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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인호의 전원별곡]제1부 땅 구하기-(33)귀농·귀촌 지원정책에 ‘전원氏’가 두 번 운 까닭은
전원생활을 위해 도시에서의 22년간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2010년 하반기 강원도 홍천에 집을 지어 이주한 전원氏(가명·49)는 정부의 현실과 동떨어진 귀농·귀촌정책 탓에 도움을 받기는커녕 되레 시간 낭비와 정신적 고통 등 피해만 입었다. 그는 “정부의 귀농·귀촌 지원책이라는 게 생색용, 전시용에 불과한 데다 정책수립 및 집행기관 간 엇박자로 실질적인 지원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연인즉 이렇다. 전원氏는 지난해 집짓기 공사에 들어가기 전에 정부의 귀농·귀촌 지원정책부터 살펴봤다. 농가주택 구입 및 신축 관련 최대 4000만원 까지 연리 3%, 5년 거치 10년 분할상환 조건으로 지원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집 지을 자금이 부족해 곤란을 겪던 전원氏로선 한 가닥 돌파구가 보이는 듯 했다.

그런데 그 지원 자격 및 요건에 ‘2005년 1월1일부터 사업신청일 전에 세대주가 가족과 함께 농어촌으로 이주해 실제 거주하면서 농어업에 종사하고 있는자’로 명시되어 있었다. 의문이 든 전원氏는 바로 홍천군과 거주지 면사무소, 그리고 실제 대출 담당기관인 지역 농협에 문의했다. 여러 경로를 거쳤지만 서로 떠넘기는 통에 명쾌한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종합해보면 주택 구입 및 신축 대출 지원은 결국 집을 준공한 뒤 그 집(대지 포함)과 주변 농지(담보물이 부족할 경우)를 담보로 설정해야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전원氏는 처갓집과 다른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빌려 지난해 7월말 집(전용 91㎡)을 준공하고 그해 10월 중순 홍천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가을농사를 갈무리하고 농업인임을 증명하는 농지원부 등록도 마쳤다.

이제 자격조건을 모두 충족시켰다고 판단한 전원氏는 2011년 2월1일 주택 신축 지원자금을 신청하기 위해 면사무소를 찾았다. 당초 전화상으로 문의했을 때 문제가 없다던 면사무소 담당은 그러나 구비 서류 등을 상급 기관인 홍천군 담당에게 알아보더니 “집이 이미 지난해 지어졌으면 올해 신축자금 대출 신청은 안 된다고 한다”며 접수를 거부했다. 지난해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40대 후반에 귀농이라는 남다른 결단을 내리고 새로운 인생2막의 꿈에 부풀어 있던 전원氏는 “이런 엉터리 농정을 믿고 귀농한 내가 혹시 잘못 선택한 것은 아닌지 벌써부터 후회가 밀려든다. 행정기관이 도시민의 귀농·귀촌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되레 발목을 잡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어처구니없는 전원氏의 사례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정부의 귀농·귀촌 지원책이란 게 얼마나 ‘빛 좋은 개살구’ ‘생색용·전시용’인지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먼저 현실을 무시한 탁상정책과 그로 인한 정책 수립기관과 일선 집행기관 간의 엇박자,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신청자(민원인)의 몫으로 남겨진다는 점이다.

농림수산식품부가 2011년 1월 각 지자체에 시달한 ‘귀농·귀어 농어업 창업 및 주택구입(신축 포함) 지원사업’ 지침을 보면, ‘사업대상자(신청 자격)는 2006년 1월1일부터 사업 신청일 전에 세대주가 가족과 함께 농어촌으로 이주하여 실제 거주하면서 농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자’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전원行을 준비하는 상당수 도시민들은 일선 행정기관에 문의해 보기도 전에 포기한다. 들리는 말에 준공된 집을 담보로 대출해주는 것이라고 하니 당연히 사후(준공 후) 신청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때문에 농림수산식품부는 뒤늦게 2011년 지침에 ‘주택구입 및 신축 지원은 농어촌 지역으로 이주 예정인 자도 지원 대상에 포함한다’는 내용을 새로 추가했다.

그러나 이를 추가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 추가된 내용 역시도 ‘다만, 주택 구입·신축 완료하고 주소지 이전 확인한 이후 자금 대출이 가능하다’는 단서가 달렸다. 결국 집을 지은 뒤에야 그 것을 담보로 대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매 한가지란 것이다.

결국 지난해까지는 주택 구입 및 신축 자금 신청 요건을 맞추려면, 미리 시골에 내려와 전·월세로 살든가, 아니면 시골에 있는 처가나 시집살이를 하면서 자격요건을 충족시켜야 했다. 고작 4000만원, 그것도 준공 후 담보 대출인 데다 2~3%포인트 대의 금리 지원을 받기위해서 말이다. 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행정인가. 사전 대출이 아닌 사후(준공 후) 대출이면서도 억지로 농업인의 요건을 먼저 갖다 맞춘 것이다.

일선 행정기관의 부실한 업무 처리도 시골行 및 정착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전원氏는 지난해 집을 짓기 전에 홍천군과 해당 면사무소, 그리고 실제 대출집행 기관인 지역 농협에 주택구입 및 신축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지를 미리 문의했다. 하지만 서로 떠넘기기와 부실한 답변으로 도움을 줘야 할 일선 민원기관이 되레 전원氏에게 피해를 입힌 셈이 됐다. 심지어 올해도 해당 면사무소에서는 전원氏에게 “자격이 되는 것 같으니 와서 신청하라”고 했다.

올해 주택구입 및 신축자금 신청 대상에 새로 추가한 ‘농어촌 지역으로 이주 예정인 자’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도 마련되지 않아 이 역시도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만약 농어촌 이주 예정자를 자금지원 대상자로 선정했는데 착공 및 준공이 장기간에 걸쳐 미뤄지게 되면 결국 다른 신청자의 기회를 박탈한 셈이 되고 만다. 또한 사후(준공 후) 대출이면서도 전원氏와 같이 주택을 준공한지 1년도 안되고, 시골로 전입한지 6개월도 안 되는 명백한 실제 귀농인은 되레 지원대상에서 제외돼 형평성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정부의 귀농 및 귀촌 지원책이 생색용, 전시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시·군 가운데 가장 면적이 넓은 홍천군의 주택구입 및 신축 지원 배정규모는 고작 1억2000만원이다. 최고 4000만원까지이니 올해 3명만이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창업자금 지원은 세대당 최고 한도가 2억 원 인데, 지난해 A군에 배정된 총 금액이 1억8000만원이었다. 사정이 이런 데도 정부의 귀농·귀어 지원을 위한 재정 투자 계획을 보면, 지난해 총 1200억 원에서 올해는 500억 원으로 절반 이상 격감했다.

쥐꼬리 지원에 어렵게 대출 지원대상자로 선정됐다고 해서 4000만원이 선뜻 대출되는 것도 아니다. 금융기관의 담보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대출금액이 팍 깎인다. 준공 후에 4000만원 대출될 것으로 알고 집을 지었는데, 나중에 그 절반인 2000만원 밖에 대출이 안 돼 낭패를 본 사례도 부지기수다. 실제 K씨는 66㎡(20평)짜리 집을 공사비 4600만 원 등 총 6600만원을 들여 지었다. 이 집(대지 포함)의 감정가는 4900만원, 감정가의 75%인 3600만 정도만 대출이 가능하다. 여기에 세입자 자금보호법으로 1400만원이 또 제외된다. 집을 임차하는 경우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결국 K씨가 대출받은 금액은 4000만원의 절반 수준인 2200만원이었다. 실제 금리도 3.4%였다. 이 처럼 총 지원 금액 자체가 턱없이 부족한 데다 조건이 까다롭고 실질적인 도움도 안 되는 지라 신청 자격을 갖춘 사람들조차도 이를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차라리 다른 금융기관에 금리를 1~2%포인트 정도 더 주더라도 쉽고 편리하게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실을 무시한 기준만을 고집해 정작 전원氏같은 실수요자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원氏는 이미 확실한 귀농인임이 입증됐다. 그런데도 1년 단위 사업임을 내세워 행정당국은 구제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전원氏는 “정책의 목적이 도시인의 귀농 및 귀촌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면, 당연히 진짜 귀농인이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진정 행정기관이 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헤럴드경제 객원기자,전원&토지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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