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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년 만의 연극무대, 변희봉이 만난 ‘3월의 눈’ 의 장오
[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손 감독(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을 만난 건 40년 전 연극할 때였죠. 67년인가 68년인가, 저는 연극을 한다고 다녔고 그 때 손 감독은 무대감독이었어요. 순하고 말도 없고 조용한 분이었습니다.”

매스컴에서 서로를 만났을 뿐 변희봉(70)과 손진책 두 사람은 그 뒤로 수십년간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1970년대 초 브라운관으로 스크린으로 자리를 옮기며 연기에 전념하느라 연극무대로는 쉽게 돌아오기 힘들었다. 그런데 손 감독은 40년 만에 노배우 변희봉을 다시 연극무대로 이끌었다. 연극 ‘3월의 눈’의 장오 역할이었다.

뜻밖의 연극무대, 노배우가 다시 무대에 선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찻잔을 기울이며 조용히 그의 말을 들었다.

‘3월의 눈’은 지난해 11월 타계한 원로배우 장민호가 주인공 장오 역할로 마지막으로 무대에 섰던 작품이다. 특히 다음달 1일부터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이번 공연은 작고한 그를 기리는 무대라 더욱 의미가 깊다.

“장민호 선생님은 평생을 연극에 몸바치신 분이시고, 선생님이 작고하신 이후에 제가 그 역할을 하는 것도 뜻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오랜만에 연극을 하게 된 건 인연때문이었지만 두려움도 있습니다.”


오랜만에 서는 무대기도 하고 더구나 장오의 아내 이순 역을 맡은 사람은 선배인 원로배우 백성희 선생이다. 대선배가 했던 장오 역을 자신이 맡는다는 것도 부담이다.

생전에 단편 TV드라마에서 장민호 선생을 작품으로 단 한 번 만났다는 변희봉. 오래된탓에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그가 기억하는 장민호는 그저 대선배였다.

“‘부자자효’란 TV드라마를 한 번 같이 했어요. 아버지와 아들로 출연했죠. 80년대 초중반이었을 겁니다. 선생님은 강직하신 분이었고 정말 그 어른 앞에 서면 고개가 숙여지는 무게감이 있었죠. 행동 하나하나가 우상이셨습니다.”

젊었던 시절 그런 선배들의 라디오 드라마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고 배우가 되고 싶단 생각에 1965년 MBC 2기 공채 성우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연극도 그해 같이 시작했다.

“차범석 선생님 작품인데 ‘지붕위의 고양이’란 연극이 있었습니다. MBC탤런트 1기생이었는데 한 배우가 펑크를 내서 대신한 것이 인연이 돼 몇 년 동안 극단 산하에서 연극을 했습니다. 쉬지 않고 여러 작품을 했어요.”

‘대리인’, ‘왕교수의 직업’, ‘우리’, ‘키부츠의 처녀’, ‘노비문서’ 등에 출연했고 1970년대 초에 TV를 시작하니 그 이후론 연극으로 발길을 돌리기가 힘들었다.

강산이 4번 바뀌어 선 무대, 세월은 많이 흘렀고 무대도, 세상도 달라졌다. 변희봉은 ‘3월의 눈’의 80대 노인 장오가 한국전쟁 피난살이를 하고 지금껏 세월을 살아온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다 느낀다.

“전쟁을 겪은 고생한 세대죠. ‘3월의 눈’은 우리 삶 속 얘기고 우리 어른 세대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배우따라 40년을 살며 마누라가 고통을 안 받았다면 거짓말이라는 그. 극중 노부부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에서 변희봉 부부가 사는 모습을 그릴 수 있었다. 장오-이순 부부는 준치가 인연이 되어 결혼했고 변희봉 부부는 중매결혼이었지만 순한 성품에 두 사람은 반평생을 넘게 살았다.

그는 가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영화 ‘괴물’에서 단란한 가족의 할아버지로 나왔던 변희봉은 ‘3월의 눈’에서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할아버지를 연기한다. 월남해 살다 생떼같은 외아들을 잃고 그 대를 잇는 손자는 빚에 쫓기는 신세. 힘든 노년을 보내는 할아버지는 결국 증손자를 위해 고택을 팔아 요양원으로 들어간다. 가족은 생의 의지 그 자체다.

장오의 대사 중 “비워라, 다 비우고 가라”란 말이 가장 인상깊었다는 변희봉. “이 나이에 뭘 바라겠습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합니다”라고 말한다. 가족에 대한 무한한 베품의 마음일까. 지난 설엔 세 딸과 손자, 손녀 11가족이 다 모였었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ygmoon@heraldcorp.com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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