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연평도 포격 6개월> 그들은 아직도 ‘비둘기 집’에 산다
연평도를 둘러싼 서해바다는 여전히 거칠었다. 지난 19일부터 오늘 까지, 높은 파도와 거센 바람 탓에 연평도로 들어가는 뱃길은 굳게 닫혀버렸다. 그 거친 풍랑과 넘실 대는 파도 저편에는 지난해 11월 23일 북한의 포격으로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연평도, 그리고 그곳을 평생 터전으로 살아온 주민들이 있었다. 한 때 섬을 버리고 뭍으로 나와 겨우내 피난민과 다름 없는 생활을 했던 주민들. 대부분이 다시 섬으로 돌아갔지만 마음에 남겨진 생채기도 아직 그대로다. 집을 잃은 주민들은 여전히 임시조립주택에서 살고 있다. 39채의 임시주택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비둘기 집’을 닮았다하여 주민들 사이에선 ‘비둘기 집’이라 불린다. 뭍의 사람들은 반년 전 그날의 일을 점차 잊어가고 있다. 하지만 연평 주민들은 반년 전이나 다름 없다. 그들은 아직도 ‘비둘기 집’에 산다.

▶전파된 가옥 그대로…복구작업 이제서야=포격 이후 6개월이 지났지만 마을에는 당시 전파돼 부서지거나 무너진 가옥 잔해는 그대로 남아있다. 완파된 27가구와 일부 파손된 주택, 창고, 상가 등을 포함해 총 54개 건물을 신축하는 재건공사는 지난 19일 1차 발주 입찰을 실시하는 등 이제야 시작됐다. 옹진군청은 “겨울이 오기 전인 10월 말까지 전 가구 전 세대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주민들은 불안하다. 또한 금이 가는 등 일부 파손을 입은 주택 약 272가구에 대해선 아직 지원 계획도 정해지지 않아 주민들의 속은 타들어간다.

김재식 연평도주민대책위원회장은 “반 년이 지났지만 복구 된 건 하나도 없다. 철거를 이제 막 시작했다. 복구는 내년이나 되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반파’의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일부 파손 주택은 지원도 못받고 있다. 몇 년 후에 혹시라도 집이 무너지면 보상 받을 길도 없다”고 한탄했다.

비둘기 집 살이를 하고 있는 주민들의 삶은 더욱 고되다. 18㎡(5.5평) 크기의 임시주택은 성인 2명이 누워도 어깨를 부딪혀야 할 만큼 비좁다. 김 회장은 “2명 이상은 함께 잘 수 없는 크기다. 4명 이상의 가족은 두채의 비둘기집에 떨어져 살아야 한다. 집이라도 지어져야 이들이 다시 생업을 이어가며 터전을 잡을 수 있는데…”라며 안타까워 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방공호 개선작업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최두규 연평파출소장은 “방공호를 새로 짓는 계획을 세웠다. 추가로 지을 장소를 물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 공사 실행은 안된 상태다. 주민들의 입출입이 지금보다 용이할 수 있도록 설계 등을 변경하고 있는 중이다. 파손된 주택 복구를 우선으로 하고 그 뒤에 대피소를 개선작업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억 빚져서 조업 다시 시작했는데”…꽃게잡이 흉년=지난해 북한 포격 당시 어구들이 대부분 파손을 입은 데다가 섬을 떠나면서 정상 조업을 하지 못했던 주민들은 올 해 그 피해를 회복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지난 겨울 유난히 추웠던 탓인지 올 봄 꽃게잡이가 영 신통치 않아 주민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지난 해까지 꽃게잡이를 하며 생계를 이어오던 김민학(67)씨는 올 해 조업을 중단하고 공공근로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4월20일께부터 조업을 시작했지만 수익이 평년보다 절반 수준으로 줄어서다. 김씨는 “평소에 1500만원 정도 팔아야 수익이 남는데 올해는 700만원 정도 밖에 벌지 못했다. 포격 때 어구들이 파손된 탓에 새로 사야하는데 어구 하나에 1000만원에 달한다. 700만원 정도로는 생활을 이어가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정철국(60)씨는 “어구 하나에 1000만원 정도다. 배 한척에 평균적으로 어구 25개가 있으니 그것만 2억5000만원이다. 지난 포격으로 어구들이 많이 파손돼서 1억 이상 빚을 지고 올해 다시 꽃게잡이를 시작했는데 잘 잡히지 않아 어민들이 죽을 상”이라고 토로했다.

▶“그래도 우리 살 곳은 이곳 뿐”=그래도 주민들은 연평도를 떠나지 않는다. 임시주택에 살 지언정 평생 터전이었던 고향을 버릴 수가 없어서였다. 포격의 상처는 그대로 남아있지만 산 사람은 다시 살아간다.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오듯 연평 주민들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최 소장은 “불안감이 아주 없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예전같은 두려움은 많이 사라졌다. 포격 이후 얼마 동안은 군부대 훈련이 있으면 다들 대피소로 이동했는데 요새는 그런 모습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부모님이 연평도에 머물고 있다는 김용섭씨는 “포격 이후 인천으로 나오시라고 몇번 권유했는데 부모님이 싫어하셨다. 바다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고 하시더라. 지금은 포격 당시처럼 두렵거나 힘들진 않다. 많이 안정이 됐다”고 전했다.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는 최옥선(56ㆍ여)씨는 “지난 3월에 다시 연평도로 돌아왔다. 봄이 되니까 연평도를 찾는 관광객들도 다시 늘어나고 있다. 포격 전 평온했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면서도 “북한 장사정포와 방사포가 포문을 열었다는 뉴스를 들을 때면 덜컥 겁이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박수진ㆍ이자영ㆍ문영규 기자@ssujin84> sjp10@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