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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부 비토] 미스 샷은 금붕어처럼 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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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한국기원에 하얀 수염을 길게 기른 두 명의 도사가 찾아왔다고 한다. 산에서 10년 이상 바둑을 수련해 신선의 경지에 올랐다고 했다. 한국 바둑의 미래를 위해 국수에게 가르침을 주겠다는 무시무시한 말도 했다. 하지만 도사들의 실력은 5급 정도였는데 골프로 치면 80대 중반 정도의 스코어다. 도사들은 허풍을 떤 것이 아니라 정말 깨달음의 경지에 올랐다고 믿고 있었다. 산에서 실력을 검증할 상대도 없이 둘이서만 바둑을 뒀기 때문이다.

100개를 치는 골퍼에게 배운 사람은 평생 100을 깰 수 없다. 진보를 위한 최고의 방법은 좋은 스승에게 교습을 받고 정확한 스윙을 익히는 것이다. 라운드 할 때는 자신보다 월등한 실력자가 있어야 한다. 스윙은 눈으로 보고 배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아기가 걸을 수 있는 것은 누워서 부모가 걷는 것을 계속 봤기 때문이다. 사자가 사냥을 할 때 어린 사자들을 데려가 구경시키는 것도 시각 효과 때문이다.

골프는 1박스의 공을 잘 치는 것이 아니라 1개의 공을 잘 쳐야 하는 운동이다. 혼자 연습하면1박스는 적당하게 칠지 몰라도 1개의 공을 잘 치기는 어렵다. 좋은 스승은 스스로 5년 만에 깨우친 비법을 단 5분 만에 가르쳐 줄 수 있다.

진보를 위해 또 필요한 것은 망각이다. 금붕어가 좁은 어항에서 적당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은 짧은 기억력 때문이다. 쉽게 망각하는 능력은 스윙을 익히는 것 만큼 중요하다. 인간은 하루에 약 2시간 정도를 죄의식이나 후회에 시달린다고 한다. 프로인 필자도 스코어에 대한 분석과 후회를 하지 않으면서 훨씬 행복한 골퍼가 되었다.

골퍼에겐 실력에 따른 몫이 있는 데 주어진 몫보다 더 큰 욕심을 부리면 상처를 받게 된다. 라운드에 최선을 다했다면 고통스러운 기억은 금붕어처럼 잊어야 한다. 우승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 샷을 하는 선수는 비슷한 환경에서 가장 잘 쳤던 샷을 떠올린다고 한다. 만약 망각을 배우지 못했다면 압박을 받을 때마다 실패한 샷들이 망령처럼 떠올라 샷에 영향을 줄 것이다

일정 수준이 되면 작은 내기를 통해 1타의 중요성을 깨닫고 승부를 배우는 것이 좋다. 내기 골프에 강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이길 때까지 내기를 하는 것이다. 쓰라린 패전의 경험들은 여러 깨달음을 줄 것이다. 계속 패해도 매너를 잃지 말아야 한다. 내기 골프가 시작되는 순간 인간의 본성이 가장 구체적이고 극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골프에는 아무리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 없는 불가사의한 무엇이 있다.

골프 매니아로 잘 알려진 GM의 전 회장 잭 웰치는 그의 자서전에서 골프를 배웠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어린 시절에 골프를 치는 성공한 비즈니스맨들을 많이 만났다. 그 사람들이 골프를 치며 하는 행동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멋질 수 있는지 또는 얼마나 어리석을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골프를 다른 스포츠와 가름하는 것 중 하나는 심판이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판정하고 결정해야 한다.

싱글골퍼가 되는 것은 어려워도 행복한 골퍼가 되는 것은 쉽다.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거나 과대평가 하지 않으면 된다. 과신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골프 클럽을 들고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받은 인생이다. 혼자 사는 것 같지만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른 것들에 기대어 산다고 한다. 기대고 있거나 기대어진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삶은 리본으로 묶여있지 않더라도 여전히 선물이기 때문이다.

*어부(漁夫) 비토(Vito)라는 필명을 갖고 있는 김기호 프로는 현재 KPGA 챔피언스 투어에서 활동중인 현역 프로입니다. 또한 과거 골프스카이닷컴 시절부터 필명을 날려온 인기 칼럼니스트로 골프는 물론 인생과 관련된 통찰로 아름다운 글을 독자 여러분께 선사할 것입니다. 아울러 최상호, 박남신 등 한 세대를 풍미한 전설들과의 실전에 대한 후일담도 들려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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