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늘집에서] 나쁜 골프장과 착한 골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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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비바람 속에서도 1시간 50분 안에 9홀을 마쳐야 하는 나쁜 골프장이 있다(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계 없음).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이강래 기자] 지난 주 충남 태안의 한 골프장에서 지인들과 1박 2일 라운드를 했다. 불행히도 첫 홀 티잉구역에 올라가자 비바람이 몰아쳤다 그래도 멀리 왔기에 라운드를 강행했고 공은 그런대로 맞았다. 문제는 캐디였다. 왠지 모르게 서둘렀다. 나중에 물어보니 9홀을 1시간 50분 안에 마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닷가 옆 골프장이라 바람이 강한데다 간간이 비까지 내려 평소보다 라운드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동반자 중 비기너까지 있어 뭔가 죄를 지은 듯 라운드 내내 좌불안석이었다. 나중엔 그린에 볼이 올라가면 첫 퍼팅을 하고 알아서 공을 들고 다음 홀로 이동했다.

후반 백나인으로 넘어가기 전 캐디에게 재촉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저 재촉하지 않았어요!”라는 차가운 반응이었다. 하지만 말로 표현하지 않았다고 재촉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마치 작전을 펼치듯, 무언가에 쫓기듯 움직이는 캐디의 일거수 일투족이 더 큰 압박이었다.

다음 날 라운드에 앞서 바뀐 캐디에게 웃는 얼굴로 “어제 라운드는 캐디 때문에 불편했다”며 “오늘은 재촉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이 코스는 짧아서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며 “죄송하지만 오늘도 9홀을 1시간 50분 안에 마치셔야 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곰곰이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캐디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결론은 돈이었다. 해가 짧아진 탓에 티타임이 줄 수밖에 없으나 정해놓은 매출액이 있기에 팀 수를 줄일 수는 없고...답은 ‘토끼몰이’였다. 마지막 팀이 일몰 전 18홀을 마쳐야 하기에 나머지 팀들은 속도전을 펼쳐야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손님들이 골프장 방침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라운드 시간을 맞춘다는 것이었다.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듯 18홀에 흩어져 있던 내장객들은 서둘러 샷을 했고 캐디가 놓아주는 퍼팅 라인대로 서둘러 퍼트했다.

첫날 우리는 골프장 방침대로 3시간 40분에 라운드를 마쳤다. 9홀을 마친 후 클럽하우스에서 식사를 한 20분을 빼면 3시간 20분 만에 18홀을 주파한 것이다. 다음 날 라운드 역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덜덜 떨면서 골프장의 요구대로 3시간 40분 안에 라운드를 마쳤다.

1박 2일간의 라운드 내내 개, 돼지가 된 기분이었다. 비싼 돈 내고 장거리 운전을 해 도착한 골프장은 어떤 즐거움도 주지 못했다. 그 다음에 든 생각은 ‘이러면서 골프를 계속 해야 하나?’란 의구심이었다. 골프를 친 지 20년이 넘었건만 이런 회의감이 든 건 올해가 처음이다. 안면이 있는 골프장 지배인에게 항의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 윗선에서 결정된 일이기에 입을 다물었다.

최근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선 코로나 특수에도 그린피를 올리지 않은 착한 골프장 명단을 발표했다. 회원제 101개(64%), 대중제 62개소(27%)가 코로나 이전의 그린피를 유지했다. 대중제에 비해 회원제 골프장이 그린피를 올리지 않은 이유는 사회적 책임이 강한 대기업 계열 골프장이 45개소에 달하고 회원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에서 입장료 인상을 자제했기 때문이다. 반면 회원들의 간섭이 없는 대중제 골프장은 세금 혜택에도 불구하고 무려 73%가 그린피를 올렸다.

코로나 특수로 덕을 보는 업종이 골프장만은 아니다. 골프클럽, 골프웨어 회사들도 호황을 누린다. 하지만 골프장처럼 무식하게 가격을 올리지는 않았다.골프장의 그린피 인상이 비난받는 이유는 서비스 품질의 향상 없이 오로지 수요가 많다는 이유로 턱없이 가격을 올린 데 있다. 착한 한국 골퍼들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면 최소한 껌이라도 한 통씩 돌리는 게 상도덕이다.

골프장 운영에 대한 철학없이 오로지 돈에 집착하는 모습에 넌더리를 내는 골퍼들이 늘고 있다. 40, 50대 골퍼중 낚시나 캠핑으로 돌아서는 이들이 꽤 있다. 소비자들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이미 백신까지 개발된 마당에 코로나 특수가 계속되진 않을 것이다. 골퍼들의 역습이 본격화되면 착한 골프장까지 도매금으로 피해를 입지 않을까 우려된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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