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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평행이론으로 본 서울과 평창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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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평행이론'의 포스터.


# 평행이론 하면 뭐 거창한 것 같지만 사실 별거 아니다. 기가 막힌 ‘우연의 일치(coincidence)’ 정도로 보면 된다. 기본적으로 과학적 근거가 취약하다. 말이 ‘이론’이지 ‘상대성이론’이나 ‘빅뱅이론’처럼 학문적 권위가 없다. 쉽게 말해 네이밍에 속는 측면이 강하다. 미국에서 1999년 프랭크 조셉이라는 사람이 ‘Synchronicity And You’라는 책을 냈는데, 사례분석을 통해 ‘서로 다른 시대를 사는 두 사람의 운명이 같은 패턴으로 반복된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것이 비운의 미국대통령인 에이브리햄 링컨과 존 F. 케네디다. 둘이 100년의 세월 두고 닮은꼴 운명을 겪었다는 것이다. 궁금하신 분들은 찾아보시라. 감탄이 나올 정도로, 혹은 정말 잘 끼워맞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삶의 궤적이 흡사하다. 예컨대 링컨의 비서관 이름이 케네디, 케네디의 비서관은 공교롭게도 링컨인데, 이들은 대통령의 암살 전에 극장(링컨), 댈러스(케네디)에 가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 평행이론의 사례는 이 외에도 나폴레옹-히틀러, 마릴린 먼로-최진실 등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그런데 가장 극적인 것은 평행이론의 주창자 프랭크 조셉의 얘기다. 자신이 100년 전 인물로 미국에서 고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그나치우스 도넬리와 같은 운명이라는 것이다. 압권은 싱크로니서티(Synchronicity)를 안 덕분에 불운을 피했다는 것. 1901년 1월 1일 도넬리는 심장발작으로 사망했는데, 100년 후 자신은 심장약을 휴대하고 다녀 심장발작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쯤이면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에 제격인 소재다. 이 평행이론이 한국에서 좀 과대평가된 것은 2009년 이런 내용을 소재로 한 한 영화가 ‘평행이론’(영어제목은 Parallel Life)이라는 그럴듯한 제목을 달았기 때문이다. 이를 여러 언론이 보도하면서 평행이론이 무슨 대단한 이론처럼 부풀려진 측면이 강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영어 표현에도 평행이론 따위는 없다. 그냥, 싱크로니서티로 ‘절묘한 우연의 일치’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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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서울 올림픽 남자 유도 60kg급에서 금메달을 딴 김재엽이 추석날 시상식에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 [사진=대한체육회]


# 한창 열기가 뜨거운 2018 평창 동계올림픽과 88 서울 올림픽을 두고 ‘평행이론’ 얘기가 나오고 있다. 맞다. 절묘하게 닮은 구석이 많다. 먼저 두 대회는 한국의 명절 기간에 겹쳤다. 평창 올림픽 개회식(9일)의 꼭 일주일 뒤인 16일이 설날이었다. 30년 전 서울 올림픽은 9월 17일에 시작됐고, 8일 후인 25일이 추석이었다. 1988년 추석날 김재엽은 유도 남자 60㎏급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는 추석을 고려한 듯, 미리 준비한 한복을 입고 시상대에 올랐다. 이번 설날에는 ‘아이언맨’ 윤성빈이 스켈레톤에서 완벽에 가까운 레이스로 아시아 첫 금메달을 수확했다. 금메달이 확정되자 팬들을 향해 넙죽 세배를 해 ‘황금세배’가 큰 화제가 됐다. 김재엽과 윤성빈의 우승은 각각 해당 올림픽에서 한국이 딴 2번째 금메달이었다. 1988년 한국은 종합 4위(금메달 12개)에 올랐고, 2018년 평창의 목표도 4위다(금메달 8개). 30년 전 김재엽의 두 번째 금메달이 후 금맥이 터지면 10개의 금메달이 나왔다. 이번 평창에서도 그럴 가능성이 제법 있다.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빛 레이스가 제법 남아 있기 때문이다.

# 사실 30년의 세월을 둔 서울과 평창 올림픽의 평행이론(다시 말하지만 우연의 일치다)은 보다 거시적인 차원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영화 ‘1987’에서 알 수 있듯 서울 올림픽 1년 전 한국은 정치적으로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전두환이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내세워 호헌(4.13)을 내걸었다. 이에 민주시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히자 또 한 번 계엄을 통한 무력진압을 고려하기도 했다. 그랬다가는 국제적으로 큰 비난을 사 서울 올림픽의 정상적인 개최가 힘들어진다고 판단해 대통령직선제를 받아들였다(6.29선언). 평창 올림픽도 유사하다. 2017년 한국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평화적인 방법(촛불혁명)으로 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고, 새 대통령을 뽑았다. 두 올림픽 모두 1년 전 한국 정치사의 기념비적인 사건을 겪은 것이다. 그리고 올림픽 개최를 이끌어낸 대통령(전두환 이명박)이 올림픽 후 법의 단죄를 받는다는 공통점도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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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강원도 평창 메달플라자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켈레톤 남자 시상식에서 윤성빈이 금메달을 보이며 미소짓고 있다. [사진=osen]


# 그럼, 한국을 넘어 세계사적인 의미도 있을까? 지난 해 작고한 고 김운용 IOC수석부위원장은 서울 올림픽 회고록의 제목을 ‘위대한 올림픽’으로 명명했다. 한글도 참 거창한데, 영어는 더욱 그렇다. '가장 위대한 올림픽(The Greatest Olympics)'이다. 올림픽은 4년마다 열리지만 서울 올림픽은 특별하다는 자부심이 배어 있다. 역대 최대 규모, 동서화합, 최초의 개발도상국 올림픽 개최 등 서울 올림픽은 세계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남겼다. 실제로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은 식민지를 겪었던 동방의 작은 나라가 올림픽을 치를 정도로 경제발전을 이룬 현장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것이 이후 사회주의 몰락의 기폭제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 평창은 어떨까? 전격적인 북한의 참가가 큰 화제가 됐다. 여자 아이스하키팀 단일팀이 꾸려지고, 북에서 응원단이 내려오고, 관현악단과 태권도시범단의 공연이 있었다. 무엇보다 북한 최고 권력자 김정은의 친동생인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이 내려와 개회식 등 주요일정을 함께 했고, 남북 정상회담까지 제의했다. 이에 한쪽은 북한의 올림픽 참가가 한반도 평화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높이 평가하고, 반대쪽은 ‘쇼에 불과하다. 북한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공격한다. 올림픽을 앞두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당사자인 남북한은 물론,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이 관계된 지구촌의 골칫거리였다. 서울 올림픽이 냉전시대의 종말을 앞당겼다면, 평창 올림픽은 한반도에서 핵무기는 물론, 전쟁의 위험을 완전히 없앨 수 있을까? 그렇다면 서울 올림픽을 능가하는 더욱 위대한 올림픽이 될 것이다.

# 재미삼아 얘기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평행이론을 정말 과학적으로 믿는 것은 우스운 태도다. 그런데 한국에서 열린 두 올림픽의 평행이론은 여러모로 꼭 맞아떨어졌으면 좋겠다. 그 결과는 상상(이매진-평창 개회식의 노래)만 해도 멋지기 때문이다. 조금 묻힌 감이 있는데 지난 12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눈길이 가는 제안을 하나 했다. 꼭 100회째를 맞는 전국체전이 내년에 서울에서 열리는데 이를 ‘서울-평양 동시 개최’로 하자는 것이다. 경평축구 부활도 언급했지만 신선함과 파급력에서 전국체전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어쨌든 한반도의 운동선수들이 수시로 휴전선을 오가며 경기를 하는데, 전쟁을 운운할 틈이 있겠는가? 북한도 스포츠를 통한 진정한 남북교류와 평화를 원한다면, 일시적인 올림픽 참가를 넘어, 지속가능한 스포츠교류에 문호를 열어야 한다. 그래야 평화에 대한 진정성이 대내외로 검증될 것이다. 평창의 평화 올림픽 꿈은 올림픽 기간인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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