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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인세 골프소설-3] 에딘버러 행 비행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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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앤틱 골프 협회의 골프 모임.


[헤럴드경제 스포츠팀] 시카고발 히드로행 UA398편은 대서양 상공을 날고 있었다. 오전 11시34분. 국제노선이지만 7시간여의 가까운 유럽행이기 때문에 비행기는 고도를 그다지 높게 잡지 않고 있었다. 한국을 왕래하는 보잉747은 약 3만5천피트정도의 고도에서 비행하고 있지만 지금의 이 DC10은 약 2만피트 정도로 비교적 낮게 날고 있었다. DC10기종은 주로 5시간 이상 미국내선에 사용되는 기종이었으나 바쁜 운항 스케줄 시 UA는 이따금씩 영국 구간에도 운항시키곤 했다.

2시간 전 오헤어공항(O’HARE)을 이륙하자마자 UA기는 시카고 다운타운을 한 바퀴 돌더니 기수를 동쪽으로 잡았다. 아래 내려다보이는 시카고의 마천루는 언제 보아도 아름답기만 했다. 한때 세계에서 제일 높았다던 시어즈 타워(SEARS TOWER)와 1백층 높이의 존행콕빌딩(JOHN HANCOCK) 등 80층 이상만 수십개에 달하는 빌딩들이 화창한 날씨 탓에 너무도 선명하게 비행기 차창 안으로 들어왔다. 미시간 호수를 끼고 있는 시카고 다운타운은 언제보아도 아름다웠다.

중서부의 지반이 튼튼해 아무리 높은 빌딩을 지어도 절대 기울어지거나 주저앉을 염려가 없다는 시카고 땅. 건축의 도시로도 불리우는 시카고여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은 모두 다운타운에 모여든다고 한다. 제임스는 시카고에 사는 것이 특별히 자랑스럽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또 특별히 싫거나 하는 감정도 없었다. 30년이 넘게 살아왔지만,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잠재해 있는 집에 대한 귀소본능은 제임스를 이곳 시카고에 오랫동안 머물게 만들었다.

미국대륙을 동쪽으로 가로지르는 UA기는 애팔래치아 산맥의 첫 봉우리가 있는 펜실베이니아를 지나고, 뉴욕을 뒤로 한 채 대서양을 가로 지르기 시작했다. 구름이 거의 끼지 않은 화창한 날씨여서 비행기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여간 따갑지가 않았다.

눈살을 찡그리며 내려다 본 대서양 바다위엔 이따금씩 선박들이 점처럼 보이곤 했다. 지금 그는 스코틀랜드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시 한시간 남짓 북쪽으로 올라가는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가 그의 도착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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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골프 클럽 콜렉터 유진 볼든.


영국골프박물관장 엔젤라를 연결시켜 준 인물은 미국골프동우회의 오랜 맴버인 유진 볼든이었다. 제임스 역시 12년 동안 골프앤틱동우회의 멤버였다. 동우회란 미국앤틱골프협회를 말하는 것으로 ‘골프앤틱 컬랙터 소사이어티(GOLF ANTIQUE COLLECTER SOCIETY)’가 정식 명칭이었다. 지난 1970년이래 40여년동안 골프 골동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현재 회원은 1천 여명이 넘는 조직이었다.

이들 멤버들은 1년에 한 번씩 미국도시를 정해 골프골동품 컨벤션을 개최하면서 회원들이 한군데에 모여 골동품을 교환, 판매한다. 컨벤션은 4,5일 동안 열리는데 때로는 프로선수를 초청해서 세미나를 듣기도 하고, 골프책을 저술한 저자를 초빙해 강연회를 듣기도 하며 회원간의 결속을 다지기도 한다.

멤버들은 미국 내에서 명망있는 골프장 소유주도 있으며 전직 프로골퍼, 골동품 수집가, 등등 골프와 연관이 있거나 골프를 좋아하는 부류들이었다. 제임스는 이곳 멤버 중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물론 회원 중에는 이름을 올려놓은 동양인들도 다수 있었으나,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동양인은 지난 10년 동안 제임스 뿐이었고, 또 유일한 한국인 멤버였다.

유진 발든은 전직 대학 농구코치로 초창기 동우회가 조직될 때부터 멤버였던 올드 타이머였다. 한국 방문도 했던 친한파여서 제임스하고는 친해졌고, 두 사람은 평소에도 한 달에 한두 번씩 통화를 하고 가끔 디트로이트와 시카고를 왕래하며 친분을 유지하고 있던 사이였다.

제임스의 부탁에 진도 적극적으로 알아보겠노라고 했었다. 오래 전부터 제임스가 세인트 앤드루스를 방문해 보고 싶은 마음을 진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재임스의 요청에 도움을 주기로 한 것이었다. 동우회 멤버들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지부를 통한 조직이 있었기 때문에 유럽이든, 호주든 연결할 멤버들은 수소문이 가능했다.

3시간여 쯤 날랐을까. 기내에선 음료와 스낵, 샌드위치 등을 판매하기 위해 카트를 운영하겠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음료 중 콜라 등 탄산 종류와 커피들은 무료였지만, 맥주는 한 캔에 4달러 씩 받았다. 그리고 참치샌드위치, 햄샌드위치 등은 5달러에 판매됐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유나이티드는 이런 짓을 하지 않았다. 스낵이건 샌드위치건 장거리 운항에는 모두 공짜였다.

경제가 나빠졌다는 구실로 언젠가부터 슬그머니 샌드위치를 팔기 시작했다. 비행기 안에 음식과 마실 음료를 금지시켜놓고(물론 사실은 보안대를 지나면서 모든 물 종류를 원천 봉쇄됐지만) 비행기 회사가 빵장사를 하고 있는 것에 제임스는 웃기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기는 해야 됐다. 마음이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그는 콜라와 치즈가 들어가지 않은 터키 샌드위치를 하나 시켰다.

‘이제부터 일주일 간은 빵으로 해결해야 되는데. 미리 훈련해야지’. 제트기류로 인해 잠시 흔들렸던 기체가 차분해졌다. ‘스코틀랜드라… 세인트 앤드루스의 바닷가는 어떤 느낌일까?’

북해의 바닷물은 비행기 아래로 보이는 대서양의 그것하고는 다를 것이라 제임스는 생각했다. 애딘버러나 세인트 앤드루스는 분명 스코틀랜드 동쪽 북해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다르지 않을까 하는게 그의 생각이었다. 제임스의 가슴이 조금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6백년전에 최초로 골프가 시작됐던 발상지를 내눈으로 직접 확인하러 간다?’ 10여년 동안 마음속에 담아둔 ‘골프 6백년사’의 집필을 막 시작했고, 정확한 역사의 기술을 위해서는 발상지는 제일 먼저 찾아가야 되는게 당연지사였다.
‘에딘버러시에 가면 얼마나 많은 골프골동품상이 있을까?’ 일간지 기자로 10년 이상을 보냈고, 나머지 10여년 동안은 골프 전문기자로 골프대회장을 누비면서 발로 뛴 경력을 가지고 있던 제임스였다.

‘올드 톰 모리스가 운영하던 클럽 제조공방은 아직도 존재할까?’ 그에게 책상에 앉아 머리속으로 가상의 소설을 쓰는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어느 기자들처럼 그는 ‘발로 뛴 현장’을 기술하는 다큐멘터리만이 믿을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기사란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한 뒤에 써야 정확한 거야’ 그것은 마치 신념처럼 그의 가슴속에 뿌리박혀 있었다. 오랜 기간 몸에 밴 습성일 수도 있었다.

‘진짜 골프가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됐을까?’ 제임스가 갖고 있는 최초의 의문이었다. ‘네덜런드 사람들 주장대로 홀란드에서 시작된 거라면?’ 최근에는 중국에서도 자신들이 골프의 원조라고 주장하는 기사도 있었다. ‘어쨌거나 이번 여행에서 잃어버린 최초 역사의 링크를 찾을 수만 있다면…’, ‘6백년전 목동들이 처음으로 골프를 치던 초원을 거닐고, 5백년전의 최초의 여성골퍼인 퀸 메리 여왕을 만난다?’

제임스의 얼굴엔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골프의 아버지 올드 탐 모리스와 골프의 신이라 불린 알렌 로버트슨의 무덤에서 잠시 참배를 위해 올드 코스를 밟아 본다?’ 그에게는 에딘버러를 간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 필자 이인세 씨는 미주 중앙일보 출신의 골프 역사학자로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박세리 우승을 현장 취재하는 등 오랜 세월 미국 골프 대회를 경험했고 수많은 골프 기사를 썼고, 미국 앤틱골프협회 회원으로 남양주에 골프박물관을 세우기도 했다. 저서로는 <그린에서 세계를 품다>, 이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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