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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객원칼럼>인문학 신드롬을 그저 지켜보는 정치권
샌델·장하준교수 신드롬

더 좋은 삶이 사회 화두

여야 복지경쟁 좋지만

교육혁명 경쟁도 시작돼야



요즘 부모님을 만나면 괴롭다. 옛날에는 집에 빽빽이 가득한 난해한 철학 서적들을 보며 흐뭇해하면서, 다만 경제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으시곤 했다. 하지만 요즘엔 잔소리의 주제가 확대돼 심지어 나의 강점이었던 철학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바로 작년에 이어 올해 벽두를 강타한 마이클 샌델 신드롬 때문이다. 요즘엔 교육방송 강연 영상을 꼼꼼히 챙겨보면서 ‘넌 좀 그렇게 강의할 수는 없니’라고 핀잔을 주로 늘어놓으신다. 세상에,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철학 교수법에 대해 강의를 듣는 날이 올 줄은 정말 몰랐다. 

아마 한국의 많은 부모도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방송계 인사에게 들어보니 방송 다음 날 재방영 압력 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나의 부모님은 교수를 자식으로 둔 심정에서 충격을 받았지만, 대다수 학부모들은 석학에게 기죽지 않고 멋지게 질문을 던지는 학생들과 자기 자녀들을 비교하며 경악했다고 한다.

요즘 서점에 가면 마이클 샌델 신드롬에 이어 장하준 신드롬까지 강타하고 있다. 아빠가 중학생 딸의 손을 잡고 와서 장하준의 신자유주의 비판 서적을 고르는 것을 볼 때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 아빠는 그 책이 한때 국방부 금서로까지 지정된 불온한 좌파 서적이었음을 알고 있을까? 아마 알았다 하더라도 그는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장하준 교수의 책 내용은 시장 전체주의에 대한 지극히 건전한 비판을 담은, 매우 친자본주의적 관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인문학 신드롬은 심상치 않은 시대적 변화의 징후라 할 수 있다. 70, 80년대는 권위주의적 정부가 지배하던 암울한 시대였다. 이 당시는 제도권 학교가 말해주지 않은 인간과 세계의 진실을 찾는 운동권들의 비밀 스터디 시대였다. 그 당시의 마이클 샌델은 ‘우상과 이성’ 등 도발적인 질문으로 가득한 명저를 집필한 고 이영희 선생님이었다. 이후 민주화는 되었지만 권위주의 대신에 시장 물신주의와 스펙에 대한 강요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망은 잠시 유보되거나, 혹은 운동권 출신 학원 강사들이 수능 강의에 자기들 시절 배운 운동권 사회과학을 삽입하는 기이한 형태로 채워졌다. 이 ‘부자 되세요’의 시대가 정부의 레임덕과 함께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대신에 더 좋은 삶, 더 좋은 세계에 대한 화두가 중요해지는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그 징후가 샌델과 장하준의 신드롬으로 나타나고 있다. 과거 운동권 출신 강사들에 의한 인문학 학원 강의는 지구화의 시대, 모든 것이 다 연결되는 네트워크의 시대에 맞게 지구적 석학들의 안방 강의로 전환됐다. 이는 이제 시작에 불과할 뿐 더 다양하게 확대되며 한국 교육계에 큰 여진을 남길 것이다.

지금 제도권 교육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의 징후들이 시작됐다. 서강대 이덕환 교수 등이 수십년 만에 혁신한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의 변신은 잔잔한 파장을 던지고 있다. 인간과 우주의 문제를 융합의 시선하에 우리 삶 속에 끌어들인 그의 시도는 오늘날 교육의 중요 과제에 대한 실천적 응답이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경희대 교양전담기구인 후마니타스의 더 좋은 삶, 더 나은 세계, 더 성숙한 인간 등 대학다운 큰 질문에 대한 융합적인 교양강의 개설 운동에도 한국 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난 도대체 한국의 정치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를 때가 많다. 여당이 얼마 전 장하준 교수를 불러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자신들과 이념이 다른 교수를 부른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정치의 본질적 역할은 문화센터의 기능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대정신의 발현을 수용하면서 이를 의미 있는 교육혁명의 입법으로 결실을 맺는 것이다. 지금 여야 간, 대선 후보 간 복지 경쟁도 좋은 시도이지만 샌델과 장하준 신드롬을 수용한 교육혁명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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