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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승진의 복싱이야기] ‘제2의 지인진’ 강종선의 베트남 원정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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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선 선수가 WBO 오리엔탈 유스타이틀전에서 승리가 선언되자 기뻐하고 있다.


버팔로프로모션의 강종선 선수가 지난 11월 3일 베트남 호치민에서 필리핀의 톰존 망구바트(Tomjone Mangubat) 선수와 WBO 페더급 오리엔탈 유스타이틀전에서 판정승을 거뒀습니다. 강종선 선수의 원정경기 승리를 축하합니다(통산 9승2무).

망구바트는 11승 1무 1패의 강타자였습니다. 현제 필리핀의 복싱 수준과 등록선수 숫자를 고려했을 때 같은 전적의 한국선수보다 더 나은 기량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강종선 선수는 지난 경기도 그렇고, 이번에도 라운드가 길어질수록 승기를 잡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위험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이번 경기에서 처음으로 2라운드에 다운을 당했습니다. 펀치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대로 강종선 선수는 바로 만회하려고 공세에 나섰습니다. 오히려 서두르는 것이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침착해라’ 세컨의 주문 적중

이때 세컨의 작전지시가 참 좋았습니다. “침착해! 다음 라운드로 넘겨”라고 지시했죠. 이후 라운드에서도 세컨의 작전은 적절했습니다. 임흥진 관장은 ‘잽잽 크로스’를 주문했습니다. 잽을 연속으로 던지고, 이때 들어오는 상대를 크로스로 받아치는 겁니다. 크로스 이후에도 뒤로 빠지면 훅에 걸릴 우려가 있으니 계속 압박하면서 연타 공격을 하는 작전이었죠. 링사이드에 있던 ‘한국 복싱의 레전드’ 유명우 프로모터는 연신 ‘짧게 치고 침착하라’고 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게 정답이었습니다. 작전지시는 매번 짧고 간결했고, 선수는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잘 해냈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 명의 챔프를 만들기 위해선 많은 트레이너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외국의 세계챔피언 훈련캠프에는 체력, 기술, 맨탈 등 3명의 트레이너에 전담 영양사까지 있습니다. 여러 코치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죠.

다행히 유명우 대표가 이끄는 버팔로 프로모션도 현재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 트레이너들이 상대선수를 분석하고, 훈련방향을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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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선 선수(오른쪽)가 링 위에서 임홍진 관장에게 절을 하며 감사를 표하고 있다.


뒷심이 강하면 대성한다

뒷심이 강한 것은 앞으로 더 크게 될 선수임을 시사합니다. 강종선 선수는 앞으로 테크닉을 더 향상시켜야 합니다. 유명우 대표도 “(강종선이)세계챔프로 가기 위해서는 앞으로 2~3년의 과정이 더 필요하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동안 강종선 선수는 수준급 선수들을 상대해 왔습니다. 특히 우즈베키스탄 강타자들과의 경기는 일부 복싱인들이 “너무 이른 것 아니냐”, “이번 시합은 힘들 것 같다”는 우려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강종선 선수는 모두 잘 극복했습니다. 또 이 과정에서 향후 보강해야 할 소중한 정보도 얻었습니다.

삼성체육관의 허병훈 관장은 “(강)종선이는 아마추어 경력이 없다. 지금 세계적인 선수들은 아마추어 100전 이상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데 종선이는 링 경험이 부족해서 경기를 거듭해가면서 배우는 과정을 밟고 있다. 그래서 강한 상대를 택해왔다”고 설명했다.

복서의 냉정

개인적으로 지난 8월 25일 베트남에서 있었던 우즈베키스탄의 아슈로프 쇼크루크(Ashurov Shokhrukh) 선수와의 6라운드 시합이 끝난 후 경기분석관전평을 작성해 임홍진 관장과 유명우 프로모터에게 보내주었습니다. 핵심은 ‘냉정해져야 한다’였습니다.

아슈로프 선수는 아시아 아마복싱의 최고 강국인 우즈베키스탄에서 100전 이상의 전적으로 국가대표를 거친 강타자였죠. 결과는 무승부였지만 강종선은 5,6라운드에 완전히 승기를 잡으며 역전시켰습니다. 1. 2라운드 접전에서 상대에게 많은 펀치를 허용한 것이 무승부의 원인이었습니다.

많은 복서들이 말합니다. 복싱은 마약 같다고. 마약은 안 먹어봤지만(^^) 복싱을 오래 해왔고, 마약에 대해 의학적인 상식으로 판단했을 때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중독성이 강하죠. 마약이 진통제인 것처럼 복서는 링 위에서 싸울 때 통증을 거의 못 느낍니다. 대단히 흥분된 상태이고, 위험을 감수하는 일종의 익스트림 스포츠다 보니 한 주먹 한 주먹에 상당한 쾌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흥분한 상태에서는 내 생각대로 뭐든지 다 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런 쾌감은 복싱을 일찍 시작할수록 더 강하게 뇌에 저장됩니다. ‘중2병’이라는 말이 있죠. 복싱에서도 아직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성이 앞서는 나이에서 주먹의 쾌감에 맛을 들이면 자칫 펀치 무서운 줄 모르고 싸우게 됩니다. 실제로 생활복싱대회를 보면 중학생 선수들이 가장 화끈하게 싸웁니다.

그런데 이 정도에 머물면 그냥 복서지 결코 선수가 아닙니다. 좋은 복서가 되려면 이런 마약증상을 극복해야 합니다. 링 위에서 냉철하게 상대를 분석하고, 상대 공격을 적절히 차단하거나 피하고,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며 공격을 해야 합니다. 코치도 나이 어린 선수를 키울 땐 선수가 흥분하는 것을 제어하고 항상 냉철해지도록 훈련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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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홍진 관장(왼쪽)과 강종선 선수.


수비가 강한 복싱


세계 챔프들의 회고를 들어보면 대부분 초창기 때 주먹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다가 선배들에게 호되게 ‘참교육’을 당한 후 골방에 틀어박혀 '나 이거 계속해야 될까?'라며 쓰라림을 맛보보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게 약이 돼 그 다음 경기터 정신 차리고 경기에 나서 많은 발전을 이루는 것이죠.

제가 운동 시작했을 때만 해도 복싱선수들이 아주 많아 데뷔전 치르기 전까지 많은 링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안타깝게도 선수들이 적어 많은 링 경험이 어렵습니다.

강종선 선수는 국내에서 링 경험을 많이 쌓을 수 없기에, 버팔로 프로모션이 공격적으로 강한 상대와의 경기를 고집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동안 강자들과 승리하며 자칫 과도한 자신감이 들었는지 지나치게 정면승부로 일관하자, 세컨과 프로모터, 그리고 저까지 이를 지적한 겁니다.

유명우 프로모터는 “대선수가 되려면 맞지 않는 복싱을 해야 하며,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복싱으로는 한계가 오니 롱런이 힘들다”고 늘 수비를 강조합니다. 저도 일전에 칼럼에서 쓴 것처럼 ‘프로모터가 통큰 투자를 할 수 있는 선수는 수비가 강한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WBO 오리엔탈 유스타이틀전에서도 상대 망구바트 선수는 강종선 선수의 스타일을 면밀히 분석하고 나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강종선 선수가 위빙, 더킹으로 공격 타이밍을 잡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효과적인 선제공격을 시도했습니다. 2라운드 다운도 이렇게 나온 겁니다.

여기에 강종선 선수가 공격 시 중심이동이 부드럽고 연타가 나오는 점을 알고 맞붙어 싸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위기 때마다 클린치로 정면승부를 막았습니다.

이런 초반 고전을 강종선 선수가 침착하게 이겨냈기에 더욱 흐뭇한 겁니다. 9, 10라운드는 완전히 승기를 잡고, 상대를 클린치 상대로 몰아넣었습니다.

강동선 선수는 기대주답게 승부욕이 강하고 펀치와 스피드가 뛰어납니다. 여기에 체력과 맨탈도 좋죠. 이러니 라운드가 길어지면 경기를 역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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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현지에서 경기 전. 왼쪽부터 신정훈 관장, 강종선 선수, 허병훈관장, 유명우 버팔로프로모션 대표.


지인진처럼


참고로 라운드가 길어질 때 경기를 자기 페이스로 풀어가는 능력은 지인진 챔프가 아주 훌륭했습니다. 두뇌 플레이에 능하며 냉철했죠. 상대를 압박하고, 시간과 비례해 서서히 자신의 경기로 만드는 경기운영 능력은 최고였습니다. 지금도 지인진 선수의 경기를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이번 경기를 현장에서 본 후 강종선 선수가 지인진 챔프처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꼭 그렇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향후 수비를 더 보강하고, 상대가 예측하지 못하는 공격능력을 키우면 그 확률은 훨씬 높아질 겁니다.

* 글쓴이 도승진은 현직 치과의사입니다.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누가치과의 원장이죠. 순천향대학병원 치주과의 외래교수를 역임했습니다. 동시에 하루 한 번 복싱을 수련하는 복싱인입니다. 한국권투인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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