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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여행 다르게 보기, 기술이 필요하다?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해마다 수억명의 지구촌 사람들이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일상과는 다른 것을 꿈꾸며, 설렘과 기대 속에 길에 나선다. 이젠 일상 속에 자리 잡은 여행이지만 어떻게 해야 여행을 잘하는 건지, 사실 여행의 기술에는 무지하다.

‘일상의 발명가’로 불리는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의 본질과 방법을 짧게 비친다. “우리가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곳이 반드시 집은 아니다”, “빨리 간다고 해서 더 잘 보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귀중한 것은 생각하고 보는 것이지, 속도가 아니다”고 말이다.

인문학자 윤여일의 ‘여행의 사고’(전 3권ㆍ돌베개) 시리즈는 여행의 또 다른 층위를 보여준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명저 ‘슬픈 열대’에서 보인 문명에 대한 이해의 틀 위에서 그가 구상하고 밟아낸 여행지와 여행 이야기는 사뭇 다르다.


우선 저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여행을 적어본다. “나라 단위가 아니라 마을 단위에서 생활감각을 체험하는 여행, 자신의 감각과 자기 사회의 논리를 되묻게 만드는 여행, 현지인의 목소리를 듣지만 그것을 함부로 소비하지 않는 여행, 카메라를 사용하되 그 폭력성을 의식하는 여행, 마음의 장소에 다다르는 여행, 물음을 안기는 여행, 길을 잃는 여행, 친구가 생기는 여행, 세계를 평면이 아닌 깊이로 사고하는 여행, 마지막으로 자기로의 여행.”(본문 45쪽)

그리하여 그의 여행은 기존의 앎, 고정관념을 버리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원칙을 세운다. ‘기존에 지니고 있던 앎으로 구체적인 생활의 장소를 내리누르는 일을 피하기’ ‘인문학적 취미에 기대어 한 장소를 쉽사리 의미로 포장해 내놓는 일을 경계하기’ ‘정리된 결론보다는 생각이 거쳐간 절차들을 적기’ 등이다.

자신을 타자화함으로써 자기 존재를 되묻고 자신이 속한 사회의 사고 체계를 의심해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현지인들의 말과 사물과 사건에 귀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길을 나아간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여행자의 윤리다. 과테말라 아티틀란 호수 옆 마을 어귀에서 그는 한 남매에게 시선을 빼앗겨 사진을 찍는다. 아이들도 싫지 않은 기색. 그런데 헤어지려는 순간, 아이가 돈을 요구한다. 아이에게 돈을 주는 게 옳은지 동행들과 옥신각신 끝에 과자를 사주기로 한다. 돈을 주는 건 비윤리적이란 판단이다. 그는 카메라의 폭력성에 주목한다. “내가 피사체로 정한 상대방은 담기지만 정작 그 사람과 함께 있었던 나 자신의 흔적은 남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윤리적이란 것이다.

저자는 여행지의 이미지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허상을 들춰낸다. 가령 인도의 경우 ‘오래된 지혜의 샘이자 영감의 원천’으로 자동 기술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 지난 시기 합리성에 지친 이들의 욕망이 투사된 이미지일 뿐이란 얘기다.

3권으로 구성된 ‘여행의 사고’는 권별로 모두 저자의 치열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첫 책은 멕시코ㆍ과테말라, 둘째 책은 인도ㆍ네팔, 셋째 책은 중국ㆍ일본 이야기다. 인도 콜카타의 테레사 수녀의 마더하우스, 동양의 불교와 서양의 기독교의 종교철학적 차이를 사유하게 한 부다가야, 안나푸르나와 달라이 라마가 머물고 있는 맥그로드간즈로 이어지는 길은 공정여행의 화두를 던진다.

중국과 일본편은 저자가 배움과 관련해 사표로 삼고 있는 인물들을 좇는다. 일본의 문학사상가 다케우치 요시미와 중국 작가 루쉰의 생전 활동을 살피고 그 흔적을 따라간다. 중국 남서부 지방 윈난 성에서 시작하는 차마고도 여정, 중국 소수민족들이 사는 지방을 여행하면서 부딪힌 번역의 문제 등도 공감이 크다.

저자의 여정은 끊임없는 자신을 향한 질문과 회의의 연속이다. 낯선 삶의 맥락과 나의 세계, 보편주의와 문화상대주의 사이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탐색이 진지하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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