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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나이 든 ‘게으른 천재’가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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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나온 이동국의 자서전 '세상 그 어떤 것도 나를 흔들 수 없다'.


# 2013년에 나온 축구선수 이동국의 자서전 <세상 그 어떤 것도 나를 흔들 없다>는 자세한 내용이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1998년 프랑스월드텁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한국축구의 기대주에서 2002년 한일월드컵 대표팀 탈락, 2006년 최고의 전성기에서 부상으로 월드컵 불참 등 온갖 부침을 겪은 ‘인간 이동국’에 대한 얘기가 가득했던 것 같다. 1979년생이니 당시 우리나이 서른다섯, 아마도 곧 있을 은퇴를 염두에 두고 책을 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동국은 지금도 뛰고 있고, 심지어 국가대표로 또 다시 월드컵 출전을 바라보고 있다. 자서전도 그의 은퇴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 셈이다.

# ‘국민마라토너’로 불린 이봉주는 성실함의 화신이었다. 2009년 전국체전에서 우리나이 마흔에, 41번째 풀코스 완주를 1위로 장식하면서 선수생활을 마쳤다. 신혼여행을 가서도 새벽에 일어나 뛰었다니 할말이 없다. 심지어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지금도 틈만 나면 뛴다. 각종 마라톤대회에 찬조출연하는 수준을 넘어 1년에 한 번은 풀코스에 도전한다. 언젠가 이봉주는 이렇게 얘기했다. “있잖아,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내가 금메달을 땄으면, 아마 일찍 은퇴했을 거야. 그리고 중간중간의 실패가 없었다면 마흔한 번이나 풀코스를 뛰는 일은 없었겠지. 그 힘든 마라톤훈련을 어떻게 마흔살까지 할 수 있었겠어. 돌이켜보면 좌절이 지금의 나를 만든거야.”

# 탁구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전형’으로 평가받는 주세혁(1980년생)은 지금은 IOC위원인 유승민보다 2년 선배다. 유승민은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소문났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남자단식 금메달을 따냈다. 유망주이기는 했어도 유승민급은 아니었던 주세혁의 역대 최고 성적은 2003년 파리 세계선수권의 남자단식 준우승이다(사실 이것도 대단하다. 한국탁구의 이 종목 역대 최고성적이다). 유승민은 2012년 런던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를 했고, 주세혁은 아직도 ‘선수’다. 그냥 나이 많은 선수가 아니라, 최근 T2대회에서 ‘신기의 커트’로 세계 톱랭커들을 툭툭 잡아내는,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실력파다. 그가 최근에 말했다. “저도 몰랐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선수로 뛸지를요. 올림픽 금메달이나,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했다면 벌써 은퇴하고 코치를 하고 있지 않을까요?” 은메달이 금메달보다 수명이 긴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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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최근 사진.


# 다시 이동국 얘기. 서른아홉인 그는 지난 9월 17일 K리그 클래식 포항과의 원정경기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해 통산 197골 71도움의 금자탑을 쌓았다. 한국 프로축구 34년 역사에서 ‘50(골)-50(도움)’ 클럽 이상 가입자도 8명에 불과한데, 이동국이 ‘70-70’의 문을 연 것이다. 200골 고지에도 단 3골을 남겨놓고 있다. 그런데 대기록 달성의 감이 뭉클했다. “히딩크 감독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이동국은 히딩크 감독에 찍혀 대표팀에서 탈락했다. 자신도 놀라고, 축구팬도 놀랐다. 4강신화를 지켜보는 그의 심정은 상상하기 쉽지 않다. 듣자하니 거의 폐인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15년이 흘러 최고의 순간에, 최악의 시절에 감사하다고 말한다. 이쯤이면 대선수답다.

# 2000년께 동료 축구기자가 이동국을 ‘게으른 천재’라고 평했다가 필화를 겪은 일을 옆에서 지켜봤다. ‘라이언 킹’으로 불리는 한국축구 최고의 스트라이커를 대놓고 ‘게으르다’고 했으니, 선수 본인이 불쾌하게 생각한 것은 물론이고, 구단과 팬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젊은 천재는 게을렀던 것이 맞은 듯싶다. 신이 그에게 너무 많은 재능을 줬고, 그의 젊음은 재능에 성실함을 덧붙일 만큼 성숙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은 어떨까? 누구도 이동국에게 ‘게으르다’고 말할 수 없다. 예전 인터뷰에서 이동국은 이렇게 말했다. “(2002년의 아픔을)누구는 빨리 잊어버리라고 해요. 하지만 전 절대로 잊고 싶지 않아요. 힘들 때마다 ‘폐인의 생활’을 기억하면서 ‘그때보단 힘들지 않잖아!’하고 스스로 얘기하거든요.” 확실히 실패는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든다.

# 실패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위대한 실패와 위험한 실패. 전자는 더 큰 성공의 밑거름이고, 후자는 그냥 인생의 실패자로 만든다.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후자가 위세을 떨친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로런 게리 교수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의 창업자는 평균 2.8번 만에 성공한다고 했다. 쉽게 말해 성공한 기업은 두 번 정도는 쓰라린 실패를 경험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에서는 ‘Fast Fail, Fail often’라는 가치가 보편화돼 있다고 한다. 한국의 실패경험은 1.3회에 불과하다고 한다. 중국도 미국 수준이니 우리네 미래가 걱정되기도 한다. 스포츠가 웅변하듯이 제발 실패에 관대했으면 한다. 추석명절, 어깨가 처진 사람들에게 “괜찮아, 노력하면 더 잘될거야”라고 격려를 하자.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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