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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자라고 부끄러운 내 모습도 나로 인정하자”
일본 현대문학의 새 아이콘…히라노 게이치로가 말하는‘ 자존감 지키는 법’
分人은 나의 여러모습을 인정하는 말
分人 모습 보여줄 상대 많을수록 평안
나를 좋아하는게 삶 포기하지 않게해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작가이니까 개성을 살려서 일하는 것 같지만 여전히 고민 중입니다. 나는 병에 걸려 있는데 병을 고치는 약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나를 고치는 약을 만드는 게 내 작품입니다. 그런데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그게 약효를 발휘하는 게 아닐까. 나한테 맞는 약이 다른 사람에게도 맞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 마니아 독자층을 거느린 일본 최연소 아쿠타가상(賞)에 빛나는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37)가 잇단 자살과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해 치유의 처방을 들려주며 털어놓은 자신의 얘기다.

히라노 씨는 27일 오전 일본 도쿄 이다바시구 이찌가야 건강보험센터 세미나실에서 가진 대산문화재단이 매년 실시하는 ‘설국(雪國)문학기행‘(1월 24일~27일) 독자단과의 만남에서 ‘개성과 연애’라는 주제강연을 통해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이들이 어떻게 자존감을 지켜낼 것인지를 들려줬다..

그가 최근 10년간 몰두하고 있는 주제는 ‘분인(分人)’이란 개념이다. 자신의 여러 모습 가운데 ‘진짜 나는 누구일까’라는 고민 끝에 만들어낸 이 말은 독자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고 있다. 개인(個人)이란 말이 나뉠 수 없는 하나의 ‘나’라면, 분인(分人)은 여러 모습의 나를 모두 인정하는 말이다.
 
일본의 중견작가로 올라선 히라노 게이치로가 지난 27일 오전 일본 도쿄 이다바시구 이찌가야 건강보험센터 세미나실에서 대산문화재단‘ 설국(雪國)문학기행 독자단과 만남을 가졌다.

이를 그가 만들어낸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일본의 유토리 세대, 즉 90년대 세대의 불행에 주목했다. 개성 중시교육 기치 아래 얇은 교과서와 창조적 사고 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이후 ‘히키코모리’로 전락한 때문이다.

“이들이 대학을 가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할 때쯤, 불경기가 시작됐어요. 일을 통해 개성의 사회실현을 하고 싶은데 막상 취직하려고 하자 개성을 받아주는 회사가 없어지면서 정체성 혼란과 자괴감을 갖기 시작한 거죠.”

이런 시기를 거치면서 일본에는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히키코모리와 자아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두 부류다.

그는 ”히키코모리는 사회에 진출했다가 사회가 내가 원하는 것과 너무 다른 데 상처를 입고 집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갇혀 있는 사람과 자아를 찾아 해외여행을 하며 방랑하는 젊은이들은 서로 180도 달라 보이지만 일본에 속할 곳이 없다는 측면에서는 같다는 얘기다.

여기서 그가 찾아낸 해답이 분인이다. 나의 자랑스런 모습, 긍정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모자라고 부끄러운 모습도 나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살인사건이 나면, 동네 사람들이 “저 사람이 저럴 사람이 아닌데”라고 말하잖아요. 그러나 한 사람 안에도 선한 모습과 악한 모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많고 어느 쪽이 적은지, 어떤 퍼센트로 나뉘는지가 중요하죠. 내 안에 여러 모습이 있지만 내가 편안하고 안식할 수 있는 부분을 늘려가는 삶이 평안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그런 분인을 보여줄 수 있는 상대가 많을수록 삶의 발판이 튼튼해진다는 설명이다.

나 스스로가 나를 좋아하는 게 결국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할 거라는 히라노의 문학적 처방이다. 그는 6년 전 이런 테마로 ‘결괴’라는 작품을 썼다. 이 책은 오는 9월 한국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히라노 씨는 “글이 안 써지는 힘든 시간이 있는데, 다른 식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기 때문에 끝까지 고민하는 방법밖에는 길이 없는 것 같다“며 그 특유의 고민 해법도 들려줬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트위터는 한국어로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다. 한국 독자가 자원봉사 통역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재작년 동북대지진이 있었을 때, 서재 책들이 무너진 걸 트위터에 올렸는데 그때 한국 독자들이 많이 염려해 주셨다”며 감동을 전했다.

▶설국문학기행은
대산문화재단이 진행하는 설국문학기행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1968년 노벨상 수상작 ‘설국(雪國)’의 무대를 답사하는 여정이다. 가와바타는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나라였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는 세 문장을 유명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설국의 도입부는 독자들을 아득하게 끌고 간다. 가와바타가 20대 소설을 쓰기 위해 머문 유자와의 다이칸 료칸에는 그 방이 그대로 전시용으로 남아 있다. 마을을 멀리까지 내려다 보는 그의 방에서 보면, 눈을 높이 인 신사와 우거진 삼나무 숲, 구불구불한 길이 한눈에 그려진다. 료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설국문학관도 있다. 실제 모델이 된 게이샤 마츠에에 관한 기록과 흔적도 만날 수 있다. 2008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이 문학기행에는 고운기 시인(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이 해설을 맡아 이해를 돕는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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