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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진 40원 어디로?...기름값이 기가막혀
시장은 결코 선하지 않았다. 국내 정유사들이 휘발유ㆍ경유 공급가격을 ℓ당 100원씩 인하한 뒤 일주일이 지났지만 주유소 판매가격은 정직하게 따라가지 않았다.

15일 석유공사의 주유소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4일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ℓ당 1944.59원으로 가격 인하 직전인 지난 6일 1970.92원 보다 26.33원이 떨어졌다. SK에너지의 사후 할인분을 반영하면 15일 전국 평균가는 ℓ당 1910.34원으로 6일 보다 60.58원 내렸다.

정유사는 100원 내렸다지만 시장에선 60원만 내려간 것이다. 경유는 그 차이가 더 벌어진다. 14일 경유의 전국 평균가격은 ℓ당 1752.11원으로 6일(1801.62원) 보다 49.51원 떨어지는데 그쳤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우선 주유소들이 재고분 소진 등을 이유로 들어 가격을 일괄적으로 따라 내리지 않는 게 주요 요인으로 분석된다.

지난 12일에는 휘발유의 전국평균가격이 다시 올랐다. 11일 석유공사가 “향후 국제가격이 급등하지 않는 이상 자영주유소 가격에 인하분이 반영돼 추가적인 하락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힌 예측이 하루 만에 보기좋게 빗나갔다. 시행 첫날 100원을 즉각 인하했던 직영주유소들 조차 슬그머니 가격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시민모임은 11일 대비 13일 SK 직영은 ℓ당 26.5원, 자영은 ℓ당 4.7원, GS 직영은 ℓ당 23원 인상했다고 분석했다.

가격 인하에서 무폴주유소가 소외되는 것도 평균 가격선을 높이는 원인이다.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4사의 상표를 쓰지 않는 무폴주유소는 전국에 600곳. 이 중 SK에너지로 부터 공급받던 무폴주유소는 신용카드 사후결제에서 제외돼 비싼 기름을 받아야 한다.

현대오일뱅크는 손실을 이유로 계약을 맺지 않은 무폴주유소에는 직영이나 자영과 동일하게 100원 할인된 기름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에쓰오일이나 GS칼텍스도 손실분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격을 내리는 대신 공급물량을 줄이는 등 조절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제기하고 있다.

기름 값이 가장 쌌던 무폴주유소는 지난 7일 정유사의 가격인하 뒤 가격경쟁력이 떨어졌다. 14일 무폴의 휘발유 평균 가격은 ℓ당 1921.63원으로, 에쓰오일(1916.33원)보다 비쌌다.

국제유가 상승세도 감안해야 한다. 국내 제품가에 1~2주 뒤에 반영되는 국제유가는 두바이유 현물기준으로 지난달 29일 배럴당 107.92달러에서 계속 올라 11일 118.32달러를 기록했다.

정유 3사는 SK에너지의 갑작스런 폭탄 선언 때문에 주유소 유통마진 흡수를 감수하고도 공급가를 내릴 수 밖에 없었다고 항변한다. 이런 가운데 SK에너지 조차 4일 발표 당시와 달리 신용카드 할인이 오는 27일부터나 가능한 상황이다. 신용카드 결제액에서 휘발유와 경유 결제만 따로 100원을 인해해야하므로 시스템 준비가 예상보다 1주일 가량 더 늦어지고 있다. 공급가와 시장가가 다른 또다른 이유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정유사의 팔을 비틀어 가격을 내린 탓에 시장에서 왜곡 현상이 빚어질 수 밖에 없다고 비판이 나온다. 석유제품 내수시장에선 정유사, 대리점, 직영 및 자영 주유소, 무폴 주유소 등 공급 주체들이 각자 이해타산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정직한 가격 인하는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예전처럼 정부가 제품 가격을 고시한다면 정확하게 떨어지겠지만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조건에서 100원이 똑같이 내려가길 바라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휘발유, 경유 가격은 큰 폭의 인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달 100달러대에서 움직이던 두바이유는 4월 들어 14일째 110달러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정유사 공급가격이 상승되는 추세 속에서 100원을 내린 것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가격 급감을 느끼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한지숙 기자 @hemhaw75>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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