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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승 골프칼럼] (20) 스물여섯 살 디셈보가 이미 위대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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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 모기지 클래식에서 우승한 브라이슨 디셈보. [사진=PGA투어]


현재 미국 골프 미디어의 가장 큰 관심을 끄는 선수는 브라이슨 디셈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보도되었던 선수 인데 골프역사가인 필자는 디셈보를 골프역사의 흐름을 바꾼 가장 위대했던 인물들 중 한 명으로 인정한다. 스물 여섯의 젊은 나이에 이미 위대함을 인정 받았다면 향후 그가 골프계에 미칠 영향이 얼마나 클지 상상할 수 있다.

골프역사의 흐름을 바꾼 선수들

첫 번째는 영국의 해리 바든(1870-1937)이다. 그는 당시 스코트랜드의 표준스윙이었던 세인트 앤드루스 스윙을 개조하여 오늘날 골프스윙의 기초가 되는 새로운 스윙을 가지고 나타났다. 프로선수들을 포함한 모든 골퍼들이 그의 스윙을 모방했다.

두 번째는 벤 호건(1912-1997)이다. 골프의 신으로 인정되었던 그의 스윙은 당시 골프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골퍼들은 벤 호건 스윙의 비밀을 찾기 위해서 그의 스윙을 분석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벤 호건의 암호를 풀지 못한 전문가들은 벤 호건의 비밀은 없다고 결론 내리기도 했다.

세 번째는 잭 니클라우스(1940- )이다. 그는 골프가 TV에 중계되기 시작하는 때에 맞춰서 나타난 미국의 영웅이었다. 1962년 첫 번째 메이저 우승을 하고, 마지막 메이저 우승인 열여덟 번째 우승을 한 1986년까지 22년 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켰다.

네 번째는 타이거 우즈(1975-)이다. 그의 스토리는 여러 분이 알고 있는 것처럼 신화에 가깝다. 타이거는 골프의 마술사였다. 골프계의 모든 뉴스가 타이거로 빨려 들어갔다. 타이거 덕분에 골프산업이 몇 배로 커졌고 선수들의 상금도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다섯 번째가 브라이슨 디셈보 (1993-)이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함께 디셈보는 골프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그는 골프의 암호를 과학으로 풀어보려고 시도하는 중이다. 타이거는 느낌에 의존하는 골프를 친다. 그래서 타이거의 골프는 예술가의 골프이다. 디셈보는 과학자의 골프를 이상으로 추구한다.

그는 모든 느낌을 숫자로 표시하길 원한다. 디셈보는 기존의 골프 이론이나 상식들을 믿지 않는다. 숫자로 검증이 되어야만 따라간다. 자기가 다른 골퍼들과 다른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타이거보다 더 높은 수준의 골프가 틀림없이 존재하며 자기가 그것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프로 골퍼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골퍼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훨씬 쉬운 골프를 찾고 싶어한다.

디셈보와 연결되는 상식들은 “길이가 모두 같은 아이언, 테니스라켓처럼 두꺼운 그립, 원 플레인 스윙, 몸집을 키워서 만들어진 최고 장타자” 등이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들은 디셈보의 겉모습만 본 것이고 이면에 있는 그의 특별한 노력을 알게 되면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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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크 업 전(왼쪽)과 후의 브라이슨 디셈보.


위험을 무릅쓰고 이뤄낸 최고 장타자

“장타자는 만들어지지 않고 태어난다”는 골프 상식은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PGA투어 장타 부분의 디셈보 기록을 보면 2018년 25위 (305.7야드), 2019년 34위 (302.5야드)로 그저 그런 선수였지만 2020년에는 1위(323야드)를 달리고 있다. 디셈보는 코로나19로 인해 대회가 중단되었던 3개월 동안 근육을 9kg이나 불려 주위를 놀라게 만들었다. 2016년 프로로 전향할 당시에 비해 20kg 가까이 불어났는데 현재 디셈보의 체격은 185cm에 108kg 이다.

헐크 같이 변한 그를 보며 거의 모든 골프 전문가들이 너무 위험한 시도라고 말했다. 골프선수가 급격히 체형을 바꾸면 스윙도 바뀌면서 슬럼프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2018년 상금랭킹 4위, 2019년 25위, PGA투어 5승을 올리고 있는 잘 나가는 선수가 왜 그렇게 큰 위험을 감수하는지 의아해 했다. 1999년 세계랭킹 1위에 올랐던 데이비드 듀발도 더 좋은 스윙을 갖고 싶어서 체중을 감량하다가 슬럼프에 빠졌고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디셈보의 실험은 큰 성공을 거두며 그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타이거나 맥길로이는 몸이 약간 가벼울 때 최고의 스윙스피드가 나며 큰 체격보다는 유연성이 더 중요하다는 상식을 만들어 냈다. 디셈보는 큰 체격에 유연성을 더하면 더 큰 비거리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미래의 골프 선수들은 더 크고 더 강한 체격의 선수들이 대세가 될 것이고 유연성을 기르는 체력운동이 더 중요해 질 것이다. 디셈보를 카피한 선수가 나타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다만 디셈보의 성공이 장기적으로 몸에 부상을 가져올 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으므로 좀 더 지켜 봐야 한다.

새로운 샤프트가 필요했다

디셈보의 골프클럽은 드라이버, 아이언, 퍼터까지 14개의 클럽이 모두 그라피트 샤프트이다. 체격이 커 지고 스윙스피드가 빨라지면서 더 강한 샤프트가 필요했다. 아이언 클럽용으로 사용되는 어떤 스틸 샤프트도 디셈보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는 샤프트를 테스트 하면서 스핀량, 거리, 높이 등에 관한 목표 수치를 가지고 있는데 원하는 샤프트를 찾을 수 없었다.

예를 들면 웨지의 샤프트는 그린 주변에서 더 높은 스핀을 주고 풀샷에서는 스핀이 적어지는 것을 원했다. 디셈보는 그라피트 샤프트를 후원하는 LA 샤프트사와 연구 개발을 시작했고 결국 자기가 원하는 강한 그라피트 샤프트를 개발해 냈다. 스윙 스피드가 빠를수록 더 강한 샤프트를 사용해야 거리와 방향성이 좋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드라이버와 우드 샤프트에 대한 디셈보의 생각은 달랐다. 강한 샤프트는 최고의 거리를 내기 위해서는 불리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디셈보는 LA 샤프트 회사에 자기가 상상하는 드라이버 샤프트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디셈보가 어떤 스펙의 샤프트를 요구하면 엔지니어들은 그 아이디어가 확실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만들어줬다. 디셈보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실패를 반복하면서 26개의 샤프트를 테스트 한 후에 만들어낸 샤프트를 현재 사용하는 드라이버에 장착했는데 결과는 대성공 이었다.

그 샤프트는 중간부분이 아주 강하고 그립 쪽과 헤드 쪽은 부드럽기 때문에 임팩트 순간에 샤프트의 킥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발명품이다. 퍼터의 샤프트가 그라피트라는 것도 흥미로운데 이것 역시 디셈보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 14개의 클럽을 모두 그라피트 샤프트로 무장하여 우승하기는 디셈보가 처음이다.

더 좋은 볼은 없는가?

비가 오는 날 시합을 하던 디셈보는 물기로 인해 볼의 스핀량이 달라져서 구질이 변하게 된다고 느꼈다. 다음주 연습 레인지에 볼을 공급하는 브리지스톤의 엔지니어가 초대되었다. 디셈보는 분무기로 볼에 물을 뿌려서 샷을 했고, 볼과 클럽에 물을 뿌려서도 샷을 했으며 마지막에는 볼, 클럽, 잔디에 물을 뿌리며 샷을 하여 스핀량과 높이, 거리에 대한 데이터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엔지니어에게 보여 주었다. 엔지니어는 숙제를 받았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똑같이 반응하는 볼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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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모양의 브라이슨 디셈보 클럽.


아이언 헤드의 더 좋은 디자인을 찾아라

디셈보의 클럽은 코브라 사가 후원하는데 디셈보 담당의 시니어 엔지니어가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 드라이버 샷의 스핀량이 너무 크다고 불평하자 5.5도 로프트의 헤드를 만들어 주었다.

디셈보는 자기가 쓰는 아이언 클럽 헤드의 디자인이 최적 상태가 아닐지 모른다는 의문도 가지고 있다. 끊임없이 헤드의 힐과 토우의 무게 배분을 변화시켜 보도록 요구했다. 그래서 이상하게 생긴 웨지의 헤드가 만들어졌다. 다른 선수들의 웨지 헤드는 토우 쪽이 더 무겁게 설계되었는데 디셈보의 웨지는 힐 쪽에 무게를 많이 배분한 모양이다. 스윙과 샤프트의 특성에 따라서 헤드의 모양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립의 무게도 샷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125그램의 무거운 그립을 사용하던 디셈보는 여러 가지 다른 무게를 테스트했고 결국 일반 그립과 비슷한 무게인 50그램에 두께만 더 두꺼운 그립으로 변경했다. 75그램이나 더 가벼운 그립을 사용하는 것은 골프클럽 피팅의 관점에서 보면 파격적인 변화였다.
장비를 개발하는 엔지니어들이 디셈보에 대해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디셈보는 신기술 개발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끝없이 쏟아내는 보물창고이다.”

스윙도 달라졌다

디셈보가 플레이의 개선을 전적으로 장비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잭 니클라우스가 이렇게 말했다. “어떤 홀에서 특별한 장타가 필요하다면 백 스윙을 더 천천히 하라” 망치로 대 못을 박으려면 천천히 들어올려서 내리쳐야 잘 박힌다는 이론과 같았다. 그러나 그 생각은 니클라우스의 아이디어일 뿐이고, 디셈보는 자기의 방법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체중이 늘고 장타를 치면서 백스윙의 템포와 회전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하체를 전보다 더 과감하게 회전시키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변하지 않은 것은 원플레인 스윙 뿐이다.

얼마나 위대해 질 수 있을까?

위대한 선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메이저 대회 우승 회수를 비교한다. 디셈보는 이제 PGA투어 6승을 달성했을 뿐이며 메이저 대회에서는 2016년 US오픈의 공동 15위가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동갑내기 조던 스피스나 저스틴 토마스와 비교해도 한참 뒤쳐진다.

타이거 이후에 메이저 대회를 가장 많이 우승한 로리 맥길로이나 브룩스 켑카도 4승에 머무르고 있어서 포스트 타이거의 영웅 계보를 잇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디셈보가 일단 메이저 첫 승을 올리는 것이 중요한데 올해에 가능할지 골프계가 주목하고 있다. 일단 첫 승이 달성되면 그 이후는 훨씬 수월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랭킹 1위가 멀지 않아 보이는 디셈보는 과연 메이저 대회에서 몇 승을 올릴 수 있을까? 미국의 전문가들은 디오픈을 제외하고 금년에 열리는 메이저 대회 3개 모두에서 디셈보의 우승확률을 10:1로 평가했다. 12:1로 평가된 로리 맥길로이를 제치고 최고 확률의 기대를 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러프가 없는 마스터스 대회가 디셈보의 장타를 어떻게 막아낼 것인지 궁금해하고 있다.

디셈보의 우승확률이 높아지는 다른 이유가 있다. 동료 선수들이 디셈보는 자기들과 다른 동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두려워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디셈보는 경쟁자들과는 다른 몸과 다른 기술의 장비를 가지고 있으며, 자기가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은 바람과 잔디의 길이 뿐이라고 큰소리치고 있다. 타이거의 전성기에 동료들이 그를 두려워함으로써 저절로 승률이 높아졌었는데 디셈보가 그런 장면을 다시 보여 줄지도 기대된다.

골프 과학자라는 별명을 얻었던 디셈보의 어린 시절은 떡잎부터 달랐다. 그의 흥미로운 어린 시절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2017년에 필자가 썼던 칼럼 “골프과학자 브라이슨 디셈보의 소망”을 검색해 보기 바란다. 한 학기 내내 강의해도 아직 할 말이 남아있을 위대한 과학자 디셈보의 이야기는 끝이 없이 펼쳐질 것이다.

박 노 승 : 골프 칼럼니스트
골프 대디였던 필자는 미국 유학을 거쳐 골프역사가, 대한골프협회의 국제심판, 선수 후원자, 대학 교수 등을 경험했다. 골프 역사서를 2권 저술했고 “박노승의 골프 타임리프” 라는 칼럼을 73회 동안 인기리에 연재 한 바 있으며 현재 시즌 2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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