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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전토토와 카타리나 블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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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표지.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현대의 고전으로 불릴 만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노벨문학상(1972년)을 받고, 국제펜클럽 회장을 지낸 하인리히 뵐(독일)이 쓴 이 작품은 유시민이 ‘청춘의 독서’에서 소개하기도 했다. 동명의 독일영화도 찬사를 받았다. 내용은 27살의 평범한 여성이 갑자기 언론에 등장하면서 왜 신문기자를 살해하게 됐는가를 추적하는 것이다. 주제는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라는 책의 부제처럼 간명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인 ‘언론의 폭력’, 혹은 ‘다수의 폭력’(사실 역사적으로 이런 사례는 부지기수로 많다)을 고발한 것이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쏠림현상이 심한 요즘 우리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1일 ‘전토토’가 프로농구로 돌아왔다. ‘전토토’는 전창진 전 감독(56 원주DB-부산KT-안양KGC)에게 그를 싫어하는 일부 팬들이 조롱조로 붙인 별명이다. 그는 2015년 4월 KGC 감독으로 선임됐지만 5월 승부조작 및 불법도박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으면서 8월 사임했다. 전 감독은 강력한 선수장악에 빼어난 전술로 좋은 성적을 냈지만, 심판에 대한 거친 항의와 가끔 튀어나오는 엉뚱한 선수기용으로 찬티와 안티와 뚜렷했다. 이런 차에 승부조작과 도박 혐의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으니 그는 지탄의 대상이 됐다. 진짜 ‘전토토’가 된 것이다. KBL는 발빠르게 그를 ‘무기한 등록 자격 불허’라는 중징계를 내렸고, 그에 대한 언론과 팬들의 비난은 사회적 사망선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혹독했다.

# 사회적 파장이 컸던 ‘전창진 사건’은 용두사미라는 표현도 무색할 만큼 정반대로 귀결됐다. 먼저 검찰은 2016년 9월 승부 조작, 불법 스포츠 도박 혐의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언론은 이를 비중있게 보도하지 않았다). 단순도박 혐의로만 기소된 전창진 감독은 1심에서 무죄, 2심에선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지난 달 대법원에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혐의 입증을 확신하며 관련 정보를 언론에 마구 흘린 경찰, 사회부 기자들이 달라붙어 쏟아낸 전창진의 범죄의혹 보도, 그리고 이에 흥분한 팬들의 분노. 이런 것을 감안하면 사법부의 최종 판단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황당하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고사하고, 혐의 하나만으로 죄가 없는 사람이 긴 세월 모진 고생을 한 꼴이 됐다. 지난해 11월 전창진 감독은 전주KCC의 수석코치로 복귀하고자 KBL에 등록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벌금 100만 원’의 유죄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것마저 없어지니 1일 KBL이 징계를 철회한 것이다. 4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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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진 전 감독은 1일 KBL에서 소감을 밝히다가 끝내 눈물을 흘렸다. [사진=KBL]


# 대포폰 사용, 부적절한 사람들과의 친분 등 분명 전창진 감독이 실수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최종 무죄에도 불구하고 전창진 감독은 정말 많은 것을 잃었다. 가정도 문제가 생겼고, 경제적으로도 파산했다. 처음에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으나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마저도 쉽지 않아졌다. 수치심과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꼈다. 그 많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났다. 달세를 밀려 원룸에서 쫓겨날 지경에 처하기도 했고, 밥 사먹을 돈이 없어 3일을 굶기도 했다. 경제적,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예전의 지인들을 쉽게 만날 수 없는 상황이 가장 힘들었다. 삶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 알고 보니 그것이 잘못됐고, 혹은 과했다고 해도, 특정인에 대해 한 번 폭발한 대중의 분노는 쉽게 정정되지 않는다. 1일 전창진의 복귀에 싸늘한 반응을 보인 이들이 많았다. 전창진에 대한 불만표출을 넘어 결정을 내린 KBL과 사법부까지 공격했다. ‘분명 범죄자인데, 전창진이 돈을 쓰고, 수완을 부려 사법부와 KBL의 제재를 무력화했다’는 억측까지 나온다. 그럴까? 앞서 언급한 대로 전창진 감독은 사건이 터진 후 경제적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재벌들처럼 비싼 변호사를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단순도박에 대해 2심에서 벌금 100만 원이 나왔을 때 전창진 감독 본인과 주변에서는 이를 받아들이고, 소송을 그만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변호사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방방 뛰었다. KBL 내부에도 온갖 이유를 대며 ‘전창진은 안 돼’라고 주장하는 반대파가 많았다. 전창진의 복귀는 법치국가에서 법원이 무죄라고 최종 판결을 했기에, 더 이상 전창진을 옥죌 명분이 없어졌기에 나온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 뿐이다.

# “처음 경찰에 불려다니고, 연일 언론에 큰 범죄자처럼 내 얘기가 나오니 정말 당황했어요. 농구인으로 살면서 언론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생각했는데, 기자들이 나한테 전화 한 번도 없이 경찰이 밝힌 혐의만 대대적으로 보도하니 정말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사실 이는 지끔까지도 서운한 대목입니다. 하지만 결국 다 제 잘못이었다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내가 허영심에 질이 좋지 않은 사람들과도 어울린 것이 문제의 근원이죠. 사실 경제적 파산도 도박 때문이 아닙니다. 돈거래나 허튼 투자로 많은 돈을 날린 거에요. 다 사람 잘못 사귀어서 생긴 일이고, 지난 4년간 무지하게 반성했습니다. 이제 제게 남은 것은 농구밖에 없습니다. 농구로 회개하고, 농구로 명예회복을 하겠습니다”(전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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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진 감독의 카카오톡 초기 화면. '하단 프로필 사진이 너무 어두워 범죄자처럼 보인다'는 지적에 "이것도 다른 사람이 해준 것으로 바꿀 줄을 모른다"는 답이 왔다.


# 전창진 감독은 체질적으로 술을 마시지 못한다. 그럼에도 사람을 좋아해, 주변에 사람이 많기로 유명하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도 많고, 자기가 따르는 사람도 많았다. 맞다 좀 허세가 있기도 했다. 이런 스타일은 적도 많다. 전창진의 영향력에 피해를 본 이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성벽 탓일까, 혹은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허술한 삶을 살았던 탓일까, 전창진 감독은 범죄 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았고, 최종적으로 무죄로 판명났지만 지난 4년 삶의 바닥까지 떨어지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원래 벌은 잘못한 만큼 받는 것이 상식이다. 이쯤이면 그가 잘못에 비해 사회적으로 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고 할 수 있다.

# 전창진 감독은 한때는 무죄가 나오면 자신을 학대한 언론 등을 상대로 소송을 하려고도 했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접었다. 시비를 가리는 것보다 그냥 다시 농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너무 힘들어 삶을 내려놓고 싶었을 때, 그를 도와준 최형길 단장과 KCC 구단에게도 농구로 보답하고 싶어 한다. 그는 지금 집도 없다. KCC 선수단 숙소가 주소지다. 그렇다면, 혹시 지난 시절 우리가 그를 지나치게 대했던 것은 아닌지, 그리고 법적으로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은 지금 그를 조금은 따뜻한 시선을 바라볼 수는 없는지 판단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미워할 죄도 없어졌는데, 사람을 계속 미워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야박하다. 전창진 감독의 농구 컴백을 축하한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편집장]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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