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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어느 골프해설위원과 배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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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교수의 '인간의 위대한 여정'.


# 이기심과 이타심. 어려운 문제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과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그 유명함만큼이나 인간이라는 존재에서 배려를 도려냈다. 자본주의는 이기심에 기초하고, 한국은 유독 ‘경쟁’이 지배하니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지난 7월 배철현 교수(서울대 종교학과)는 <인간의 위대한 여정>이라는 책을 냈다. 철학적 담론이 큰 까닭에 쉽게 읽히지 않지만, 실력 있는 학자가 조근조근 “인류 진화의 핵심은 이타심”이라며 설명하는 것이 보기 좋다.

# ‘경쟁’이 기본요소 중 하나인 스포츠 세계에서는 재미있는 속설이 하나 있다. 스타플레이어는 배려에 약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원체 잘났고, 떠받들여지는 데 익숙하다 보니 남을 배려하는 데 익숙지 않다는 주장이다. 무엇이든 일반화는 위험하지만, 쉽게 부정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스타플레이어가 좋은 감독이 될 수 없다’는 속설과도 일맥상통한다.

# 지난 2월 둘째 딸을 출산한 박지은 SBS 골프해설위원(38)은 지난주 한화클래식에서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대회현장에 큰 딸과 남편이 엄마와 아내를 응원하기도 했다. 박 위원이 중계 후 저녁식사를 하고 밤 10시께 숙소로 들어가려는데, 7~8명의 대행사 직원들이 그 식당으로 들어왔다. 일하느라 저녁이 많이 늦어졌던 것이다. 식당 문을 닫을 시간이었기에, 그들의 부탁을 받고 식당 측이 음식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이걸 본 박지은 위원은 문을 나서다가 이들의 식사 값을 지불했다. 방송 중계진은 보통 대행사로부터 대접을 받는 게 관례다. 박 위원처럼 하기가 쉽지 않다. 다음 날 대행사 직원들을 통해 박 위원의 배려가 대회 현장에 퍼졌고, SBS 중계진과 골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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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두 번째 딸을 얻은 박지은 SBS 골프해설위원. [사진=SBS골프]


# 박지은 위원은 설명이 필요 없는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가 입지전적인 55승의 대기록을 달성했고, 프로인 미LPGA에서도 통산 6승을 거두며 박세리, 김미현 등과 함께 한국여자골프의 세계정복을 이끌었다. 빼어난 실력에 리틀미스코리아 출신으로 외모도 준수하고, 유명한 부잣집 딸이었다. 이미지도 ‘차도녀’에 가깝다. 상기 스포츠 속설에 따르면 배려와는 거리가 멀 법하다. 그런데 정반대로 ‘주변에 잘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저, 애를 벌써 둘이나 낳았어요. 이제 부모 마음, 그리고 세상을 조금 알 것 같아요.”

# 얼마 전 한 육상인으로부터 지금은 방송인으로 변신한 전직 ‘국민마라토너’ 이봉주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아시잖아요, 이봉주가 사람은 정말 좋은데 남들에게 돈을 잘 쓰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거요. 근데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여러 후배들과 제법 비싼 고깃집에서 식사를 했는데, 딱 계산을 하더라고요. 아마 방송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좀 달라지지 않았나 합니다.”

# 칼럼을 쓰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주차장이었다. 차가 오랫동안 보이지 않아서 걱정된다며 안부를 물었다. 맞다. 주차난이 심한 동네에서 출장과 가벼운 사고로 3주 동안 차를 대지 않았다. 작은 사고이고, 몸은 안 다쳤으니 괜찮다고, 그리고 신경 써주신 거 감사하다고 답했다. 그의 배려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살짝 부끄러워졌다. 주차장 쪽에 내 사정을 미리 말했다면 다른 사람이 비어있는 주차공간을 활용했을 텐데. 배려의 미학은 머리나 논리가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 같다.

# 영화 <부당거래>에서 류승범의 대사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큰 반응을 얻었다. 다윈이나 도킨스처럼 까칠하게 세상을 인식할 수도 있다. 그리고 물론 사람이 모두, 늘 선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때로는 이기적이고, 때로는 이타적일 것이다. 단지 요즘 세상이 한쪽으로 많이 치우쳐져 있기에 배철현 교수처럼, 박지은 위원처럼 ‘배려’를 중시하는 것이 새삼 작은 감동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공자님이 그랬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고. 역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남들에게 하면 된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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