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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WC 리뷰] 멕시코 전 '1-2 패배' 대한민국에 없었던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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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의 주장 기성용(오른쪽)이 중원에서 분전했지만, 대표팀의 추락을 홀로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이혁희 기자] 기적은 없었다. 애당초 기적 또한 준비된 자에게만 주어지는 희박한 기회일 뿐, 자격이 없는 자에겐 기적도 없음을 증명한 꼴이었다. 24일 0시(한국시간) 러시아 로스트포-온-돈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컵 F조 2차전에서 대한민국이 멕시코에 1-2로 패했다. 한국 대표팀은 부족한 점 투성이였다.

#'포백 보호자'가 없던 대한민국

멕시코의 공격 삼각편대 '치차리토'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웨스트햄), 카를로스 벨라(로스앤젤레스), 이르빙 로자노(아인트호벤)는 모두 수비수 가까이 움직이며 힘으로 버티기보다는, 빈 공간을 헤집고 침투하는 데 능한 선수들이다. 공간을 최대한 내주지 않는 것이 이들을 막는 관건이었다.

중원의 기성용(스완지시티)은 전문적인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니다. 왕성한 수비보다는 경기 리듬을 조율하며 후방에서 볼 배급에 특화된 선수다. 기성용의 파트너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수비진을 보호할 투지 넘치는 미드필더가 필요했다. 소위 '청소기' 혹은 '사냥개'로 불리는 스타일이다. 이날 출전한 주세종(아산 무궁화)은 이 역할을 맡기엔 기량부족이었다.

홀딩 미드필더가 없는 한국 대표팀은 경기 내내 수비진과 미드필드진 사이에 넓은 공간을 노출했다. 멕시코의 중앙 미드필더 헥토르 에레라(포르투)가 지난 독일 전만큼 컨디션이 좋았으면 그 빈 공간을 향해 마음 놓고 중요한 패스들을 찔러넣었을 것이다. 한국 대표팀이 그렇게 넓은 공간을 내주고도 2실점에 그친 것은 불운이 아니라 오히려 다행에 가까웠다. 필드골을 한 골만 내준 건 한국이 잘 했기 때문이 아니라, 멕시코에 창조적인 패스를 배급할 선수가 부족한 덕이었다.

결국 기성용이 수비까지 나서야 했다. 몇 차례 좋은 수비를 보여주었지만, 기성용은 재빠르게 달려들어 공을 따내는 유형도 아니고, 본업인 볼 배급에 집중하지 못하니 한국의 균형이 무너졌다.

심지어 그나마 기성용 옆에서 수비적인 역할을 나눠 맡던 주세종이 후반 19분 이승우(헬라스 베로나)와 교체되어 나가자마자 일이 터졌다. 주세종보다 공격적인 이승우가 투입되고 2분 후인 후반 21분, 멕시코의 역습 상황에서 돌격하는 멕시코 공격진을 늦추지 못하고 치차리토에게 두 번째 실점을 당한 것이다. 한국의 수비진들은 1차 방어막 없이 곧장 멕시코의 역습을 감당해야 했다.

# 정확도 증발

후반 추가시간 손흥민이 터트린 만회골을 제외하면, 한국 대표팀은 90분 내내 날카로움과 거리가 멀었다. 여전히 선수들간의 호흡이 100%가 아니었고, 수비 분담도 고르게 나눠가지지 않았다. 서로가 원하는 템포가 같지 않으니 주고 받는 패스가 정확할 리 없었다.

좌우 풀백으로 출전한 김민우(상주 상무)와 이용(전북 현대)은 둘다 크로스의 타이밍이나 정확도 모두 최하점에 가까웠다. 두 선수가 오버래핑 이후 크로스로 위협적인 장면을 만든 적이 전무했다. 현대 축구에서 공격 재능이 없는 풀백은 반쪽짜리, 혹은 그 이하나 마찬가지다. 멕시코 수비수들은 한국의 측면 공격을 전혀 힘겨워하지 않는 듯했다.

팬들은 과분할 정도의 호흡이나 창의성을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뻔한 상황에서 한두 번의 정확함만 이어지길 바랐다. 이전의 한국 대표팀들이 보여준 것처럼.

패스가 정확하지 않으니 공격 작업은 몇 차례 이어지지도 못하고 멕시코에게 공을 내주기 십상이었다. 결국 기껏 올라갔다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기회를 낭비한 선수들은 수비를 위해 복귀하느라 체력을 소진했다. 공격 때마다 사기와 체력만 무의미하게 탕진하고 있으니 집중력 있게 기회를 만들기도 어려워졌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 체력과 투지 상실


한국 대표팀이 '투박하지만 체력과 정신력으로 무장했다'는 말은 완전히 옛말이 되었다. 전반 26분, 장현수의 핸드볼 파울로 선언된 패널티킥에서 벨라에게 선제 실점을 당하자, 한국 대표팀의 의지는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지난 스웨덴 전 패널티킥 실점이 겹쳐 보인 듯, 선수들은 눈에 띄게 의욕을 상실했다. 그 전까지 스웨덴 전보다 훨씬 나은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었기에 아쉬움이 더했다.

현대 축구의 키워드는 이제 '점유'보다는 '압박'이다. 공을 빼앗기면 곧장 그 자리에서 압박을 통해 소유권을 탈취하는 것이 핵심이다. 압박 지점이 높으면 높을수록, 우리 골문과 멀어져 안정감이 높아지고, 그만큼 상대를 빠르게 위협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공격수들은 공을 빼앗기면 압박이 아니라 아쉬움만을 보였다. 드리블이나 패스가 통하지 않아 공의 소유권이 넘어가면, 그저 자리에서 탄식하고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특히 공격진을 이끌어야 할 에이스 손흥민(토트넘)은 짜증과 한숨으로 일관했다. 다시 공을 빼앗아 오기 위해 달려든 적이 없었다. 에이스가 보일 덕목과 거리가 멀었다. 주장 기성용이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으로, 주심에게 겸손한 제스처를 건네는 것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장면이었다.

온화한 리더가 있으면, 카리스마 넘치는 선배도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대표팀에 그런 선수는 없었다. 실력으로 보이고, 경험으로 이끌어야 할 에이스가 불만을 필드 위에서 드러내니 팀의 사기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체력적으로도 대표팀은 준비가 덜 되었다. 이미 오른쪽 풀백 이용은 전반 40분 만에 방전된 모습을 보였고, 손흥민은 이렇다 할 압박을 한 적도 없으면서 경기 막판에 다리를 움켜쥐었다. 유럽 리그 일정이 끝난 후, 사나흘 간격으로 빠듯하게 치뤄지는 월드컵 일정에 체력을 맞추지 못했단 뜻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표팀에서 가장 승부욕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 건 교체 투입된 막내 이승우였다. 짧은 시간이나마 재기 있는 드리블을 보이며 미래를 기대하게 했다. 문제는 미래를 낙관하기엔 현재 대표팀이 너무 볼품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16강의 꿈은 사라졌다. 대표팀은 27일(수) 23시에 있을 독일과의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결과와 상관 없이 더욱 좋은 경기를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이는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자들의 책무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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