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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독립 큐레이터’다

  • 2012년 런던올림픽 특별전 기획 이지윤씨…그는 오늘도 ‘창의적 컨설팅’을 위해 세계를 누빈다
  • 기사입력 2011-12-2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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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런던-서울 왕복만 스무차례…

일년의 절반은 유럽서, 절반은 강연·컨설팅으로 

서울·뉴욕서 보내는 나는‘글로벌 노마드’.

뮤지컬 배우에 TV 리포터 경험도…고상하고 우아한 모습의 큐레이터 

실제론 발로 뛰어 다녀야 하기에 항상 운동화를 신고 다니죠.

2001년 런던서 강의 후 11년간 보석같은 제자 440여명…

여름방학마다 매년 30~40명씩 런던으로 찾아와요.

영국 윌리엄 왕자 故다이애나비가 후원하던 노숙자 돕기 국제 사진전시회 제안…

미술도 사회공헌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뿌듯



현대미술 기획사무실 ‘숨(SUUM)’을 설립하고, 유럽과 아시아를 무대로 활동 중인 독립 큐레이터 이지윤(42)은 런던에 산다. 남편과 17, 10세짜리 두 아들과 함께 올해로 18년째 영국에서 살고 있다.

요즘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될 ‘2012 런던올림픽’(7~8월) 부대행사인 IOC의 ‘미디어 아트 특별전’ 기획과 내년 1월 BFI(영국국립영상원), 파이낸셜타임스가 개최할 ‘삼성 Art+prize’ 기획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 중인 이지윤은 올 한 해 한국행 비행기를 무려 스무 차례나 탔다. 꼬박 11시간에 이르는 항공일정을 40회나 소화한 것. 마치 서울~수원쯤을 오가듯 서울~런던을 왕복하며 일년의 절반은 유럽에서, 나머지 절반은 서울ㆍ뉴욕ㆍ베를린ㆍ앤트워프 등을 훑으며 각종 현대미술 프로젝트와 조사ㆍ강연ㆍ컨설팅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올 여름과 가을은 숨막히게 바빴다. 불과 사흘 사이에 런던~서울~대구~광주를 왕복한 적도 있다.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축하하는 삼성의 미디어아트 전시 ‘꿈_백야’와 광주시가 주최한 ‘2011 아트광주’의 총감독을 동시에 맡았기 때문이다.

보통사람 같으면 필시 ‘힘들다’고 한숨을 몰아쉴텐데 그는 늘 웃는 얼굴이다. 상냥하고 당당하다. 남몰래 ‘긍정표’ 특수비타민이라도 조제해 먹는지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그뿐인가. 모든 질문에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 부러지게 답한다. 글도 물 흐르듯 잘 쓴다. 말과 글은 그 사람을 대변한다던가. 완벽한 답변이 나오기까지 그가 얼마나 스스로를 갈고 닦아 왔을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그는 현대미술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지만, 미술을 단지 ‘예쁜 그림이나 조각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미술은 그 이전에, ‘새롭게 사고(thinking)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술이야말로 ‘창조산업의 근본’이자 핵심콘텐츠라 믿기 때문이다. 정책과 경영에도 관심이 많다. 미술사와 예술경영을 연달아 공부한 그는 예술가가 활동할 무대를 잘 조성하는 것도 작품을 만드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자부한다.

이지윤은 사람들이 ‘창조산업’에 대해 물으면 사우디아라비아 국가 브랜딩을 맡고 있는 런던 소호의 작은 광고업체를 예로 든다. 사우디 왕실의 왕자는 젊고 엉뚱한 기획자 및 디자이너 20여명이 포진한 이 회사와 미팅을 갖기 위해 수시로 런던을 찾는다고 한다. 도대체 그들이 어떤 조언을 하고, 어떤 영감을 주기에 한 국가의 왕자를 사로잡는 걸까.

이에 대해 이지윤은 “런던은 다양한 시각경영 컨설턴트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제시하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이는 영국 정부가 1992년부터 창조적 문화예술산업을 가장 유망한 미래산업으로 보고 적극 지원했기 때문이라는 것.

그 같은 답변을 들으니 이 가냘프고 똘망똘망한 한국 여성 또한 이역만리 런던 땅에서 그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달려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그리도 자주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또 그를 만나기 위해 많은 이가 런던을 수시로 찾고 있구나 하고 고개가 끄떡여졌다.

한 해의 막바지인 12월을 한국서 보내고 있는 이지윤은 요즘 심한 몸살 중이다. 신묘년을 가열차게 달려온 끝에 그만 탈이 난 것이다. 안전한 교수직이며 미술관 스태프를 마다한 채 거친 광야를 홀로 누비는 유목민처럼 창조산업으로서의 미술의 중요성을, 그 미묘하고 설레는 세계를 설파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큐레이터가 되기 전의 이력이 독특하다.

▶뮤지컬 배우였고, TV 생방송 리포터였다. 이런 이력을 이야기하면 다들 못 믿겠다는 표정이다. 고3 때까지 성악을 공부해 대학시절 뮤지컬 무대에 서곤 했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영어ㆍ불어도 좋아해 연세대 불문과에 들어갔다. 방송 리포터는 대학 졸업반 무렵 우연한 기회에 하게 됐는데 “썩 잘한다”는 칭찬에 신이 나서 제법 오래 했다. 결혼과 함께 런던 유학길에 오를 때까지 했다. 

-대학 졸업 후 예술경영대학원 MBA 코스를 밟을 계획이었다는데.

▶연세대 시절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불어 연수를 했는데 수업이 끝나면 루브르로 달려가 거의 살다시피했다. 문화의 힘에 매료됐고, 건축과 미술에 정신없이 빨려들어갔다. 1990년 미국으로 연수를 가선 뉴욕의 뮤지컬과 미술관을 열심히 훑었다. 그러면서 “여기, 이 뉴욕에 꼭 한국 것을 소개하겠다”고 다짐했다. 거창하다 못해 좀 뜬금없는 꿈이었지만 아시아와 서양이 문화적으로 교류하면 참 좋을 것 같았다. 그런 일을 하는 기획자가 되고싶어 미국서 예술행정 MBA를 하려 했는데 결혼과 함께 런던행으로 바뀌면서, 골드스미스대학에서 미술사 디플로마와 석사학위를 받았다. 또 런던시티대의 예술MBA 석사과정도 마쳤다.

-석사학위가 두 개인데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향학렬이 대단하다.

▶아니다. 공부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나는 학자보다 미술사를 만드는 현장에서 뛰는 게 더 흥미롭다. 그런데 큐레이터는 감성적인 일인 동시에 연구자다. ‘큐레이터’의 큐라(cura)는 ‘치료하다’는 말에서 유래됐다. 흔히 미술하면 ‘그림’만 떠올리는데 현대미술은 그림뿐이 아닌 ‘창의적인 사고’, 즉 손에 잡을 수 없는 ‘thinking’이 핵심이다. 작품은 그 결과물일 뿐이다. 사고를 하려면 인문학적ㆍ학술적 베이스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2006년부터 런던의 유명대학원인 코토드 아트인스티튜트에서 박사과정을 밟았고, 논문도 썼다. 최종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동안 수행했던 작업과 연계된 실증적 논문이다.

-2003년 숨 프로젝트&아카데미를 런던에 만들었다. 그런데 숨(SUMM)이란 이름이 좀 특이하다. 미술 관련 프로젝트와 연구, 교육을 하는 기구의 이름으론 의아스럽다.

▶처음 2001년에는 ‘art in london’이라는 이름으로 이화여대 조형예술대생을 대상으로 미술사와 큐레이터십을 가르쳤다. 그러면서 독립기획자로 동서양을 연결하며 문화교류로 서로를 ‘숨’쉬게 하고 싶어졌다. 외국인에게 한글 ‘숨’ 폰트를 보여주며 ‘아름다운 집을 뜻하는 픽토그램’이라고 설명하면 그들은 “창조적인 사람이 함께 모여 일하는 집이네”라고 반응한다. 

-여름방학마다 한국 대학생이 당신을 만나려고 런던으로 몰려드는데. 

▶2001년 첫 수업을 시작한 이래 매년 30~40명씩 찾아온다. 미술사, 큐레이팅, 서구 미술시장을 현장학습을 통해 강의한다. 11년간 440여명의 보석같은 제자가 나왔다. 이 중 뉴욕 링컨센터에서 일하는 여성 등 인재가 계속 나오고 있어 보람도 느낀다. 

-올해 뜻깊은 일이 많았을텐데.

▶런던에 이어 서울 서초동에 ‘숨’ 사무실을 개관한 첫 해이고, 비영리기관인 ‘아트클럽 1563’을 가동한 첫 해였다. 벨기에 계열인 하몬그룹의 지원이 절대적이었다. 또 모교인 연세대에서 ‘창조산업과 예술경영’ 강의를 시작했고, 대전 SolBridge대에서 Creative Work라는 강의도 시작했다. 영국 웨일스국립사진미술관에서 열린 ‘Beliving is Seeing’이라는 한국사진전도 기획했다.
 
-지금까지 기획한 전시의 특징이라면.

▶지난 10여년간 한국 작가를 해외에 알리는 전시가 많았다. 비전을 갖고 한 일이다. 또 영국 및 유럽 작가를 아시아에 알리는 전시도 많이 기획했다. 그간 큐레이팅한 국제전은 30여개다.

-윌리엄 왕자가 주도한 왕실행사에도 참여했다던데.

▶세인트앤드루스대에서 한때 미술사를 공부한 왕자는 어머니(다이애나비)가 후원하던 노숙자단체를 돕고자 사진 전시를 기획했다. 이를 위해 인편을 통해 ‘아시아 섹션의 커미셔너를 맡아달라’는 연락이 왔다. 뜻밖이었다. 먼 이국땅에서 외톨이처럼 일한다고 생각했는데 ‘보이지 않는 손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우 영예로운 일이었고, 노숙자의 재활을 돕기 위한 국제사진전에 한ㆍ중ㆍ일 사진작가를 엄선해 작품을 출품토록 했다. 그런데 전시 마지막날 경매를 통해 출품작을 팔아 상당액을 기부하는 걸 보고 ‘미술이 이렇게 사회에 공헌할 수도 있구나’하고 가슴이 뿌듯했다.

영국 왕실의 윌리엄(오른쪽) 왕자가 주관한 자선사진전의 공동기획자로 참여한 이지윤 씨<위>. 유럽 최고의 컬렉터인 스위스의 율리 시크를 만나 대화 중인 이지윤 씨<아래>.

-앞으로 큐레이터가 되고 싶어하는 후배가 많다. 해주고 싶은 말은.

▶모두 큐레이터만 생각한다. 큐레이터는 기본적으로 학예연구자다. 따라서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을 칭하는 말이 맞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큐레이터의 다양한 창의적 사고에서 비롯된 개념을 여러 문맥에 접목할 수 있는 분야가 많아졌다. 기업 문화마케팅, 아트상품 개발, 다양한 문화아카데미, 컬렉션 경영 등 다양한 직종이 있다. 아트는 모든 창조산업의 핵이 되는 오리지널을 콘텐츠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늘 운동화를 신고 다니더라. 운동화 체질인가.

▶TV 드라마에서 큐레이터는 아주 우아하게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힐 듯한 모습으로 나온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정반대다. 발로 뛰어야 할 때가 대부분이다. 운동화 인생이다. 단, 오프닝이라든가 프로젝트 시연회 등이 있는 날 만큼은 아주 멋들어지게, 패셔너블하면서도 그 전시에 맞게 입으려 한다. 

-빨간색을 유난히 좋아한다. 

▶그렇다. 런던이 우울한 날씨일 때가 많아 빨간 머플러, 빨간 니트웨어로 악센트를 주는 편이다. 흰 셔츠에 빨간 머플러의 코디네이션은 나의 트레이드 마크다. 참, 녹색도 좋아한다. 빨강과 녹색의 대비, 생각만 해도 짜릿하지 않은가. 

-패션브랜드 MCM을 이끄는 김성주 회장과 가까운 것으로 안다.
 
▶가깝다기보다 존경한다. 2006년 내가 런던에서 기획했던 ‘한국미술전’에서 만났다. 너무 멋지고 당당했다. 가야 할 길에 대해 선명한 목표와 철학을 갖고 있었다. 촌음을 아껴 쓰고, 남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말에 고개가 숙여졌다. “우리는 남을 제대로 섬기기 위해 성공해야 한다”는 말은 요즘도 마음에 새기고 있다.

-MCM 브랜드의 아트 콜라보레이션 작업에도 관여했다고 들었다. 

▶김 회장이 MCM이 예술과 협력하고 만나는 것을 흥미로워 하셨고, 직접 실천도 하셨다. 나는 리처드 우즈라는 영국 미술가가 MCM과 손잡고 MCM 핸드백의 아티스트 라인이 만들어지는 것을 기획했었다. 김 회장은 연세대에 기부금을 내 연세대 학생 중 우수학생이 런던에서 ‘art in london’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후원도 하신다. 참 대단한 선배이시다.

-미술품이 투자가 될 수도 있다고 보는가. 

▶현대미술을 수집하는 것은 ‘투자’ 그 이상의 것이다. 어떤 면에선 금(金)보다 더 좋은 투자일 수 있다. 좋은 작품은 한계가 없이 꾸준히 올라가기 때문이다. 유명작가의 수작을 원하는 미술관과 컬렉터는 많지만 그 수가 한정적이어서 장기적으로는 매우 매력적인 투자다. 제국은 사라지지만 우수한 예술작품은 끝까지 그 ‘가치’를 품게 마련이다. 단, 독창성이 있는 걸작의 경우에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컬렉터를 계속 만나고 있는데.

▶한 주간신문의 연재를 맡아 세계의 거물 컬렉터를 분석 중이다. 스위스의 율리 시크, 벨기에의 악셀 베르보르트, 뉴욕의 머그라비 등을 인터뷰했다. 그들의 컬렉션을 보며 세계 미술시장을 궁극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컬렉터임을 절감했다. 세계 정상의 수집가를 만나 그들의 컬렉션과 비전, 그리고 삶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건 큰 축복이다. 그들은 미술사 뺨치는 전문성을 갖췄음에도 역사 앞에서, 작품 앞에서 한없이 겸손했다. 감동적인 모습이었다.

-영국 및 유럽의 미술문화정책 등 예술정책에 대해서도 관심을 많던데.

▶미술사를 공부한 큐레이터지만 경영에도 늘 관심을 갖고 있다. 요즘도 미술경영인의 자세로 모든 기획을 하고 있다. 좋은 작가는 좋은 전략과 정책적 맥락이 뒷받침돼야 배출될 수 있음을 절감한다. 지난해 ‘유럽문화정책 강국시리즈’를 한 신문에 연재한 것도 그 때문이다. 과연 어떤 정책이 국가 창조산업의 근간인 아트(art)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자 연구였다.

-내년 런던올림픽 기간에 열릴 미디어 아트전을 설명해달라.

▶현재 IOC와 긴밀하게 논의하며 올림픽정신을 담을 신개념의 미디어 전시를 기획 중이다. 세부적인 것은 추후 발표하겠지만 참신한 전시가 될 것이다. 최근 들어 더욱 새로워진 미술언어인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해 작업하는 작가를 주목하고 있다. 대중에게 미디어 아트가 아직은 낯설겠지만 아마 100년 후엔 이 시대 한 가지 미술 형태로 불릴 것이다. 예전 같으면 전혀 생각지도 못했을 라이프스타일이 요즘 들어 일상화하고 있다. 이를 주도하는 것이 미술이자 예술이다. 예술은 이렇듯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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