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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탁구] 조대성-마사회 분쟁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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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탁구연맹(ITTF)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조대성의 사진. 조대성은 지난해 ITTF월드투어에서 남자복식과 혼합복식에서 우승했고, 얼마전 플래티넘 대회인 독일오픈에서도 만라장성을 넘어 남자복식 정상에 올랐다. 또 일본 프로탁구(T리그)에서 최고의 승률을 기록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사진=국제탁구연맹]


# IMF경제위기의 사생아

한국 탁구에는 독특한 제도가 20년이 넘도록 존재해왔다. 1998년 대한탁구협회는 IMF 경제위기로 실업팀이 잇달아 해체되자 새로 창단하는 실업팀(신생팀)에게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 선수를 우선지명하는 특별한 권리를 부여했다(신생팀 우선지명).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기 위해 탁구인들이 뜻을 모았다는 좋은 취지는 이해하지만, 이 제도는 이후 숱한 문제를 야기했다. 시장가보다 싸게 우수선수를 데려가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니 해당선수와 부모의 반발이 거셌고, 근본적으로 고교선수의 직업선택을 침해하는 위헌적 소지가 컸다. 또 실업팀의 기준이 모호해, 연 10억 원 이상을 쓰는 기업팀에게만 적용돼왔는데, 이 10억 원을 입증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시군청팀들은 불만이었다. 그래서 이 문제의 제도는 2001년 신생팀 농심삼다수(현재는 해체)의 우선지명권에 반발한 유승민(현 대한탁구협회장, IOC선수위원)을 포함해서 지명권이 순조롭게 행사된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았다.

# 드디어 없어진 제도

탄생부터가 기형적이었고, 그 실행과정에서도 유승민이 무적선수가 되는 등 온갖 파행을 야기한 신생팀 우선지명 제도는 지난 1월 30일 대한탁구협회 이사회에서 최종 폐지가 확정됐다. 제도가 1999년부터 시행됐으니 21년 만에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사악한 것은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발악을 한다고, 없어졌음에도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 제도의 마지막 대상자로 ‘탁구신동’으로 불리는 조대성(18 대광고)이 붙잡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자팀만 운영하던 한국마사회가 남자팀을 창단했고, 이 과정에서 신생팀 우선지명 제도로 조대성을 지명했기 때문이다. 양측은 조대성이 고3이 되는 올해가 되도록 계약금 등 입단조건에 합의하지 못해 대한탁구협회에 중재를 요청했다. 지난 10일 변호사, 세무사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중재위원회가 이 사안을 다뤘다. 사실 중재위 자체도 기계적 중립을 취할 뿐 뾰족한 해법이 없다.

# 사건발생 순서의 심각한 문제

20년이 넘게 기승을 떨치던 신생팀 우선지명 제도가 2020년 1월 갑자기 왜 폐지됐을까? 조대성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질문의 답을 찾으면 간단하다. 제도 자체가 태생적으로 문제가 있었고, 운영도 엉망이었기 때문에 대한탁구협회가 갑자기 자발적으로 없앤 것이 아니다. 2019년에도 시군청팀들이 왜 기업팀들에게만 이 조항을 적용하느냐고 반발했지만, 대한탁구협회는 이를 뭉갰다. 진짜 이유는 2019년 1월 상급단체인 대한체육회(회장 이기흥)가 선수등록 규정을 기존 학제가 아닌 연령별(13세 이하, 19세 이하 등)로 개정했기 때문이다. 이 규정을 따르면 기존의 신생팀 우선지명을 시행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사건발생 순서만 봐도 큰 오류가 발견된다. 2019년 1월 대한체육회 규정 변경- 같은 해 8월 한국마사회 창단(조대성 우선지명) - 2020년 1월 조대성 우선지명의 근거가 된 규정 폐지. 대한탁구협회가 상급단체의 규정을 바로 반영했으면 문제될 것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대한탁구협회는 “별 생각이 없었고, 일정이 그래서 그렇게 했다(박창익 대한탁구협회 부회장)”는 석연찮은 이유로 선수등록 개정을 2019년 3월이 아닌 2020년 3월로 1년이나 연기했고, 이 과정에서 우선지명을 ‘당하지’ 않아도 될 조대성은 억울하기만 한 마지막 우선지명대상자가 된 것이다. 마사회의 현정화 감독은 대한탁구협회 부회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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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0일 현재 한국마사회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탁구팀 현황. 선수는 여자 3명에, 남자 4명이다.


# 마사회의 ‘얌체창단’

한국마사회의 남자팀 창단도 문제다. 마사회는 서효원으로 대표되는 전통의 여자탁구명가다. 선수정원이 8명이나 됐다. 그런데 2019년 들어 전력이 크게 약화됐고, 여자선수 4명을 줄이면서, 새로 남자선수 4명을 뽑아 남자팀을 신생팀으로 창단한 것이다. 이건 신생팀 우선지명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국내탁구발전을 위해 일자리(실업선수)가 늘어나야 신생팀의 의미가 있고, 그러니까 우선지명의 특권을 주는 것인데 여기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선수는 남녀 합쳐 8명으로 변화가 없다). 실업팀의 기준 연 10억 원(이것도 명문화된 것이 아니다) 증명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에 현정화 감독은 2019년 남자팀 창단 때부터 “지금은 회사 형편상 4명으로 시작하지만 내년부터 6명, 8명으로 늘려가겠다. 지켜봐달라”고 했다. 하지만 2020년에도 한국마사회 탁구팀의 남녀정원은 각 4명씩이다. 한국탁구발전이 아니라 팀이기주의를 위해, 사라지는 제도의 마지막 기회를 악용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 내가 조대성이라면?

한국마사회-조대성 분쟁과 관련한 대한탁구협회의 중재위원회는 계약금 등 계약조건에 대한 양측의 서로 다른 생각을 조율한다. 그런데 핵심은 이게 아니다. 몸값이 1억원이든 10원이든 조대성의 가치는 시장에서 자유롭게 형성되면 그만이다. 문제는 조대성이 애당초 우선지명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 기본적으로 제도 자체가 위헌적 요소를 갖고 있고, (2) 대한탁구협회의 부실행정이 원인이 됐고, (3) 한국마사회의 남자팀 창단은 이 제도의 혜택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간단하다, 자신이 조대성이나 조대성의 아버지라고 생각해보자. ‘신동’으로 불렸던 유망주이기에 그냥 실업팀들의 스카우트 제안을 들어보고 가장 좋은 곳을 선택해서 가면 된다. 그런데, 없어지는 못된 제도가 탁구협회의 실수로 1년 늦어지고, 그 사이 한국마사회는 갑자기 여자팀을 쪼개 남자팀을 창단하겠다고 얌체짓을 했다. 마사회가 제시한 금액이나 그간의 관심도 몹시 섭섭하다. 그런데 이를 거부하면 2년간 선수자격정지라고 말이다. 어른들이라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볼 문제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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