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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클라우드 아틀라스’ 배두나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는 윤회사상 동감”
“다른 별에서 온 것 같다.”

MBC 예능 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앤디 워쇼스키 감독이 배두나를 표현한 말이다. 스크린 속 배두나는 사람인데 사람이 아니다. 배두나는 자신이 특별할 것 없는 외모를 가진 평범한 사람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기자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배두나의 실제 모습은 굳이 평범하다고 우기면 평범했다. 그러나 스크린 속 배두나의 모습은 무언가 한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낸다. 이 같은 아우라를 감지한 것은 국내 감독뿐만이 아니었다. 배두나를 영화 ‘공기인형’에 캐스팅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할리우드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캐스팅한 라나&앤디 워쇼스키 감독도 그 독특한 아우라에 매료됐으니 말이다. 복제인간 같은데 복제인간이 아니고, 소녀 같은데 소녀가 아니고, 인형 같은데 인형이 아니다. 돌이켜보니 배두나가 스크린에서 처음 맡았던 역할도 귀신(1999년 작 ‘링 바이러스’)이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국내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 모 카페에서 배두나를 만났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과거와 미래 500여 년을 아우르는 시공간을 무대로 6개의 이야기를 엮어낸 대작이다. 배두나는 2144년 서울을 배경으로 인류 문명이 종말을 향해 가는 시기에 만들어진 복제인간 ‘손미451’ 캐릭터를 연기하며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그 결과물은 할리우드 데뷔작치고 놀랍기만 하다. ‘매트릭스’ 시리즈를 만든 거장 라나&앤디 워쇼스키 감독과 ‘향수’의 톰 티크베어 감독이 영화를 공동 연출했다. 오스카상을 거머쥐었던 톰 행크스, 할리 베리를 비롯해 휴 그랜트, 짐 스터게스, 휴고 위빙, 수잔 서랜든 등 할리우드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이 대작 속에서 ‘신인’ 배두나는 가장 핵심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다. 출연 분량 또한 톰 행크스와 할리 베리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캐스팅 과정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제가 매니저 없이 활동하던 때라 앤디&라나 워쇼스키 감독이 저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고 하시더군요. 시나리오도 건너 건너 임필성 감독으로부터 받았어요. 시나리오를 받아보니 세상에… ‘매트릭스’의 감독인거예요. 이후 앤디&라나 워쇼스키 감독과 화상미팅을 했는데 감독이 ‘공기인형’과 ‘괴물’, ‘복수는 나의 것’ 등을 봤다며 시나리오 속 ‘손미451’ 2개 씬을 셀프 테이프로 촬영해 보내줄 수 없느냐고 묻더군요.”

영어 시나리오는 200페이지에 달했다. 배두나는 시중에 출간된 원작의 번역본을 숙지한 뒤 셀프 테이프를 촬영했다. 배두나는 “CF감독인 오빠(배두한)와 집에서 가내수공업을 하듯 촬영해 미국으로 보냈다”며 “테이프를 보낸 뒤 한참 동안 연락이 없어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하며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카고로 직접 와서 스크린 테스트를 받아보라고 연락이 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때 마침 ‘코리아’를 촬영하던 중이었는데 기가 막히게 시간이 비어서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시카고에 몰래 다녀왔어요. 저는 당시 스크린 테스트가 뭔지도 몰랐어요. 하지만 정말로 제가 캐스팅 될 줄은 몰랐어요.”

캐스팅의 기쁨도 잠시, 이후 과정은 험난했다. 당장 언어 소통이 문제였다. 영어 대사에 적응하는 일도 버거운데 브리티시 악센트에 스페인어까지 익혀야했다. 영어 연기는 처음인 배두나는 외국 문화와 언어에 빨리 적응하고 싶어 오디션에 합격한 뒤 매니저도 없이 홀로 베를린으로 향했다.

“한국어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한 뒤 일부러 통역을 두지 않았어요. 직접 말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부딪혀 적응하려고 노력했어요. 감독의 지시를 알아듣지 못하면 다시 말해달라고 부탁했죠. 감독 눈을 직접 보고 소통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대단히 차이가 많거든요. 너무 외로울 땐 팬들과 채팅을 했어요.(웃음) 베를린에 있던 김C와 가끔 만나 밥을 먹기도 했고요.”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는 윤회사상이다. 과거는 현재에, 현재는 미래에 영향을 미치므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서로 단절된 시공간이 아니라는 윤회사상은 영화 속 6개의 이야기를 단단하게 묶어주는 끈이다. 배두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윤회사상에 공감한다며 말을 이었다.

“저는 윤회사상을 잘 몰라요. 하지만 윤회사상은 동양 사람들에겐 알게 모르게 친숙해요. 우리는 평소에 자연스럽게 전생과 후생에 대해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런 개념이 서양에선 생소하거든요. 그래서 서양에선 이 영화를 신선하게 보는 것 같아요.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고 생각해요. 윤회사상과 관계없이 나의 지금 행동 하나 하나가 미래의 나를 만든다는 생각에 동감해요.”

이번 영화를 계기로 배두나가 활동 무대를 할리우드로 옮기는 것은 아닐까? 배두나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제 꿈은 대단히 소박해요. 저는 사실 해외 진출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어요. 이 영화가 다른 커리어를 위한 발판이라고 생각해본 일도 없고요. 그저 제 평생 언제 이런 감독과 배우들과 연기해보겠나 하는 생각뿐이었죠. 좋은 작품을 만날 기회가 오면 출연을 피하진 않겠지만, 따로 해외 진출을 계획하고 있진 않아요.”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2004년 발간과 동시에 각종 문학상을 휩쓴 데이비드 미첼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배두나는 극중 ‘손미451’을 비롯해, 19세기 백인 여성 ‘틸다’와 멕시칸 여자까지 1인 3역을 맡았다. 영화는 1월 9일 국내 개봉한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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