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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화영의 골프장 인문학 33] 심심산골 문경GC 3년의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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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GC는 소맥산맥의 높은 산봉우리 사이 골짜기를 따라 자연스럽게 조성된 코스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 남화영 기자]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보러가는 선비들이 굽이굽이 높은 산길을 힘들게 넘었다는 전설이 전하는 곳이 문경새재다. 여기서 ‘새재’는 조령(鳥嶺)의 우리말로 ‘나는 새도 넘기 힘든 고개’란 의미다.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사이의 이 고개는 백두대간 소백산맥에 있는 해발 1,017m 조령산을 넘는 것이 고비다.

오늘날 경북 문경과 충북 충주를 연결한 중부내륙 고속도로가 이화령 고개를 지난다. 고도만 높아질 뿐 이곳이 험준했던 문경새재 근방인지 실감하기는 힘들다. 이화령 고개 옆 해발 300미터 완만한 골짜기의 아늑한 골프장 문경(문희-경서 코스)골프클럽(파72, 6465미터)에 들어서야 비로소 심심산골임을 느끼게 된다. 산골짜기에서 호흡부터 청량해지는 기분이다. ‘문경’이라는 이름에서 멀어 보이지만 실제로 서울 강남에서는 160km 정도 거리고 네비게이션에서는 2시간20분 이내다.

문경GC는 광산이 있던 문경이 폐광으로 위축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한국광해관리공단, 문경시, 강원랜드 등의 투자금과 민간자본을 활용해 2003년 2월에 문경레저타운으로 시작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06년에 18홀 퍼블릭 골프장이 개장했고, 2012년에는 골프장과 함께 65실 규모의 콘도미니엄 문경새재리조트가 운영되는 1박2일 골프 패키지 골프장이 됐다.

랜드엔지니어링 임형채 대표가 설계한 문경GC는 애초 루트플랜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산세가 좋았다. 주변 산봉우리 사이로 홀이 자연스럽게 흐른다. 산허리를 파는 토공을 했거나 산에 상처가 난 듯 잘려나간 암반이 드러난 곳이 거의 없고 경사가 가파르지도 않다. 코스 어디에서 봐도 주변에 철탑이나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 산과 산 사이 계곡에 조성되어서인지 골프장 주변으로 해발 1천 미터가 넘는 산봉우리들이 주변에 용립(聳立)해 연봉을 이루고 있어 진경(珍景)을 연출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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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 6번 홀은 티잉 구역에서는 페어웨이가 안 보이는 블라인드 홀이다. 그 옆으로 제1경인 나무 데크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골프장의 3경과 스토리텔링
마침 골프장에서도 주변 산세를 이용한 주요 명소에 별칭을 붙였다. 문희 코스 2번 홀 티잉 구역은 정면에 주흘산, 만항산, 월악산 등 백두대간의 기운을 간직한 봉우리들이 조망되는 곳으로 ‘소원성취홀’로 이름 붙여진 2경(景)이다.

경서코스 2번 홀은 3경이다. 멀리 백화산을 중심으로 봉우리들이 이어지는데 가장 왼쪽에 보이는 구량리라는 마을에서는 한 가정에 9명의 동자가 태어나 3정승 6판서가 되었다고 구랑리(九良里)라 불린다. 그래서 이 홀에는 ‘다복(多福)홀’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문희 코스 6번 홀 티잉 그라운드 옆은 골프장에서 가장 경관이 좋아 제 1경(一景)이다. 나무 데크 계단을 따라 전망대로 나가보면 눈이 트이고 골프장 전경이 한 눈에 펼쳐진다. 클럽하우스 뒤쪽 단산의 정자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명소이기도 하다.

파4 305미터의 전장을 가진 이 홀은 티잉 구역이 가리키는 화살표를 향해 티샷을 하는 블라인드 홀이다. 동시에 세계 골프사상 유래없는 기록을 낳은 행운의 홀이기도 하다. 2011년 4월13일에 두 팀 연속 알바트로스 기록이 나왔다. 충주에 사는 한선덕 씨가 드라이버로 한 티샷이 그린 주변에 떨어져 홀인했고, 바로 다음 팀이자 문경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이상일 씨가 친 볼이 페어웨이 오른쪽 경사를 맞고 굴러서 홀인했다. 파3가 아닌 파4 홀에서 나온 연속 홀인원, 즉 알바트로스는 골프 600년 역사상 유일무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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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위로 검은색 자갈 무덤인 서들이 가파른 산비탈에서도 오랜 세월 잘 버티고 있다.


아직 제 4경(景)에는 들지 못하지만, 다른 골프장에는 없고 이 골프장에만 볼 수 있는 게 하나 더 있다. 클럽하우스 뒤편과 코스 서너곳의 산등성이에 조성된 ‘서들’이다. 바위가 층층이 비탈을 따라 쌓인 언덕을 가리키는 지역의 전통 용어인 서들(혹은 너덜)은 이 골프장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자연 현상이다.

십여 미터 이상 될 법한 자갈무덤이 급격한 산비탈 경사에서도 굴러내리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초록의 산록에 검은색 반창고가 붙여진 모습일 것이다.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자생한 자갈면인데 볼수록 희한하다. 바로옆에 급격한 산자락을 가진 문경에서나 볼 수 있고 다른 골프장에서는 보기 힘든 장관이다.

공기 좋고, 경기도 좋은 이 골프장은 개장한 뒤로 10여 년간은 알려지지 않고 대충 운영되는지방의 한 골프장에 불과했다. 공단과 문경시 등에서 합자해 조성한 때문인지 골프장 경영에 미숙한 낙하산 인사들이 골프장 대표를 이어 맡으면서 코스 관리는 물론 마케팅에서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에 외부에 알려지지 못했다. 한국광해공단이나 강원랜드가 출자한 다른 골프장들처럼 이곳 역시 경영상 어려움이 누적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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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대표가 문경GC가 한눈에 내려보이는 전망대인 제1경에서 포즈를 취했다.


부임후 혁신을 시도한 김진수 대표
지난 2016년 김진수 대표가 부임하면서 골프장은 일신했다. 수도권 골퍼를 대상으로 1박2일 패키지 골프상품을 만들어 마케팅하고, 음식에 정성을 다하고, 불평이 나오던 코스 상태도 빠르게 개선해나갔다. 예컨대 깊은 산골이어서 멧돼지가 코스 안에 출몰해 잔디를 망쳐놓던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그는 코스 주변을 따라 검은 비닐망을 둘러싸는 방법으로 멧돼지 청정구역을 만들었다. ‘문경GC의 3경(景)’을 만들고 각종 식음을 개발하고 이벤트를 만드는 등 골프장을 찾아야 할 스토리텔링까지 만들어냈다. 그런가 하면 그늘집은 무인으로 운영하면서 천원에 아이스크림을 골라 먹으라는 고단수의 마케팅 기법을 실행하고 있다.

김대표는 골프장 업계의 알아주는 전문가다. 신라호텔에서 십여년 이상 호텔리어로 경력을 쌓은 뒤 강원도 평창의 보광 휘닉스파크로 옮기면서 골프장과 인연을 맺고 대표까지 지냈다. 효성으로 옮겨서는 레저부문 전무를 역임하면서 골프장 인허가부터 운영 관리까지 두루두루 경험을 축적했다.

골프장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골프장은 부임 한 해가 지나 2017년 소비자 만족 우수골프장에 선정되었고, 지난해는 부킹사이트인 X골프와 동아일보 및 스포츠동아에서 선정하는 ‘소비자 만족 10대 골프장’에 영남권 최초로 선정됐다. 실제로 골프장을 이용하는 골퍼들이 투표해서 선정했을 정도로 최근 골퍼들 사이에 인기 높은 골프 여행지로 변모했다. 스타트하우스에서는 여느 골프장에서 보이던 체면을 빼고 실속을 챙겼다. 저렴한 금액에 다양한 음식을 친철하게 소개하고 있다. 신라호텔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김대표지만 지방 골프장에 적합한 마케팅 기법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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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하우스에서는 다양한 음식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소개하고 판매한다.


지난해는 5월부터 코스에 라이트 시설을 설치해 반년간 운영하면서 이전까지 없던 수요를 창출해냈다. 9억원의 추가 매출이 나왔다. 오후에 골프장에 도착해 라운드하고 문경레저타운에서 숙박하고 아침에 라운드하는 저렴한 패키지 라운드 상품이 수도권 고객에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동시에 텅텅 비어서 골칫덩이이던 리조트 객실 이용률을 65%까지 끌어 올렸다. 그의 골프장 운영 신공(神功)으로 인해 지난해 내장객만 10만2천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18홀 골프장에 연 내장객 10만명을 넘기는 건 쉽지 않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가 집계한 최근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7년은 18홀 평균 7만461명이었다. 지역 중에서는 경북이 8만9237명으로 가장 높았다. 문경은 그중에서도 가장 앞자리를 차지한다.

골프장의 오전 타임이 채워지면서 2017년에 매출액 100억을 처음 달성한 데 이어 지난해는 108억을 달성했다. 최저임금 상승과 경기 침체 등의 어려운 경영 여건에서 잉여금 15억원을 적립하는 흑자 경영을 하고 수익을 주주에게 배분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높은 123억원을 매출 목표액으로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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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스는 주변이 높은 산봉우리로 둘러싸인 진경을 감상하는 힐링 코스다.


지방 골프장이 혁신에 성공하려면
임기 3년을 맞은 김 대표는 골프장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키기 위한 새로운 계획을 마음 속에 품고 있다. 국내 물 부족 현상이 매년 심화되는 가운데 애초 문경 골프장을 공사하는 중에 간과했던 용수, 저수 기능을 되살리는 것이 대표적이다. 골프장을 조성할 때만 해도 주변의 울창한 산림에서 나오는 수량이 풍부해 저수지를 만들 필요가 적었지만, 수자원의 재활용과 친환경 관리는 지방 경제와 지역사회가 당면한 주요한 과제다.

김 대표는 골프장 9홀 증설, 고속철도 역세권을 레저사업과 연계하는 방안 등을 차근차근 준비해 뒀다. 30여년 이상 농익은 골프장 관리 운영 노하우가 발휘되는 지점은 이제부터다. 천혜의 자연과 심심산골의 골프장인 만큼 미래의 화두이기도 한 힐링 명소로 자리매김할 다양한 아이디어를 기대한다.

사과 이미지의 모티브를 애플이라는 거대 첨단기업으로 만드는 건 리더 스티브 잡스의 선견지명과 아이디어였다. 유명한 문경 사과 이상으로 지난 3년간 문경골프장을 혁신한 그의 새로운 행보가 기대된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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