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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화영이 만난 골프人] 김대섭, 골프 교습가로 ‘인생 2막’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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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는 김대섭은 라운드를 마치고는 '시원섭섭하다'고 말했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김대섭(36)은 한국 남자 골프의 한 아이콘이다. 아마추어로 내셔널타이틀인 한국오픈을 두 번, 프로가 되어서 한 번 우승한 ‘한국오픈의 사나이’다. 그래서 2001년말 프로 데뷔해 16년간 프로 8승이 그의 이력이지만, 엄밀하게는 1994년4월1일 골프를 시작한 ‘구력 24년에 통산 10승의 골퍼’라는 표현이 그를 더 잘 설명한다.

한국남자프로골프(KPGA)투어 시즌 마지막 대회인 카이도투어챔피언십 파이널 라운드가 열린 지난 5일은 현역 프로골퍼 김대섭으로 뛰는 마지막 라운드였다. 두 아들 단이와 결이가 아빠의 은퇴 경기를 지켜보았다. 보기로 라운드를 마친 9번 홀 그린에는 양휘부 KPGA회장까지 나와 악수하며 그를 격려했다. 경기를 마친 김대섭과 솔모로컨트리클럽 2층 클럽하우스에서 만나 생맥주 한 잔씩 시켜놓고 축하 잔부터 부딪쳤다.

- 18홀을 마치고 난 기분은?
생각한 대로 잘 끝났다. 시원섭섭하다.

- 선수 생활은 얼마나 했나?
대학 2학년 2001년에 데뷔했으니 16년이다.

- 아니 아마추어 때도 우승했으니 골프를 시작한 때부터 잡아야 할 것 같은데?
초등학교 때는 야구 선수를 하다가 중학생이 되면서 94년4월1일부터 골프를 했으니 24년간 아마추어 선수생활을 했다.

- 오늘은 가족이 다 온 것 같다.
은퇴식을 할 때도 처제까지 왔고, 오늘은 가족이 왔다. 아내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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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고2로 한국오픈에서 우승한 김대섭. [사진=KPGA]


김대섭은 어린 시절부터 남자 골프의 중심에서 하이라이트를 받았다. 1981년6월30일생으로 제주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야구 선수를 3년간 했다. 하지만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오라골프장에서 근무하는 부친(김충남)에 의해 골프로 진로를 바꿨다.

1998년 국가대표 상비군이자 고등학교 2학년으로 출전한 한국오픈에서 당시 최고 선수인 최상호와 미국의 프랜 퀸을 5타차로 제치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한국을 대표하는 메이저 대회에서 아마추어 우승은 1982년 매경오픈에서의 김주헌 이후 16년만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 2001년에 대학 2학년에 역시 아마추어로 출전한 한국오픈에서 또 한 번 우승한 뒤 10월8일 프로 데뷔했다.

2000년대 세대교체의 선두주자를 거론할 때는 항상 김대섭이었다. 2002년 시즌 첫 대회인 SK텔레콤오픈에서 4위에 오르더니, 포카리스웨트오픈에서도 2위, 메이저인 KPGA선수권에서 우승하며 그해 명출상(신인상)을 받고, 강욱순에 이어 상금 2위에 올랐다.

2003년 포카리스웨트오픈에서는 대회 최소타 타이기록인 19언더파 269타로 우승을 보탠다. 한 해 건너 2005년에는 3번의 준우승 끝에 KPGA선수권에서 우승하며 그해 말 덕춘상(최저타수상)을 받고 결혼을 하며 가정도 꾸렸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3년간 부진의 터널을 거쳤다. 2006년 메리츠솔모로오픈에서의 스코어 오기로 실격당한 것이 계기일 수도 있다. 20대 기수라는 말 속에 쏟아지는 과도한 기대와 비판을 혼자서 오롯이 견뎌야 했다. 항상 자신 있게 대회에 임했으나, 한두 번 대회를 치를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슬럼프에 빠졌다고 본인도 느꼈다. 드라이버 입스가 겹쳤다. 공이 두 개로 보였다. 심지어 정신병 치료를 받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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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재기전에서 샴페인 세례를 받으며 울음을 터트리는 김대섭 [사진=KPGA]


2008년 9월21일, KEB한중투어인비테이셔널 2차 대회에서 3년만에 우승을 했다. 신예 장타자 김대현과의 연장전에서 우승을 확정하자 동료들이 달려와 샴페인 세례를 할 때 그는 그동안 참아왔던 사나이의 울음을 한동안 터트렸다. 그리고 이듬해 메리츠솔모로오픈, 2010년 한양수자인파인비치오픈에서 우승하고 군대에 입대했다.

2012년 군에서 제대하고 돌아와서 하반기부터 7개 대회에 출전했는데 그중에 2승을 거뒀다. 동부화재프로미오픈에 이어 한국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2013년부터는 다시 주춤했다. 젊고 비거리가 많이 나는 20대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조금씩 뒤쳐졌다. 지난해 동부화재프로미오픈에서 2라운드까지 단독 선두를 달렸으나 3,4라운드에서 부진해 4위로 마친 게 안타까웠다. 지난해 12개 대회에 출전해 11번 본선에 올랐으나 올 시즌은 17개 대회에서 8개만 본선을 통과했다. 그 사이에 남부 골프장에 숏게임 아카데미를 열었다. 은퇴를 마음에 두고 있던 터여서 대회에 온전히 집중하기도 어려웠다.

- 은퇴하는 진짜 이유가 뭔가?
시즌 초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가장 큰 게 경기 스트레스였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지금도 대회 성적이 안 나오면 스트레스 받는다. 그냥 투어 생활하더라도 어느 정도 성적은 내겠지만 그보다는 다른 영역에 도전하고 싶었다.

- 드라이버 입스로 고생했고, 허리 부상도 있었는데 그것 때문은 아닌가?
허리 부상은 골프 선수라면 웬만한 정도는 다 있다. 그리고 입스로 고생도 했지만 그 이유는 아니다. 올해 시즌을 무사히 잘 마쳐서 기분 좋게 다른 도전을 하는 것이다. 드라이버 입스는 지난 2006~07년에 심했다. 그때는 공이 두 개로 보였다. 그래서 티를 낮게 꽂는 방식으로 변화를 주기도 했었다. 그래도 은퇴한다고 할 때 박수받으면서 떠나는 게 너무 고마운 일이다. 돌아보니 나는 참 많은 혜택을 받은 선수였다. 일단 내 인생에 골프를 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복이었다.

- 골프 선수를 은퇴하면서 생각하는 고마운 일과 아쉬운 골프를 꼽는다면?
가장 좋았던 것은 골프를 시작한 것이다. 야구에서 골프로 돌아섰다. 둘째는 밝은 성격의 아내를 만난 것이다. 세 번째는 제대하고 한국오픈 우승한 것이다. 아쉬움이라면 선수로서 국내 투어에만 머물고 다른 해외 투어에 도전해보지 못한 것과 대학 때 프로 턴하느라 아시안게임에 나가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집안 형편이 어려웠으니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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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섭은 2012년 제대하고 나서 출전한 한국오픈에서 우승했다. [사진=KPGA]


- 한국오픈에서의 3승을 평가하자면?
1998년 첫승은 골프채 잡은 지 5년만이니까 멋모르고 우승했다. 2001년 2승째는 국가대표 시절에 정말 어떤 샷이든 자신이 있을 때였다. 세 번째는 프로가 되고 군대 다녀와서 힘들지만 값지게 재기에 성공한 우승이었다.

- 우승 못한 대회 중에 어떤 대회가 가장 아쉬운가?
2013년 8월 경기 동촌CC에서 열린 56회 KPGA선수권이다. 마지막 홀에서 티샷도 잘 맞았다. 그런데 세 번째 그래스 벙커에서 샷을 실수하면서 트리플로 연장전에 못나간 게 가장 아쉽다. 김형태 선배와 연장전에 나간 이상희가 우승했다.

- 한국 남자 골프에서는 상징적인 선수였다. 안티없이 선수 생활을 잘 한 비결은 뭔가?
내가 부자집 출신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최상호 프로님부터 남영우, 장익제, 허석호 형들이 다들 이뻐해 주셨다. 모르겠다. 가식 없이 대한 것이 큰 것 같았다. 주위에 좋은 사람이 많은 것이 밑천이다.

- 숏게임 전문 교습가를 계획한다고 하던데?
숏게임을 전문으로 하는 국내 교습가가 없는 것 같다. 현재 남부CC에서 아카데미를 열었다. 과천이나 수지 등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에 숏게임 연습장을 만들 계획이다. 그린을 크게 만들어서 초종이 다른 잔디들을 심어서 다양한 잔디에서의 플레이도 가능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 스크린 골프나 샷 측정기가 있는 스윙 스튜디오도 들어가는 형태를 생각하고 있다.

- 성은정과 아마추어 몇 명이 벌써 제자로 두고 있나?
맞다. 은정이가 숏게임을 배우고 있고, 여자 2부투어에서 우승한 김리안, 아는 선배의 아들인 중1, 고1, 고2까지 5명이다. 간판을 걸지는 않았는데 ‘소문듣고 왔다’면서 아카데미가 꾸려졌다. 올 겨울에는 미국이나 뉴질랜드에 전지훈련을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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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마지막 대회에 출전한 김대섭. [사진=KPGA]


- ‘김대섭=수준급 숏게임 보유자’로 선수들도 인정하는 데 기억나는 순간이라면?
동료들이 그런 얘기를 해주니까 고맙다. 숏게임에서 확률이 좋았던 것 같다. 2008년 오스타에서 열린 한중투어KEB인비테이셔널에서 3년 만에 우숭할 때가 기억난다. (김)대현이와 18번 홀 연장전에 나갔다. 나는 5번 우드로 어프로치를 했고, 대현이는 6번 아이언을 잡았다. 내 공은 그린 옆 러프에서 홀까지는 마운드가 있었다. 칩샷을 하니까 갤러리 사이에서 ‘어’하는 소리가 들렸다. 공은 마운드를 타고 90도 가까이 꺾이면서 들어갔는데 사람들은 잘못 친 줄 알았다. 그 샷으로 홀 두 걸음 거리에서 우승 퍼트를 성공시켰던 순간은 짜릿했다.

-2012년 KLPGA선수 김자영이 3승을 할 때 ‘김대섭 선배에게 숏게임을 잘 배워 우승했다’고 소감을 말했던 것이 기억나는데?
공익요원으로 군에 복무하던 때 두산매치플레이가 열린 라데나 골프장까지 가서 샷을 봐준 기억이 난다. 김자영 선수가 3승하는 데 숏게임 교습을 많이 해준 건 사실이다.

- 숏게임을 잘하는 특별한 비결이 있나?
내가 실제로 하는 기술이나 방식과 비교할 수밖에 없다. 나는 비거리가 긴 편이 아니어서 숏게임에 보다 많은 공을 들여 연구했다. 그래서 다양한 상황마다 보이는 것이 더 많았고, 그 결과 나름의 해법도 갖춘 것 같다.

-아마추어 골퍼들이 숏게임에서 가장 못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면?
숏게임은 띄워서 보내기 보다는 실은 잘 굴리는 데 핵심이 있다. 띄우려다 보니 체중이 오른쪽에 남는다. 사실 띄우려고 할 때마다 뒤땅과 탑볼을 내는 골퍼가 많다. 그건 습관이기도 하다. 그런 자세를 교정하면 어프로치나 숏게임이 개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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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김대섭이 현역 선수로 마지막 라운드를 하는 날 가족이 총출동해 아버지를 응원했다.


- 교습가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데 가족의 반응은 어떤가?
투어를 뛸 때면 목요일부터 내가 좀 예민해졌다. 성격상 뭐가 안 되면 예민해지고 다운되곤 했는데 이제 그럴 일은 없을 것 아닌가. 아이들 스케줄에 따라 바쁘게 살 것 같다. 그래서 아내는 더 좋아한다.

- 두 아들 단(12)이와 결(9)이에게도 골프를 가르칠 계획인가?
가족이 함께 골프를 한다. 첫째는 전지훈련을 항상 데려갔었다. 단이는 90타를 안정적으로 친다. 연습도 아니고 취미로 하는 데도 승부욕이 있다. 아내는 80타 중반을 치는 데 단이는 엄마에게 지는 것을 싫어한다. 나는 직접 안 가르칠 생각이다. 벌써부터 삼촌들이 너무 많다.

- 너무 빨리 은퇴한다거나 아쉬움은 없나?
나는 뭐든지 남들보다 빨리 했던 것 같다. 프로도 빨리 됐고. 25살에 결혼했으니 그것도 빨랐다. 은퇴마저 빠른 것 같다. 은퇴식을 협회와 소속사인 스포티즌에서도 챙겨주어서 너무 고맙다. 나는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다. 선수생활 할 때보다 더 바빠질 것 같다.

-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이나 다짐이라면?
지금껏 인복이 많았다. 사람 대 사람으로 봤을 때 거짓으로 하면 안 되겠다. 교습이라는 것도 내가 잘 치거나 혹은 상대방이 잘 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서로 잘 맞아야 한다. 진실하게 더 많이 내 자신을 내려놓고 거기에 빠져들어야 할 것 같다. 내 골프를 쳤던 것보다 많이 해야 겠다. 그런 생각이 든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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