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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준 칼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골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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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엔조이 골프클럽의 1번 홀.


퍼팅 그린에 언듈레이션(굴곡)이 거의 없다면 어떨까? 퍼팅하기 훨씬 쉽다. 실력 있는 골퍼라면? 재미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퍼팅 기량 차이를 가리기 어려워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새로 만든 골프장 그린을 감자칩 모양으로 구긴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재미를 더하고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골프 코스에 러프가 거의 없다면? 코스가 말도 못하게 쉬워진다. 깊은 러프에 볼이 들어가면 어떤가? 볼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겨우 찾아도 안 찾은 것만 못할 때도 많다.

코스에 나무가 없다면? 웬만한 미스 샷을 쳐도 만회할 기회가 있다. 그럼 퍼팅 그린에는 언듈레이션이 없고 코스에는 러프와 나무도 없는 골프장이라면? 이런 코스를 이제부터 ‘3무(無) 코스’라고 부르기로 하자. 퍼팅 그린 언듈레이션과 러프, 그리고 나무가 없는 코스 말이다.

3무 코스를 떠올리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에이! 어디 그게 골프 코스야?’라고 답하는 독자라면 제법 기량을 쌓은 골퍼다. ‘그런 멋진 코스가 어디 있느냐?’고 되묻는다면? 골프 삼매경에 아직 이르지 못한 골퍼일 가능성이 크다. 안타깝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뱁새 김용준 프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이런 코스 중에 멋진 스토리가 있는 곳도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2019 PGA 투어 챔피언스 딕스 스포팅 굿즈 대회가 열린 골프장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미국 뉴욕주 엔디콧에 자리 잡은 ‘엔조이 골프클럽(En-Joei Golf Club) 말이다. 엔조이 골프클럽은 1927년에 문을 열었다. 3무 코스로 말이다. 골프장 설립자가 골프를 잘 몰라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재원이 넉넉치 않아 일부러 그렇게 디자인한 것도 절대 아니고.

이 골프장 설립자는 사업가 조지 조던이다. 이 지역에서 큰 신발 공장을 하고 있었다. 엔디콧 슈 컴패니가 그 회사다. 신발에는 고무가 들어간다. 밑창으로는 고무가 최고다. 엔디콧 슈 컴패니는 신발 뿐 아니라 골프볼도 생산했다. 지금도 고무를 다루는 회사들이 골프볼을 생산하는 경우가 많다. 타이어 회사 같은 경우 말이다.

골프장이 문을 연 1927년 당시는 러버 볼(고무를 주 소재로 쓴 골프볼)이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값이 페더 볼보다 싸고 내구성은 물론 퍼포먼스도 좋아 골프붐이 다시 일어나던 시절이었다.

골프 매니아였던 조지 조던은 마음이 아팠다. 자기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골프는 부자들만 하는 귀족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데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 당시로는. 장비와 그린피가 모두 비쌌다. 특히 한 번 사면 오래 쓰는 클럽 말고 여차하면 잃어버리는 골프볼은 크게 부담이 됐다.

조지 조던은 근로자들도 골프를 즐길 수 있게 할 방법을 궁리했다. 그래서 직접 골프 코스를 열었다. 그 코스가 바로 엔조이 골프클럽이다. 엔조이골프클럽은 신발 공장 근로자에게는 그린피를 25센트밖에 받지 않았다고 한다. 1927년 물가니까 가늠이 잘 안 되지만 무조건 반값도 안 됐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골프 백도 75센트에 팔았다고 한다. 물론 근로자에게 그 값에 줬다는 얘기다. 조지 조던의 배려는 코스 디자인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일단 코스에 러프를 아예 기르지 않았다. 주머니가 가벼운 근로자들이 비싼 골프볼을 잃어버리고 속상해 할 것이 마음 아팠기 때문이다. 코스에는 나무도 심지 않았다. 볼이 사라질 가능성을 더 낮추려고. 그리고 퍼팅 그린에는 언듈레이션을 만들지 않았다. 더 쉽게 만들어 더 많은 근로자가 즐기 수 있게 하려고 한 것이다.

“우리 골프장 어때? 어렵지?”. 뱁새 김 프로가 지인이 갖고 있는 골프장에 들르면 자주 받는 질문이다. 지금은 어려워야 더 멋진 골프장이라고 생각하는 골프장 오너가 대부분이다. 퍼블릭 골프장을 운영하는 사업가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려워야 좋은 골프장이라고. 그런데 엔조이 골프클럽은 ‘쉽고 부담이 없어야 좋은 골프장’이라는 철학을 담았다는 얘기 아닌가? ‘엔조이 골프클럽’이야말로 진정한 퍼블릭 골프장 의 원조라고 뱁새는 생각한다.

이런 코스에서도 1971년부터 PGA투어 B.C 오픈이 열렸다. 골프 거장들이 이 코스에서 엄청난 스코어로 우승하곤 했다. 쉬운 코스였으니 당연하다. 그러다 이 코스는 지난 1998년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더 이상 옛 모습만 간직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퍼팅 그린에 언듈레이션을 줬다. 나무도 많이 심고. 러프도 제법 기르기 시작했다. 현재 모습을 거의 갖춘 것은 바로 2년 동안 리모델링을 거친 결과다. 2006년 이 지역에 큰 홍수가 닥치면서 코스가 초토화 되다시피 해 대회를 치를 수 없게 된 것은 불행이다.

그 탓에 PGA 투어는 다른 코스로 옮겨갔다. 코스를 재정비하고 유치한 대회가 바로 ‘PGA 투어 챔피언스 딕스 스포팅 굿즈’다. 엔조인 골프클럽. 이름부터 얼마나 간결한가? ‘엔조이’의 ‘En-Joei’는 ‘즐긴다’는 뜻인 ‘enjoy’에서 나온 것임은 물어보나마나다. 상표 등록을 위해 약간 변형했지만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골프 코스! 멋지지 않은가? 이런 아름다운 스토리가 담긴 골프 코스는 더골프채널코리아(IB스포츠)가 중계하고 뱁새 김용준 프로가 해설하는 PGA 투어 챔피언스에서 만날 수 있다. 김용준 더골프채널코리아 해설위원(KPGA 프로 & KPGA 경기위원)

● ‘골프채널코리아’가 나오는 채널=KT올레TV(55) BTV(133) LG유플러스TV(102) CJ헬로(183) ABN아름방송(68) CMB(8VSB: 67-3) 딜라이브(157) 서경방송(69) 울산방송(147) 충북방송(67) 제주방송(96) 현대HCN(519) KCN금강방송(116)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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