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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 박수진> 대학가에 부는 ‘저작권 포기’ 바람
‘책이 비싸서 공부를 못한다.’ 기성세대는 이 말을 들으면 “속이 뻔히 보이는 핑계”라고 혀를 찰지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들에겐 핑계가 아닌 현실이다. 한 학기 교재비가 많게는 20만원을 훌쩍 넘는다. 매년 고공행진 중인 책값은 가뜩이나 가벼운 주머니를 더욱 쓸쓸하게 한다. 이처럼 돈 없으면 배움을 갖기 힘들어진 대학가에 최근 예상치 못한 훈풍이 불고 있다. 교재비 부담에 허덕이는 제자들을 위해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해 교재를 무료로 보급하는 교수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조영복(56) 부산대 경영학부 교수가 있다. 조 교수는 최근 ‘공유와 협력의 교과서 만들기 운동본부’를 결성하고 전국에 있는 대학교재 집필 교수 100여명에게 참여를 권유하고 있다. 대학교재를 PDF 파일로 전환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올려놓으면 전용 홈페이지(bigbook.or.kr)를 통해 학생들이 누구나 무료로 내려받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조 교수는 선봉에 섰다. 2011년 개정한 저서 ‘경영학원론’에 대한 저작권을 포기하고 저서 내용을 애플리케이션으로 만들어 학생들에게 공개했다. 현재는 한 챕터 분량만 업데이트가 됐고 부산대 내부에서만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오는 6월 일반에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조 교수의 저작권 포기 운동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현재 전국적으로 20여명의 교수들이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다. 경영학뿐만 아니라 약학, 교육학, 인문학 등 분야도 다양하다. 지식이 돈벌이가 아닌 나눔의 수단이 돼야 한다는, 당연하지만 어느샌가 잊힌 진실을 교수들이 몸소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조 교수는 빠른 시일 내에 무료 대학교재 애플리케이션 100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모든 기초학문 분야나 각 학문의 원론 또는 개론은 사실 개인의 저작물이라기보다는 문화유산의 성격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신념을 밝혔다.

한 스승의 지식 나눔 운동이, 삶의 지혜보다 돈의 쓴맛을 먼저 배우는 요즘 대학생들에게 ‘배움의 가장 큰 이유는 모두가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라는 불변의 진실을 깨우치는 봄바람이 되길 바란다. 

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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