제 국치의 날
대우·기아차 등 기업들은 줄줄이 무너지고
길거리엔 해고된 사람들 넘쳐나고…
혜성처럼 등장한 新국채보상운동 전개

故 김지길 목사가 주창 고건 총리가 실행
장롱속 돌반지 등 온 국민들 동참행렬
기업들은 구조조정·정부는 자구 노력…
혼연일체된 대한민국에 전세계도 경탄




지난 1997년 12월 3일 오후 7시40분. 당시 임창렬 경제부총리와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긴급 경제구제자금 합의서에 서명했다. 사진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TV를 보던 일부 국민은 눈물을 흘리며 울분을 토해내기도 했다. 건실하다는 대한민국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져 IMF로부터 195억달러를 빌려야 하는 수모를 겪는 순간이었다.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 ‘IMF’였다. 이때부터 IMF는 고통의 시기로 대한민국 국민에게 인식됐다.

당시 이자율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1998년 초 금리는 20%대까지 치솟았다. 주식시장은 폭락해 주식을 갖고 있는 이들의 곡(哭)소리가 여기저기서 났다.

환율은 정부에서 개입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연일 가격제한폭까지 환율이 폭등했다. 외환위기 전에는 800원을 주면 1달러를 살 수 있었지만, 순식간에 2000원을 줘야 1달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원화 가치가 폭락했다.

기업들의 부도가 잇따랐다. 한보철강을 시작으로 대우, 기아차 등 굴지의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대마불사(大馬不死)가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길거리에는 해고된 이들이 넘쳐났다. 1997년 12월 말 53만명이던 실업자 수는 1998년 9월을 기점으로 170만명으로 늘어났다. 정리해고, 구조조정, 실업자 등의 단어가 신문지면에 넘쳐나던 때였다. 물가는 어제와 오늘이 달랐다. 내일 또 오를 것이라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었다. 1998년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5%에 달했다. 미친 물가였고, 국민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이때 혜성처럼 ‘금 모으기 운동’이 시작됐다. 장롱 속에 있던 금을 해외로 내다 팔아, IMF로부터 빌린 달러를 갚자는 운동이다. 신(新)국채보상운동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아이 돌잔치 때 받은 반지도 서슴지 않고 꺼냈다. 비상시를 대비해 장롱 깊숙이 숨겨놨던 금반지ㆍ금목걸이ㆍ금팔찌도 가리지 않았다. 강남 부자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금괴가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금 모으기 운동’, 국제통화기금(IMF) 때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인의 저력이었다.                                                                                [헤럴드경제DB]

1998년 1분기 동안 243만명의 국민이 165t의 금을 내놓아 22억달러에 달하는 외화벌이를 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은행은 1998년 금 수출대금이 1월 5억8000만달러, 2월 13억달러, 3월 3억2000만달러 등 1분기에 22억달러라고 밝혔다. 이 수출대금은 당시 1분기 수출 323억달러의 6.8%에 달한다. 같은 기간 자동차 수출대금 21억2000만달러를 웃돌고, 섬유 수출의 주종을 이루는 직물 수출대금 22억달러와 비슷한 수준이다.

금 모으기 운동은 지난 2010년 88세의 나이로 별세한 고(故) 김지길 목사가 주창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목사는 지난 1997년 한국이 IMF 체제에 들어가던 날, 크리스천 국회의원 부인들의 기도회 모임에 갔다가 당시 한나라당 이모 의원의 부인이 “어려운 시국에 아이들 돌반지를 장롱 속에 쌓아두면 뭣하겠느냐”고 말한 것에 착안해 금 모으기 운동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은행에 금 모으기 운동을 제안했지만 한은은 관련 법규가 없다며 부정적이었다. 고건 총리를 찾아가 제안하자 고 전 총리는 법을 제정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전개할 수 있다고 응답해 운동이 현실화된 것으로 알려진다.

TV 뉴스에 연일 금 모으기 운동 현장이 주요 꼭지로 방송됐고, 일반 서민들은 장롱 속에 쌓아뒀던 돌반지ㆍ금가락지ㆍ팔찌ㆍ목걸이 등을 가지고 나와 동참했다.

당시 1㎏에 1200만원 정도 하는 골드바가 나왔다는 뉴스는 동참 열기를 가열시켰다. 신문 사설에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 실리기도 했다. 기업은 물론 강남 부유층도 앞다퉈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했다.

지금은 영면에 든 김수환 추기경이 1998년 1월 서울 서초동성당 미사에서 “예수는 인류 구원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는데 금이 그렇게 아까우냐”면서 “이기주의가 만연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강남 부유층의 금 모으기 운동 동참을 호소하기도 했다.

해외 교포까지 금 모으기 운동에 감동해 해외에서 금을 모아 국내에 보내는 사연도 잇따랐다. 금 모으기 운동이 전 국민적 관심거리가 되자 다이아몬드 모으기 운동, 삐삐(호출기) 모으기 운동, 헌옷 모으기 운동 등이 펼쳐지기도 했지만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당시 해외 유력 언론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환란 극복을 위해 금을 모아 해외로 수출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혼연일체가 돼 국가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국민의 노력에 놀란 것이다.

대한민국은 혹독한 기업 구조조정과 정부의 자구 노력 외에 국민의 이 같은 애국심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빨리 IMF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허연회 기자/okidok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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