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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화영이 만난 골프인] 설계자, 여행가 그리고 저자 오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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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가이자 작가 오상준 씨가 자신의 저서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 남화영 기자] 최근 <골프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 Living My Life Through Golf>(시간여행, 1만5천원)이란 책을 낸 오상준 작가는 어느새 벌써 2쇄를 찍었다. “지금은 이 책을 영문으로 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내용도 영문으로 쓰려니 새롭더군요.”

아직 ‘작가’라고 부르기에는 어색할지 모른다. 최근까지 나인브릿지를 보유한 대기업 CJ건설의 골프리조트 기획팀장으로 근무했기 때문이다. 건축 디자이너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코스 설계가, 골프대회 프로젝트 담당자, 잠깐의 사업가, 그리고 대기업 직원까지 다양한 삶의 이력이다. 하지만 책 제목에서 연상되듯 하나의 꼬챙이로 꿴다면 ‘골프’가 공통 분모였다.

미국에서 워싱턴주립대와 뉴욕 콜롬비아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직장을 구했으나 9.11테러 사태로 1년 정도 다니던 건축사 사무실에서 해고당하는 데서 그의 책은 시작한다. 집에 돌아와 그가 한 일은 뉴저지 그린피 25달러의 값싼 퍼블릭 코스에 나가서 골프를 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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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 18번 홀에서 티샷하는 오상준씨.


미국 골프리조트 탐방기
책을 전개하면서 소개되는 골프장은 그의 인생과 씨줄 날줄처럼 엮이기 시작한다. 2002년 대학원 선배를 통해 국내 한 멤버십 잡지에 미국 골프코스를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한 것이 골프 글쓰기를 시작한 계기였다.

잡지 연재를 계기로 그는 노스캐롤라이나의 대표적인 골프 리조트인 파인허스트 리조트를 찾게 됐고, 이후로 자동차를 몰고 미국 대륙을 다니면서 다양한 골프리조트들을 취재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골프코스 설계학 석사 학위 공고를 접하고는 코스 설계학을 공부하러 떠났다.

골프의 본 고장인 스코틀랜드에서 공부하면서 그는 아일랜드를 포함한 영국의 수많은 명문 코스들을 답사할 기회를 누렸다. 코스 설계가 전공이니 골프장을 가는 건 전공 수업을 들으러 가는 것과 같았다. 오늘날의 대표적인 코스 설계가 탐 독이 스코틀랜드에서 2년간 코스를 순례하면서 그만의 설계 방식을 굳혔듯 그도 세계적인 코스들을 라운드하고 스케치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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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페블비치에서 만난 아놀드 파머와 인사나누고 사진 촬영을 했다.


니클라우스, 파머와의 만남
미국에 이어 스코틀랜드에서 총 13년여의 해외 생활은 2005년 10월 귀국하면서 마무리됐다. 골프장 설계 시공사인 오렌지엔지니어링에 들어가는 것으로 인생의 새로운 막이 올랐다. 그 무렵 회사가 공사를 맡은 코스가 인천 송도의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코리아였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골프까지 전공한 덕에 그는 외국자본이 참여한 이 골프장의 주주인 게일 인터내셔널과 포스코 등을 연결하고 골프장을 만들어 내는 일의 고리 역할을 했다. 전 세계 400여 곳의 골프장을 설계한 잭 니클라우스는 한국에도 예닐곱 개의 코스를 만들었지만 송도의 잭니클라우스에는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수시로 현장을 찾아 공사를 지도했던 골프계의 원조 황제를 만난 건 두 번째였다. “2005년 디오픈에서 선수로서 은퇴하던 니클라우스를 보고 감동해서 당시 발행된 기념 지폐를 가졌던 저는 설계자로 다시 만나는 행운을 누렸죠. 나중에 지폐에 그의 친필 싸인을 받았죠.”

2008년에는 미국 출장길에 페블비치 링크스에서 라운드할 기회가 있었다. 6번 홀에서 멋진 티샷을 하고 걸어가다가 페어웨이에서 2년 뒤에 있을 US오픈 코스 세팅을 현장 설계자와 얘기하던 아놀드 파머와 조우한 것이다. 파머가 처음 본 이방인에게 “멋진 샷이었다”고 칭찬하자 그는 오래 알고지낸 듯 “아니(파머의 애칭), 여기서 뭐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사진까지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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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을 촬영하고 답사하던 시절의 필자.


프레지던츠컵 TF팀장 복귀
오 작가는 2010년 11월 1일 이 골프장의 개장식을 보지 못한 채 현장을 떠나 독립했다. 호주의 그렉노먼 디자인의 아시아 책임자였던 밥 해리슨, 할리 크루즈와 함께 서울과 시드니에 '해리슨크루즈오'라는 설계 사무실을 열었다. 한국과 호주의 설계가 3인의 합작 사무소였다. 그런데 시장이 녹록치 않았고, 결국 사무실을 접어야 했다.

그 무렵 스코틀랜드 대학원 시절 동문이던 중국 친구의 권유로 수제 팝콘 사업을 잠시 했다. 하지만 골프업계에서 일하던 그가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건 쉽지 않았고 손해를 보고 접었다. 지금은 집안 한 구석에 팝콘 기계만 추억의 산물로 남아 있다.

코스 설계와 팝콘에서도재미를 보지 못하던 2014년 어느 날 게일 인터내셔널 코리아에서 그를 급히 찾았다. 이듬해 송도 잭니클라우스에서 열리는 프레지던츠컵 태스크포스(TF)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골프장에 대한 폭넓은 지식, 그리고 능통한 영어로 인해 그는 역할을 잘 수행했고 대회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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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더CJ컵 시상식을 마치고 클럽하우스 라커에서 챔피언 브룩스 켑카와 함께.


나인브릿지와 더CJ컵 참여
대회를 끝내고 2017년부터 그는 새로운 직장에서 일하게 된다. 10년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더CJ컵@나인브릿지를 개최하게 된 CJ그룹에서 코스와 대회를 연결해 줄 사람을 찾다가 그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코스 지식이나 대회 경험에서 그는 최적의 인재였다. 한국에서 처음 여는 PGA투어 대회를 앞두고 코스는 병해를 입는 등 난관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는 백방으로 복구에 나서 정작 대회를 치를 때는 PGA투어 코스 중에서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3년간 그는 대회를 세계적인 이벤트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더CJ컵은 그에게는 꿈의 무대였다. 한국 유일의 글로벌 골프 이벤트인만큼 대회를 디오픈이나 마스터스처럼 만들고 싶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디오픈에는 전세계의 영향력 있는 인사와 비즈니스 미팅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마스터스 기간에 전세계 비즈니스 거물들이 오거스타내셔널에 모이고 천문학적인 사업이 거래되고 접대와 사교가 진행되는 것처럼 디오픈 기간에 다양한 포럼과 세미나가 된다.

그래서 대회 기간에 골프계의 주요 오피니언 리더들이 참여하는 나인브릿지 포럼을 통해 이를 실현하려 했다. 아시아와 유럽, 미국의 미디어들도 참여해 ‘지속가능한 골프’를 테마로 미래의 어젠다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마침 브룩스 켑카가 우승하던 2018년에는 그가 시상식 사회를 맡기도 했다. 뛰어난 영어에 아나운서같은 윤기나는 목소리를 가져 발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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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는 저자에게 인생이었다. 그 인생의 서술이 이 책이었다.


골프매거진 100대 코스 패널
지난해 9월에는 미국 월간지 <골프매거진>으로부터 ‘한국 유일의 100대 코스 패널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전 세계에 100명 이내의 골프코스에 대한 전문 식견과 경험을 갖춘 이들만 한다는 명예로운 직함이었다. 그는 ‘외국 골프 문화에 익숙하고, 골프장 경험도 있으면서 그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해 고민 끝에 승낙했다. 한국의 좋은 코스를 세계에 제대로 알릴 문화 사절이 되리라 생각했다.

3년 반을 다니던 대기업의 좋은 직장을 그만둔 건 그에게는 도전이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으나,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골프인으로서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그는 헤밍웨이의 입을 빌어 이 책의 서문을 끝맺었다.

‘인간은 비록 파괴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패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일어설 힘이 남아 있다면, 끝까지 싸울 수 있을 것이다.’ 골프를 통한 그의 인생 항로가 폭풍우를 이겨내고 순항하기를 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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