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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오딧세이>‘최동원 야구박물관’은 이 땅에 세워져야한다.
18.44m의 직선거리를 유치한 채 두 남자가 서로의 눈을 매섭게 응시하고 서 있다. 늦가을 저녁 둘 사이에 머무는 무색무취의 공기는 무미건조하다 못해 탁하다. 기싸움으로 인해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부는 바람마저도 잠재울 듯 미동도 하지 않은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출된다. 그렇게 그들의 엇갈린 운명은 ‘둥근 야구공과 둥근 배트’의 움직임에 따라 잠시 후면 승패가 갈라질 것이다. 위기와 기회라는 양날의 칼 위에서 진검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주도권을 쥔 투수는 흔들리는 공의 궤적과 타자의 의표를 찌르는 투구의 방향을 염두에 두고, 그의 기대를 허무는 역습을 상상한다. 반면 노련한 타자는 그동안 축적된 투수의 패턴을 머릿속에 그리며 본인이 노리는 방향으로 공이 날아오기를 기대한다. 동시에 관중은 일제히 마른침을 삼킨다.

드디어 투수의 손끝을 미끄러지듯이 벗어난 결정구는 일정한 경로를 타고 타자에게로 다가온다. 타자는 투수의 손끝에서 벗어난 공을 12m 지점까지 육안으로 지켜보며 칠 것인가, 말 것인가를, 0.25초 미만의 시간 안에 결정해야 한다. 지금의 이 상황은 야구현장에서 어김없이 일어나는 모습이다.

1984년 한국시리즈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경기였다. 그 역사의 중심에 ‘최동원’ 이라는 사람이 있었기에 더더욱 그렇다. 당시 그는 혼자서 4승1패를 거두며 롯데 자이언츠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한마디로 투수가 할 수 있는 모든 기록을 세웠다. 7차전 중 5경기에 나와서 완봉승, 완투승, 패전투수, 구원승, 완투승까지. 한마디로 이보다 더한 산해진미는 없었다.

경기의 결과뿐만 아니라 우승 인터뷰 역시 퍽이나 인상적이다. “팀에서 나를 필요로 했기에 마운드에 섰다”라는 말에서 숨겨진 인간미와 그를 둘러싼 의식세계를 엿볼 수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역사의식과 소명의식을 두루 갖춘 지성인의 모습이었다.

그런 그이기에 당시 선수협의회를 주도한 행동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암울한 시대 상황은 일벌백계의 희생양을 요구했다. 하지만 둥지를 떠난 파랑새는 예상과 달리 지난(至難)한 세월을 그답게 이겨내고, 홀연히 돌아와 후배양성에 열정을 쏟는 반전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더욱이 그 남자의 지고지순한 연고팀 사랑은 뼛속까지 부산 롯데였다. 아무도 모르게 술상 밑에서 롯데를 응원했다니….

하지만 신(神)의 시기인가. 얼마 전 그는 영영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한국의 프로야구를 논하면서 과연 그의 족적을 피해갈 수 있을까? 소영웅주의로 치부하고 말 것인가? 다양성을 인정하는 한국문화는 묘연한 것인가. 하지만 결코 피할 수도, 접을 수도 없는 야구사의 큰 단면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야구천재 ‘최동원의 야구박물관’은 부산에 반드시 세워져야 한다. 그를 진정 사랑한 후배들과 팬들에게 남겨진 숙제다. “동원아, 네가 내 아들로 태어나 이 엄마는 정말 행복했다”는 어머니 음성이 귓가에 맴돈다.


칼럼니스트 변재곤 aricom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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