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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쁜 녀석들] 한정훈 작가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고 말하고 싶었죠” ①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그거 봤어요? ‘나쁜 녀석들’?”, “제대로 된 장르물 하나 나왔네요.”, “대본을 정말 잘 썼던데?”

요즘 방송가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이야기 중 하나가 케이블 영화채널 OCN에서 방영 중인 ‘나쁜 녀석들’에 대한 ‘품평’이다. 채널 론칭 당시부터 장르물에 집중해온 OCN에서 지난 4일 첫 방송된 ‘나쁜 녀석들’은 탄탄한 대본과 영화 같은 영상, 흠 잡을 데 없는 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져 관계자들이 예의주시하는 작품으로 떠올랐다. 

이 ‘핫’하다는 드라마는 OCN에서 ‘뱀파이어 검사’ 시즌1, 2를 집필한 한정훈 작가(32)가 대본을 맡았다. 관계자들은 “소설을 읽듯 상상 가능한 구체적인 대본”이라 “영상으로 표현할 때 대본과의 오차가 적다”(CJ E&M 조문주 프로듀서)고 말한다. 밀도 높은 구성과 스토리를 쓰기에 당연히 함께 작업하고 싶은 작가로도 이름을 올린다. 최근 서울 상암의 한 카페에서 한정훈 작가를 만날 때에도 ‘커피프린스 1호점’(MBC) 이윤정 PD가 찾아와 인사를 건넸다. “드라마 정말 잘 보고 있어요. 나중에 미스터리물 하고 싶은데 그 때 꼭 다시 봐요.”


‘나쁜 녀석들이 나쁜 놈을 잡는다’는 발상으로 출발한 드라마는 김상중(형사), 마동석(조직폭력배), 박해진(사이코패스), 조동혁(청부살인업자)이 주인공이 돼 극악무도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법과 질서’가 무용지물인 ‘절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히어로처럼 등장한 범죄자들의 수사과정은 ‘통쾌한 한 방’을 안긴다.

2011년 처음 구상, 1년여의 집필 기간을 거쳐 올초 대본이 마무리된 ‘나쁜 녀석들’은 오로지 한정훈 작가의 머릿속에서 태어났다. 드라마는 두 가지 지점에서 기존의 범죄수사물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하나는 “절대선만을 추구하지 않는 ‘안티 히어로물’ 구조의 이야기”라는 점, 다른 하나는 “어려운 수사보다는 캐릭터를 부각”한다는 점이다.


“인터넷만 켜면 수많은 범죄가 쏟아져 나와요. 어떻게 이런 사건까지 벌어질까 싶을 정도의 범죄들이 등장하는데, 우리는 단지 그 기사를 클릭해보지 않을 뿐이죠.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범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것에 어떤 불만을 가지고 있는지, 범죄는 점점 고도화되고 있는데 우리는 어떤 불안감을 얻고 있는지를 고민했어요. 이 불안감을 드라마로 해소시켜주고 싶었죠.”


통쾌함은 역발상에서 나왔다. 공권력은 이미 공범이 돼 흉악 범죄를 방조하는데, 범죄자들이 또 다른 ’악의 무리‘로부터 사회를 구원한다. 물론 한 작가는 “어떤 특정집단(경찰, 정부)을 무능력하다고 치부하는 것도, 범죄자를 미화하는 것도 아니”라고 분명히 짚는다. 다만 기존의 범죄 수사물과는 달리 “사회상을 반영해 답답함을 풀어주면 카타르시스가 있다”고 강조한다. 

드라마에선 세 사람을 주목할 만하다. 이미 범죄수사물에서 한 번쯤은 봐왔을 캐릭터(조폭, 사이코패스, 청부살인업자)가 한 데 모였다. “기존 작품에서 한 명씩 나오는 인물을 한 데 모은 ’어벤저스‘식 구조에요. 이들이 왜 범죄자가 됐는지를 설명하지 않아도 납득 가능한 캐릭터를 조합했죠. 시청자에겐 생소할 게 없는 전형성을 가진 인물이에요.” 


한 작가는 “범죄자들의 사건 해결이라는 줄기에 방점을 두기 위해 수사과정에서 각자의 장기를 발휘할 때 장단점이 겹치지 않는 세 유형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육감적으로 범죄에 다가서는 조직폭력배, 살인의 결과에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청부살인업자, 심리를 분석해 추적하는 사이코패스가 그것이다. 거기에 존재만으로도 브라운관을 압도하는 오구탁 형사 역의 김상중이 더해지자, “거칠 게 없는 네 사람의 조합”이 완성됐다. “한 가지 목적이 생기면 타협 없이 직진만 하는 인물들이 통렬함을 주는 것 같다”는 게 한 작가의 생각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압권이다. 한 작가는“애초에 모든 캐릭터를 만들면서 생각했던 배우들이 드라마에 출연한 행운”도 따라왔다고 한다. 배우들은 이미 캐스팅 단계에서 9회분까지 나온 대본을 전달받고 흔쾌히 ‘오케이’ 했다. 


인물들이 해결해가는 범죄는 있을 법한 사건을 다뤄 공포가 극대화된다. 우리 사회를 공포에 젖게 한 상징적인 흉악범죄(장기밀매, 인신매매, 연쇄살인)가 등장하니 시청자들은 회차마다 이름 난 범죄자(유영철, 오원춘)도 떠올린다. “실제 사건도 염두하고 썼다“는 한 작가는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사건들을 사실적으로 접근하면 사람들 안에 내재한 공포와 긴장감도 극대화된다“고 설명했다. ’현실 판타지‘를 구현해야 하는 스릴러 장르에선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사건을 해결해가는 ’나쁜 놈‘들의 사건 접근방식은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SBS)가 미제사건을 다루는 방식도 연상시키지만, 한 작가는 ”’그것이 알고 싶다‘는 모든 장르물 작가의 바이블이지만, 참고하진 않았다“고 한다.

’나쁜 녀석들‘은 중반 이후로 네 명의 주인공을 둘러싼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된다. 기존의 장르물과는 달리 추리과정을 부각시켜 사건을 비트는 대신, 캐릭터의 감정 위주로 이야기를 전개하며 ‘쉬운 장르물’로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이 드라마에선 때문에‘범인의 존재’에 집착하지 않는다.

“캐릭터 중심의 수사물이 하고 싶었어요. 악행만 저지르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사람을 살리며 묘한 감정을 받죠. 그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범죄자라는 설정을 가져왔던 거에요. 어느 순간 사람이라는 존재가 흑백논리에 빠져있잖아요. 하지만 절대선과 절대악은 없으며 오히려 회색(중간)이 더 많아요. 사람은 항상 변하는 존재이니, 어떻게 하면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거죠.”


■ 작가 한정훈=대학에선 사회복지학을 전공했고,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당선된 것을 계기로 영화사에서 5년간 몸 담았던 한 작가는 OCN으로 건너와 내리 세 편째 장르물에 집중하고 있다. 굳이 장르물만 고집하는 것도 아니며, 영화사 시절엔 장르를 불문하고 글만 열심히 썼다. 최근엔 살인사건 만들기에 열중하지만 보다 다양한 작품을 쓰고 싶다는 게 한 작가의 생각이다. ”장르물을 하다 보면 ’어떻게 사람을 죽일까‘를 고민하다 보니 정신이 피폐해진다“고 한다.

때문에 한 작가의 차기작은 조금 순해졌다. 이번엔 사람이 죽지 않는다. 만화 ‘신의 가면’을 원작으로 해 SM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작업 중인 작품으로 한 작가는 ”로코는 아니지만, 적어도 사람이 한 명도 죽지는 않는다“며 웃는다.

장르와 방송사는 달라질 수 있어도 한 작가의 작품에서 변치 않는 한 가지는 발견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사는 시대상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르물이든 비장르물이든 그 안에서 ‘그래도 살 만한 세상’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shee@heraldcorp.com
[사진제공=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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