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 무성한 와인 고장 방문
“佛 문화를 덩어리로 체험하는 일”
와인·음식에 역사·문화 곁들여
더 감칠맛 나는 미식 여행 속으로…


파리의 에펠탑과 루브르박물관, 몽마르트르 언덕을 게눈 감추듯 둘러보고, 이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는 프랑스 여행은 이제 좀 싱겁다. 오페라하우스 앞 유명백화점에서 명품백을 뒤지는 것도 한두 번이면 족하다. 해외여행과 출장이 잦아지면서 그런 판에 박힌 여행은 이제 졸업할 때가 됐다.

게다가 근래 들어 유럽의 유명 관광지들은 중국인 단체손님 때문에 차분한 감상은 언감생심이다. 좀 쉬려고 떠났는데 콩나물 시루처럼 복잡해 머리만 어지럽다. 그렇다면 그런 뻔한 여행 말고, 좀 테마 있는 여행은 없는 걸까?

이에 와인 컬럼니스트인 조정용 씨가 한 가지 답을 내놓았다. 고려대 무역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하나은행과 서울옥션(미술품경매사)을 거쳐 와인세미나를 진행하고, 맞춤여행을 컨설팅해 온 그는 최근 맛난 현지음식과 와인, 문화에 방점을 찍은 ‘프랑스 와인 여행자’라는 책자를 펴냈다. 스스로 ‘와인 여행자’를 자임하며 10여년간 프랑스 구석구석을 누볐던 조 씨는 그 발자취를 에세이 형태로 재미있게 풀어냈다.

▶프로방스ㆍ보르도로 떠나고 싶으세요?=조씨가 펴낸 ‘프랑스 와인 여행자’는 프랑스의 대표적 와인 산지인 보르도, 론발레ㆍ프로방스, 부르고뉴, 상파뉴 등 4개 지역으로 구분해 짜여졌다. 그러나 저자의 깊이 있는 인문학적 지식과 문화적 마인드는 와인에 문외한인 독자까지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한다. 저자는 그 지역 역사와 미술, 건축, 음악, 요리 등을 풍부하게 곁들이고 있다.

이를테면 프로방스를 소개한 1장에서는 이곳에 머물며 작업했던 반 고흐와 세잔의 발자취를 전하고 있다.

“반 고흐와 세잔의 눈에도 스며들던 햇빛 조각들은 프로방스를 찾은 나의 작은 눈에도 무지개처럼 곱게 찾아들었다. 프로방스는 ‘프로방스에서의 1년’을 썼던 피터 메일에 의해 널리 알려졌지만, 이미 19세기에 인상파 화가들을 매료시킨 매력덩어리 땅이자 로마시대에는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는 길목이었다.”

또 아비뇽을 소개한 대목에선 교황이 유수되었던 건축이며 다리 등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 흥미를 더한다. 

조 씨는 열흘 이상 프랑스 여행을 계획한다면 파리, 보드로에 이어 론발레(프로방스)를 거쳐 부르고뉴, 샹파뉴를 도는 여정을 추천했다. 그는 “프랑스 음식여행의 정점에는 와인이 있다”며 “프랑스 여행에서 와인을 마셔 보지 못한다면 한국에서 김치맛도 못 보고 돌아가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흔히들 한국인들은 수십만~수백만원짜리 값비싼 유명 브랜드 와인을 꿰려 하지만, 프랑스 곳곳의 와인 산지를 여행하다 보면 1만~5만원대 안팎의 와인에서도 뜻밖의 황홀경을 경험할 수도 있다는 것. 이를테면 론발레 지역에서 그는 그 같은 체험을 하기도 했다. 


조 씨는 프랑스 와인 산지로 다가가는 여행은 곧 ‘프랑스 문화를 덩어리로 체험하는 일’이라고 했다. 포도나무는 문명 속에서 성장해 왔고, 포도나무가 무성한 곳에는 사람의 문화가 자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 프랑스 곳곳을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와인 고장을 방문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프랑스에선 언제나 식탁 위에 와인이 있고, 그 옆엔 음식과 정겨운 대화가 있다. 또 그 고장의 너그러운 문화가 병풍처럼 드리워지게 마련이니 이를 마음 편히 즐기라”고 권했다.

▶프랑스 여행의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 책=와인과 음식은 ‘바늘과 실’같은 존재라 주창하는 저자가 각 지역을 돌며 맛본 와인과 그에 어울리는 맛난 음식을 상세하게 기술한 대목은 읽는 내내 입에 침을 고이게 한다. 특히 즐비하게 늘어선 식당 중에서 그 지역의 특산요리를 가장 맛있게 하는 집을 골라내는 요령과, 뜻밖에 조우한 값싸고 감칠맛 넘치는 현지의 미식을 소개하는 대목에선 관광의 핵심이 ‘미식’임을 재삼 확인하게 한다.

이 책이 매력적인 것은 저자가 10년간 와인여행에 몰두해 온 와인 저널리스트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와인 양조자와 허심탄회하게 나눈 와인 이야기며, 인생 이야기는 일반 여행자들은 쉽게 들을 수 없는 진귀한 것들이다.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와인 전문가인 저자와 와인 양조자의 대화는 평소 좋아하는 와인에 깃든 속 깊은 스토리를 바로 옆자리에서 듣듯 생생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또 여행 애호가에게는 프랑스의 각 와이너리 지역에 얽힌 역사와 문화적 배경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을 통해 유럽의 문화와 생활방식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어 반갑다.


저자는 프랑스 와이너리 투어를 꿈꾸는 초보자들을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차례 방문했던 경험을 토대로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와이너리 정보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와인 산지에 자리 잡은 레스토랑과 호텔, 쇼핑몰, 관광명소에 대한 팁을 지역별로 상세히 곁들였다.

특히 그가 추천하는 와이너리와 식당은 꼼꼼히 챙겨 볼 만하다. 저자는 “그 고장의 특별 별미를 파는 식당들이 주욱 늘어서 있을 때, 가능하면 간판이 요란하지 않고 조촐한 식당을 택하라.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식당일수록 요란한 간판을 내걸기 십상이다. 보다 확실하게 하려면 그 고장 사람에게 물어 봐라. 필시 흔쾌히 자신이 즐겨가는 최고의 맛집을 소개해줄 것이다”고 귀띔했다.

일반 여행서와 달리 저자만의 노하우가 담긴 제철요리와 이를 파는 식당, 그리고 각종 소개자료는 후회 없는 여행을 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또한 프랑스 지리를 모르더라도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상세한 지도와 접근교통 편을 세세히 곁들인 것도 주목된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