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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준 칼럼] 벌레 때문에 우승 날릴 뻔한 폴 케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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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한 폴 케이시. [사진=유러피언투어]


막 선선해져서 나른해진 월요일 오후. 가까운 골프 전문 기자가 전화를 했다. ‘유러피언투어 봤느냐?’고. 못 봤다고 했더니 링크를 하나 보내준다. 보고 연락을 달란다. 폴 케이시가 포르셰 유러피언 오픈에서 퍼팅하는 영상이다. 퍼팅한 볼이 굴러가다가 뭔가에 살짝 튀는가 싶더니 홀로 들어간다.

‘모래가 있었나?‘ 하고 갸웃하는데 해설을 보니 그게 벌레(bug)란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가 문제냐고. 현지에서 이것 때문에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유러피언투어 경기위원장(이하 위원장)이 폴 케이시에게 이 영상을 보여주며 물었단다. ‘벌레를 맞고 볼이 휘었는데 알았느냐?’고.

폴 케이시는 ‘몰랐다’고 답을 했고. 위원장 말은 ‘퍼팅 그린에서 퍼팅한 볼이 동물을 맞고 방향이 바뀐 상황이니 다시 쳤어야 했다’는 것이다. ‘위원장 말이 맞느냐’’고 기자가 내게 물었다. 얼떨떨했다. 말은 맞는 말이다. 벌레도 엄연히 동물이다. 그리고 규칙에 분명히 나와 있다. ‘퍼팅 그린에서 스트로크 한 볼이 동물을 맞고 방향이 바뀌거나 멈춰 선 경우 스트로크를 취소하고 다시 쳐야 한다’고.

‘다시 칠 수도 있다’가 아니라 ‘반드시’ 다시 쳐야 한다. 다시 치지 않고 볼이 멈춰 선 곳에서 그대로 플레이를 하면? 일반의 벌을 받는다. 스트로크 경기라면 잘못된 곳에서 플레이한 벌로 2벌타를 받는다는 얘기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더 심각할 수도 있다. 원래 볼이 있던 자리와 동물을 맞고 꺾여서 멈춰선 새 자리가 크게 다른데도 그대로 플레이 했다면? ‘중대한 오소 플레이’다.

벌타 받고 시정도 해야 한다는 얘기다. 폴 케이시 상황은? 홀로 들어간 볼을 꺼내 들고 다음 홀로 가서 티샷을 했다. 위원장이 케이시를 만나서 물은 것은 18홀 플레이를 모두 마치고 스코어카드를 낼 때고. 폴 케이시는 최소한 2벌타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시정할 수 있는 때를 놓쳤으니 실격 되거나. 영상을 보면 볼은 분명히 비정상적으로 움직였다. 뭔가 검은 물체가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것이 벌레라는 설명이다.

위원장 질문에 폴 케이시는 노련하게 답했다. ‘몰랐다’고 잡아뗀 것이다. 그가 규칙을 정확히 알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산전수전 겪은 선수답게 직감으로 알았을 것이다. ‘뭔가 문제가 생겼으며 몰랐다고 하는 편이 유리할 것’이라는 것을. 폴 케이시의 직감은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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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케이시가 퍼팅 하려는 순간 그린 위에 작은 벌레가 기어가고 있다. [사진=골프닷컴]


해당 규칙(퍼팅 그린에서 퍼팅한 볼이 동물을 맞으면 어떻게 되느냐는)의 ‘예외 조항’에 ‘알았거나 사실상 확실할 때’라는 문구가 폴 케이시를 살린 것이다. 만약 그가 알았다면? 여지 없이 패널티를 받을 판이다. 에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세상에 그런 불합리한 규칙이 어디 있느냐고? 당연히 나올 수 있는 반응이다.

그렇다면 반대 상황을 가정해 보자. 폴 케이시가 퍼팅한 볼이 벌레를 맞고 휘어서 홀에 들어가지 못했다. 물론 살아있는 벌레여야 얘기가 된다. 죽은 벌레는 무조건 루스 임페디먼트니까. 폴 케이시가 경기위원을 부른다. ‘기어 다니던 저 벌레 때문에 내 볼이 잘 가다가 휘었다’고 어필한다. 이 때 경기위원은 어떤 판정을 내릴까? 스트로크를 취소하고 다시 칠 수 있다고 판정할까? 아니면 작은 벌레는 루스 임페디먼트니 그냥 볼이 멈춘 자리에서 플레이 하라고 할까?

일단 루스 임페디먼트니 구제가 안 된다고 판정한다면? 폴 케이스는 ‘벌레도 동물 아니냐!’며 펄쩍 뛸 것이다. 다시 칠 수 있게 판정한다면? 그런 규칙도 있구나 하며 골프 세상은 흥미로워 할 것이다. 이 논란에 대해 여러 사람이 의견을 냈다. 그 중 한 사람은 LPGA에서 수 십 승을 거둔 유명한 선수다. 한 마디로 불합리하고 황당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 정도 작은 곤충은 루스 임페디먼트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일면 맞는 말이다. 골프규칙 용어 정의에 루스 임페디먼트를 보면 ‘쉽게 치울 수 있는 작은 벌레나 곤충도 해당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 선수에게 묻고 싶다. 그럼 곤충이 상당히 커서 볼이 굴러갈 때 확실히 영향을 받았다면? 그 때는 ‘곤충=동물’이라는 말에 수긍을 할 것이다. 골프 규칙에 동물로 취급하는 곤충 종류를 명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아니면 몇 센티미터 이상부터는 동물로 친다고 정할 수도 없고.

말 잘했다고? 아예 정확히 크기를 정하면 더 분명한 것 아니냐고? 설마 진담인가? 그럼 무릎 높이 드롭 대신 ‘지면에서 55cm에서 드롭해야 한다’고 고쳐야 할까?

케이시는 벌타를 받지 않아 1타 차로 우승했다. 우승상금은 33만 3330유로(약 4억 3850만원)였다. 작은 벌레 하나가 거액을 날리게 할 수도 있었다. 골프 세상에는 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일들이 끊임 없이 생긴다. 이런 황당한 규칙 상황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해설하는 골프 중계를 보고 싶다면 더골프채널코리아(IB스포츠)의 PGA 투어 챔피언스를 보기 바란다. 바로 뱁새 김용준 프로가 해설을 맡고 있다. 김용준 더골프채널코리아 해설위원(KPGA 프로 & 경기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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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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