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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영아의 차이나는 골프] (6) 중국 골프의 '우마차'와 골프 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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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하이난 주니어골프대회에서 폭우로 경기가 중단되자 하염없이 코스에서 기다리고 있는 중국선수들. 그래도 장난을 치는 등 표정이 밝다.


흔히들 중국은 19세기와 21세기가 공존한다고 합니다. 경제대국을 넘어 인공위성을 쏳아올릴 정도로 과학기술의 수준이 높지만, 아직 우마차가 사용되는 등 낙후된 지역도 많기 때문입니다. 이는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나 기술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문화에서는 더욱 심하기도 합니다.

골프로 와 보죠. 1980년대 덩샤오핑이 개방개혁을 이끌면서 중국 전역에 우후준숙처럼 골프장이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2012년 시진핑 시대가 열리고, 반부패운동이 시작되면서 ‘골프’가 부패의 온상으로 지목을 받았습니다. 2014년에는 전국 66개 골프장이 영업을 중단하기도 했죠. 회원가가 한국돈으로 4억 원이 넘는 골프장이 갑자기 문을 닫기도 했습니다. 한국 같으면 난리가 났겠죠?

제가 체험한 중국골프도 '인공위성'과 '우마차'가 공존합니다. 골프장, 클럽, 패션 등은 이미 세계 최고인 한국여자골프와 다를 게 없습니다. 하지만 스윙이론과 레슨, 그리고 대회 진행 등 문화의 측면은 아직 멀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지난 10월 하이난에서 열린 주니어대회에 다녀왔습니다. 첫째날과 둘째날에도 비가 내렸지만 마지막 3라운드는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천둥 번개까지 치면서 도저히 경기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한국이나 미국 같으면 선수들을 바로 클럽하우스로 불러들여 안전을 도모하고, 휴식을 취하게 합니다. 그런데 대회 주최측은 1시간 가까이 코스에 선수들을 방기했습니다. 비를 맞으며 그냥 경기속개를 기다린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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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계속되자 골프장 내 터널로 이동해 비를 피하고 있는 중국선수들.


빗줄기가 가늘어지는커녕 더욱 거세지자, 대회 주최측은 선수들을 코스 안에 있는 터널로 이동시켰고, 여기서 다시 40분을 대기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정말이지 선수들의 고생이 심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선수들의 반응이었습니다. 한국과 미국에서 선수생활을 한 저는 어이가 없었는데, 중국선수들은 대체로 말없이 시키는 대로 따랐습니다. 이것이 골프에서 얼마나 부당한 처사인지 모르는 것이죠.

동계시즌이 되면서 11월부터 제가 맡고 있는 중국 여자 국가대표팀(아마추어)은 쿤밍에서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표팀의 원래 본부는 산둥성의 난산골프장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대표팀 안에서도 중국 특유의 문화가 보인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매주 화요일이면 남녀, 프로와 아마추어 대표팀이 모두 모여 국기게양식을 합니다. 야외에서 커다란 오성홍기를 하늘 높이 올리고, 책임자의 훈시까지 있습니다. 군사정부시절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처음에 참석여부를 고민하다가, 선수들과 친해지기 위해 꼬박꼬박 나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고위관리가 살짝 이렇게 말하더군요. “양 쟈오리안(감독), 게양식에 참석하는 거 정말 잘하는 겁니다. 여기(중국)서는 이런 게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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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성 난산골프장에서 매주 화요일이면 열리는 중국 골프 국가대표팀의 국기게양식 장면.


지난달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 때 시진핑이 연설할 때는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골프대표팀의 모든 선수들이 한 방에 모여 TV생중계로 지켜보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그렇게 했죠. 선수들은 모자를 벗고, 자리에서 일어나 보이지 않는 최고 권력자에게 예를 표했습니다.

골프기술자인 저는 중국의 이런 문화를 평가할 능력도,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단,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스윙도 그렇습니다. 중국선수들은 대체로 기초가 아주 약합니다. 샷이 잘 안 되면 대부분 그때그때 임시처방에 의존하죠. 코치들도 그렇게 합니다. 이러니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아니라 기복이 심하고, 선수생명도 짧아집니다(주말골퍼들도 이런 분들이 많죠). 좋은 신체조건과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중국 골프가 이런 점들을 보완하면 향후 무섭게 성장할 것입니다.

끝으로 제가 확실하게 바꿔놓은 게 하나 있습니다. 중국대표팀에는 프로대회나 국제대회에 선수를 추천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지금도 남자는 그렇게 하는데, 여자도 예전에는 감독이나 대표팀 책임자가 임의로 추천을 했죠. 하지만 저는 이것을 ‘경쟁’으로 바꿨습니다. 연습라운드 성적을 통해 초청선수를 선발하는 것이죠. 우리한테는 당연한 것이 중국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것입니다.

중국은 각 분야에서 ‘굴기(屈起)’ 중입니다. 스포츠에서는 ‘축구굴기’가 유명하다고 하네요. 시간 문제이겠지만 골프의 ‘우마차’를 줄인다면, ‘골프굴기’도 조만간 나올 듯합니다. [중국 여자 골프국가대표팀 헤드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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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제19차 중국 공산당 당대회 때 시진핑 주석이 나오자, 선수들이 모자를 벗은 것은 물론, 자리에서 일어나 TV를 시청하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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