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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적과의 동침 (6)
글 채희문/그림 유현숙

남자와 여자는 달라도 한참 다른 모양이다. 오죽하면 같은 지구상에 사는 사람들이건만 누구는 화성에서 온 존재이고, 누구는 금성에서 온 존재들이라고 할까. 유호성이 들뜬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모텔로 들어서자 김지선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아니 갑자기 모텔엔 왜 들어가요?”

“비비러 가자면서?”

“글쎄, 비비러 가는데 어째서 모텔로 가냔 말예요?”

“일류호텔까지 찾아갈 겨를이 없어. 난 지금 급하다니까? 그리고 자기도 춥다면서? 모텔이면 어때? 그냥 들어가서 비비자고. 비벼야 열이 나고, 열이 나야 온 몸이 따뜻해 질 거 아니야?”

“미치겠어, 정말.”

김지선은 한숨을 길게 내뿜었다. 그녀가 비비러 가자는 뜻은 호텔이나 모텔로 가서 몸을 비비자는 의도가 아니었다. 그녀는 당장에라도 유민 회장을 찾아가서 장차 출범하게 될 레이싱 팀의 핵심멤버가 되었다는 신고식을 하러 가자는 뜻이었다.

“회장님을 뵈러 가자고요. 회장님께 예쁘게 아부하면서 신고식을 치르자고요.”

“그럼, 우리 아버지에게 손바닥을 비비자는 뜻이었어?”

“물론이지요. 앞으로 유민 제련그룹의 레이싱 팀에 합류하자면서요? 그러자면 회장님 허락을 받아야 하잖아요? 들러리만 서는 레이싱 모델에서 핵심멤버인 레이싱 선수로 탈바꿈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데 그깟 아부도 못할 줄 아세요?”

“그럴 필요 없어. 아버지와의 협상은 내가 감당하면 돼. 자기까지 비천하게 굽실거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야.”

유호성이 막무가내로 모텔 입구를 향해 차를 들이밀자 김지선은 얼굴을 외로 돌린 채 눈살을 찌푸렸다. 유호성이 아무리 자존심을 내세운들 그는 아버지 유민 회장의 후광을 벗어나면 백수건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뭐라고? 자기만 믿으라고? 그녀는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 중차대한 일에 직접 나서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엔 겉으로 드러나게 내색할 수도 없는 처지임을 깨닫고 곧 얼굴을 폈다. 손가락 끝으로 눈가에 잡힌 주름을 펴면서 그녀는 유호성의 표정을 힐끗 훔쳐보았다. 


“포르셰 968 카브리올레를 몰고 기껏 모텔에 섹스나 하러 다닌다는 게 우습지 않아?”

“하긴… 우습기도 하군. 그렇지만 막상 할 일도 없잖아?”

“할 일이 왜 없어? 유민 회장님의 심장에 불을 질러야지. 최소한 골프선수보다는 멋진 모습을 연출해야 하는 거 아냐?”

“아버지 앞에서 데몬스트레이션을 하자는 말이로군.”

“그래, 맞아요. 카브리올레… 붉은 독수리를 몰고 회장님께 달려가는 거야. 회사 건물 주위를 RPM을 최고로 높여서 100바퀴쯤 도는 거야. 회장님께서 창문으로 내다보시겠지. 처음엔 어떤 미친놈들일까? 하실 지도 몰라. 그렇지만…”

“그만, 무슨 뜻인지 알겠어.”

유호성은 그녀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다가 갑자기 차를 돌려 모텔 밖으로 빠져나왔다. 맞는 말이었다. 그녀와 만난 대부분의 시간은 섹스, 혹은 섹스를 하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소비될 뿐이었다. 오로지 섹스에 이르기 위해 물 쓰듯 돈도 쓰곤 했었다. 물론 아버지 유민 회장의 신용카드를 휘둘러댄 것이지만, 어쨌거나 돈을 펑펑 쓰고 다니는 것은 우아하고 멋진 일이라 여기곤 했다. 그러나 우아한 일이건 멋진 일이건 간에 그 종점이 다만 섹스일 뿐이라니… 문득 한심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좋아, 나도 이제는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어.”

그는 입술을 앙 다문 채 유민 제련그룹을 향해 차를 몰아가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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