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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준 기고] ‘박힌 공’ 룰 잘못 알아 ‘막혔던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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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이 페어웨이에 박힌 경우 들어올려 드롭할 수 있다.


내년부터 골프룰이 대대적으로 바뀐다. 라운드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 간소화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아마추어 골퍼에서 시작해 프로자격을 따고 현재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경기위원으로 있는 김용준 프로의 기고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십 년도 더 지났다. 지금 생각하면 빙그레 웃음이 나오는 그 일이 일어난 지도. 그 때 나는 골프에 한창 재미를 붙였다. 그 날은 선배 세 명과 라운드를 했다. 비가 여러 날 연속 제법 많이 내린 뒤였다.

선배가 티샷한 볼은 페어웨이 한 가운데로 시원하게 날아갔다. 목청도 시원하게 “굿 샷”을 외친 우리는 볼을 찾으러 나섰다. 그런데 막상 선배 볼만 보이지 않았다. 캐디까지 포함해 다섯 사람이 한참 헤매고서야 진흙 속에 깊게 박혀 겨우 이마만 내밀고 있는 선배 볼을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선배는 나를 포함한 다른 세 사람보다 구력이 길었다. 우리 셋은 패기만 있는 초보였고. 그는 “박힌 볼을 집어올려서 고실고실한 곳에 놓고 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머지 셋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든 근거는 ‘볼은 있는 그대로 쳐야 한다’는 대원칙이었다. 선배는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다.

정확한 답을 안다면 수준 높은 골퍼다. 우리가 벌인 논쟁은 상당히 치열했다. 그 중에서도 목소리 제일 큰 사람은 나였다. 골프채를 잡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70대 타수를 쳐본 데다 비거리(흔히 드라이버 샷 거리를 말함)도 그 중에 으뜸이어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누구 주장이 옳은지는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하자.

그 전에 그날 일을 어떻게 마무리 지었는지부터 말하자면 이렇다. 선배는 그 볼을 집어 올리지 않고 그대로 쳤다. 볼은 풀쩍 뛰어올라 여남은 발짝도 채 가지 못했다. 볼과 함께 진흙덩이도 날아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풀 위에 떨어진 볼에는 여전히 진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선배는 그 홀에서 더블 보기를 기록했다.

하수면서도 라이벌 의식이 강한 나머지 셋은 표나게 쾌재를 불렀고. 그로부터 팔구년 쯤 지나 나는 프로 골퍼가 됐다. 지난 2015년 이맘 때 마흔 살이 훌쩍 넘어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 선발전에 합격한 것이다. 또 프로 골퍼가 된 지 2년 뒤에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 골프 심판 스쿨(TARS) 최종 단계를 최우수 졸업했다. 올해는 KPGA 경기위원 공개채용 때 합격해 한 해 동안 경기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당연히 십여 년 전 그날 누가 옳았는지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어설프게라도 답을 알게 된 것은 그 일이 있고 나서 한두 해 지나서다. 짧은 시간에 실력이 부쩍 는 내가 골프 룰에 관심을 가진 것이다. 물론 ‘알기 쉬운 골프 규칙’ 정도나 ‘만화로 보는 골프 규칙’을 본 것에 불과하지만. 그날 페어웨이 진흙에 박힌 선배 볼은 벌타 없이 집어올려서 가까이 드롭한(어깨 높이에서) 뒤에 칠 수 있었다. 당연히 집어올린 뒤 볼에 묻은 흙을 깨끗이 닦을 수도 있었고.

선배가 맞고 나머지 셋은 억지를 부린 것이었던 것이다. ‘둘이 하나를 상대로 박박 우기니 맹자가 공자 스승이 되더라’는 옛 얘기와 비슷한 일이 일어난 셈이다. 나중에야 규칙을 알고 얼마나 낯이 뜨겁던지. 잘못을 알자마자 선배한테 사과한 것은 물론이다. 나와 같이 패를 이뤄 행패를 부린 다른 두 선배에게도 사실을 알리기도 했고.

지금 생각해도 ‘아이고 창피해라’ 명색이 KPGA 경기위원인 내가 체면 깎이는 걸 무릅쓰고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밝히는 이유는 이렇다. 내년 1월1일부터 골프 규칙이 크게 바뀐다. 삼십여 년 만의 대 개정이다. 지금까지 조금씩 바뀐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죽하면 전 세계 골프 규칙을 관장하는 두 단체(R&A와 미국골프협회)가 ‘골프 규칙 현대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이 일을 추진했을까.

귀띔을 두어 가지 하자면 ‘제너럴 에어리어’와 ‘페널티 에어리어'라는 말이 새로 생긴다. 각각 지금 쓰는 ‘스루 더 그린'과 ‘해저드’라는 말을 대체하면서도 조금 더 분명하게 뜻을 정한 용어다. 드롭 방법도 어깨 높이에서 무릎 높이로 낮아진다. 이 밖에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복잡하고 불합리한 조항들이 사라진다.

새 규칙이 발효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어제까지 신사였던 골퍼가 오늘은 무뢰한이 된다. 골프 규칙 책 한 번 보지 않고도 그럭저럭 지낼 방법이 이제는 없어진다. 초보라고 너그럽게 이해해주던 선배 골퍼도 반(半) 백지 상태에서 새롭게 규칙을 배워가야 하기 때문이다. 난감한 이 상황이 어쩌면 기회일 수도 있다. 너나없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새 출발하니 말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년 1월1일 0시부터다. 정 다급하면 나라도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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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KPGA경기위원


김용준 KPGA 경기위원(엑스페론골프 부사장) 골프학교아이러브골프 Cafe.naver.com/satang1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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