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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역배우 자매의 자살, ‘드라마 반장’들에 집단성폭행을…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단역배우’로 활동했던 어느 자매의 자살 뒤에 드리워진 충격적인 사연이 공개됐다.

지난 13일 종합편성채널 JTBC ‘탐사코드J’에서는 ‘어느 자매의 자살’이라는 제목으로 한 가정에 깃든 불운한 사건을 집중 보도했다.

때는 2004년 여름. 방송국에서 백댄서로 일을 하던 자매의 동생은 방학동안 평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대학원생 언니에게 드라마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를 권했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야 하는 일이었지만, 막간을 이용해 하는 일을 통해 색다른 경험을 쌓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돈벌이도 되고 흥미도 있는 일이었다. 심심풀이이기도 했지만, 그 일을 선택한 것이 가정엔 '불행의 씨앗'이 됐다.

자매의 큰 딸은 단역배우로 일을 하며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가족들은 의아했다. 공부도 잘하고 똑똑했던 딸은 단 한 번도 일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모범생이었다. 평소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진안을 서성이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집에 있는 물건을 부수기도 하고 엄마와 동생을 때리는 폭력적인 모습까지 비쳤다. 이해할 수 없는 말도 되풀이했다. ‘죽여야돼’라는 말을 반복한 것이다. 


큰 딸의 이상행동이 계속되자, 가족은 정신병원 상담을 결심했다.

상담을 통한 치료를 받아보니 차마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끔찍한 일이 가족에겐 현실이 돼있었다. 큰 딸은 상담을 통해 보조 출연을 하며 집단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특히 업체직원들과 ‘반장’이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큰 딸이 말하는 ‘반장’이란 보조출연자를 관리하는 사람을 일컬었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자리에서 딸은 이들의 손에 돌아가며 성폭행을 당했다.

입에 담을 수 없었던 그 여름의 일들은 큰 딸의 일기에 빼곡히 기록돼있었다. 딸은 자신의 일기장에 성폭행을 당했건 사실을 매일같이 적어가며 ‘성폭행 일지’를 작성했다. 거기에는 성폭행을 한 사람의 명단과 가족사항도 적혀있었다. 그 중에는 임신 중인 부인을 두고 성폭행을 한 사람도 있었다. 성추행을 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큰 딸에게 ‘악마의 손길’을 뻗은 사람은 무려 10명이 넘었다.

당시 이 사건은 경찰의 손에 넘어갔지만, 피의자들은 한결같이 “합의하에 이뤄진 성관계였다”면서 결백을 주장했다. 당시에도 큰 딸은 피의자들과의 대질심문에 정신적으로 괴로워하다 결국 고소를 취하했고, 때문에 이들은 모두 무혐의로 풀려나게 됐다. 단지 심문과정이 힘들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버지 역시 고소 취하를 말렸지만 피의자 가운데 한 명은 전화를 통해 “엄마와 동생을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했던 것이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경찰 측 관계자는 이 사건을 두고 “흔히 말하듯 남자들이 한 여자를 갖고 놀았던 것”이라고 정리했다.

큰 딸은 이후에도 정신과 치료를 계속 받아왔다. 그러나 참담해진 현실을 견디지 못한 딸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9년 8월28일 오후8시18분, 어느 건물의 18층 옥상에서의 투신이었다. 제작진은 큰 딸의 자살시간과 장소에 주목하며, “세상에 대한 강한 분노를 알리기 위해 자살 전 가장 적합한 장소와 시간을 찾았다”고 전했다. 의도적인 선택이었다.

큰 딸이 남긴 유서에는 “자살만이 살 길이다. 더이상 살 이유가 없다”, “날 제대로 건드렸어”, “낮에 가서 사전답사. 밤에 가능한 한 빨리”라는 내용들이 적혀있었다.

언니가 자살을 선택하자 동생도 결국 그 괴로움을 참지 못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매의 자살은 또다른 불행을 가져왔다. 자매의 아버지는 두 딸을 잃은 충격에 둘째딸의 죽음 한 달 후 뇌출혈로 사망했다.

죄의식 없이 자행된 일에 한 가정은 결국 무너져내렸다. 어머니는 하루 아침에 꽃같은 두 딸을 잃고, 동반자인 남편을 잃었다.

그러나 피의자들의 일상은 여전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당시의 사건은 기억에도 없는지 피해자가 자살을 한 사실을 제작진을 통해 알게 되자 “상관없다”는 답변만 전했다. 다른 피의자들 역시 당시 사건에 대해선 “증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질심문 결과 여자와 어머니가 꽃뱀인 것으로 밝혀졌다”는 주장만 반복했다.

방송 직후 해당 사건은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를 통해 서명운동이 ‘성폭행사건의 재수사를 요구합니다’(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petition/read?bbsId=P001&articleId=127526#commentFrame)라는 제목으로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26일부터 현재까지 7469명의 누리꾼들이 서명에 동참했다. 이 내용을 다룬 ‘탐사채널J’는 27일 다시 방송된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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