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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를 극복하는 다른 시간을 사는 법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시간의 종류에는 여러가지 있어요. 성자 프란체스코가 병원에 가서 병자의 다리를 씻어주는 시간, 다른 사람에게 선사되는 시간은 완전히 다른 시간이죠. 나에게 한정되고 노동과 소비에 한정된 시간은 피로시간이지만 남에게 주는 시간은 다른 시간입니다.”

화제작 ‘피로사회’로 독일은 물론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킨 한병철 베를린 예술대 교수가 ‘시간의 향기’(문학과지성사)의 국내 번역ㆍ 출간과 관련, 14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피로사회의 극복 방법으로 ‘시간혁명’을 역설했다.

모든 시간이 노동이 되고 소비의 대상으로 인식된 시간은 인간을 파멸로 이끈다는 것이다. 노동의 시간은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만들고, 그 결과 개인은 고립되고 우울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말에 ‘나이를 먹는다’와 ‘나이를 든다’는 표현을 비교하면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생각이 든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미와 형태, 뼈가 있는 시간이라고 설명한다. 그런 시간은 먹을 수가 없고. 소비되지 않는 시간이며, 창조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이번 책은 ‘피로사회’의 전작으로 둘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한 교수는 이 시대가 겪는 시간의 위기를 가속화가 아닌 반시간성으로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오늘의 시간은 리듬과 방향을 상실하고 원자화됨으로써 위기에 봉착해 있다. 오늘날 시간은 자연적 순환과 같은 리듬도 구원이나 종말, 진보라는 서사적 긴장감도 없다. 공동체, 연대의 시간이 사라진 것이다. 거기엔 그저 끝없는 현재들의 사라짐뿐이다. 원자화된 시간은 현재의 시간을 날아가는 시간의 끝자락으로 겨우 인식하게 한다. 갈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 같이 느끼는 이유다. 삶의 가속화는 삶의 양은 증가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충만한 삶으로 채워진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한 교수는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을 근대 이래 계속 강화돼 온 활동적 삶을 절대화, 찬양하는 데서 찾는다. 노동만이 인간에게 궁극적 자유를 가져온다는 헤겔-마르크스 사상의 영향이기도 하다. 활동적 삶의 절대화는 모든 시간을 일로 치환시키며 여가시간도 일을 준비하기 위한 보조적 의미로 인식시킨다. 그는 이를 ‘향기 없는 시간’으로 규정한다. 


그는 특히 신자유주의의 성과주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한국의 경우 자본주의 속도가 빨랐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비판도 없이 따라가다 보니까 시스템의 압력이 굉장히 강해서 피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시스템, 사회가 문제인데 지금 한국은 개인이 문제라며 ‘치유하라’ ‘힐링하라’고 외치고 있다는 얘기다.

“천천히 가는 게 치유가 아니에요. 시간의 위기는 가속도가 아닙니다. 병은 다른 데 있어요. 천천히 하는 것보다 남에게 시간을 주는 게 해결책입니다. 다른 시간을 창조해야 합니다.”

시간의 향기를 회복하는 방법은 활동적 삶 중심의 가치관을 사색적 삶 중심의 가치관으로 바꾸는 것이다. 멈춤의 시간, 활동하지 않고 자기 안에 머물며 영속적 진리에 대해 사색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나에서 벗어나 연대하는 시간, 남을 위한 봉사의 시간도 향기로운 시간이다.

그에 따르면 시간에 쫓기고 일에 지쳐 잠에 곯아 떨어지는 게 아니라, 만족스런 시간을 보내고 주체적으로 눈을 감는 잠과 같은 것이다.

현재 8개국 언어로 번역된 ‘피로사회’는 독일에서만 6만부가 팔렸다. 철학이 사회와 동떨어져 가는 상태에서 그의 현상 분석과 뼈있는 질타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6개월 전 베를린 예술대 음대로 옮겨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베를린 음대는 작곡가 윤이상이 교수로 있던 곳으로 한국인 교수는 두 번째다.

한 교수는 현재 디지털 문화와 관련된 책을 쓰고 있다고 소개했다. 디지털 사회에서 새로운 정치 형태, 직접민주주의는 어떤 형태가 될 것인가의 문제다. ‘눈을 감으십시오’라는 1000원짜리 전차책도 곧 나온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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