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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한국체육은 ‘눈 뜬 시각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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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못된 속성을 고발한, 주제 사라마구의 '눈뜬 자들의 도시'.


# 2010년 사망한 포르투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의 작품 중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것은 <눈먼 자들의 도시>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멀어 버리면서(백색실명) 발생한 이야기인데 추악한 인간성을 고발했다. 2탄 격인 <눈뜬 자들의 도시>가 택한 소재는 더 특이하다(물론 작품성은 전작보다 못하다는 평이 많다). 백색혁명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선거일, 당국은 저조한 투표율을 걱정했는데 투표마감 시간을 앞두고 사람들이 마치 ‘레밍(^^)’처럼 선거에 참여했다. 더 놀라운 것은 높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기권, 그러니까 누구도 선택하지 않은 투표지가 80%에 달했다는 점이다. 이를 소재로 사라마구는 눈을 뜨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우리네의 태도를 꼬집었다. 권력의 속성과 국민의 권리를 생각하게 한다.

# 지난주 끝난 2017 런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번개’ 우사인 볼트(자메이카)의 은퇴무대였고, 한국도 ‘단군 이래 가장 빠른 사나이’ 김국영이 남자 100m 준결승에 진출한 것이 화제가 됐다. 중요한 것은 한국육상이 끔찍한 부진에서 벗어날 희망조차 보이질 않는다는 사실이다. 신체조건이 비슷한 중국이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로 종합 5위에 올랐고, 일본도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로 종합 29위에 랭크됐다. 한국은 메달은커녕 김국영의 준결승 진출이 최고였다. 기대했던 경보에서도 톱10에 실패했다.

# 더 큰 문제는 언론(스포츠미디어)의 반응이었다. ‘아시아 육상의 약진, 세계와의 격차 확인한 한국 육상(중앙일보)’, ‘한국 육상, 중국·일본과 비교되는 성적표…'약소국' 절감(연합뉴스)’, ‘400m 릴레이에서 나는 일본, 투척·경보에서 여전히 강한 중국…한국은?(스포티비뉴스)’ 등 초라한 한국육상의 현실만 나열했다. 도대체 분석과 비판이 없다. 2000년 이전만 해도 올림픽, 세계선수권 등에서 폭망한 종목은 언론을 두려워했다. 협회와 지도자의 무능이 신랄하게 고발됐고, 이에 따라 인적쇄신이 일어났으며, 해당종목 중흥책이 나왔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게 없다.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고, 청사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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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런던 세계육상선수권 남자 100m에서 한국인 첫 준결승 진출을 달성한 김국영. [사진=OSEN]


# 육상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예컨대 농구 같은 프로종목도 그렇다. 여자농구는 LA올림픽(1984년) 은메달과 시드니올림픽(2000년) 4강의 빛나는 역사가 있고, 남자도 겨울철 최고 인기종목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아시아에서는 줄곧 중국과 정상을 다퉜다. 남녀 농구 모두 국내에서 ‘프로’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인기가 뚝 떨어졌다. 국제경쟁력에서 여자는 세계 8강을 자신할 수 없고, 남자는 아예 아시아 4강만 해도 잘했다고 하는 분위기다. 그런데도 따끔한 비판과 이를 수용하는 리액션이 없다. 해먹던 사람들이 여전히 해먹는다.

# 여자프로단체(WKBL)는 박근혜 정권의 실력자가 총재를 거쳐갔고, 그의 대학후배 농구인이 바통을 받아 수장을 맡고 있다. 그들은 ‘여자농구 인기가 올라가면 오히려 부담스럽다. 지금처럼 조용히 계속 우리가 연맹을 장악하는 게 낫다’라는 태도를 보인다고 한다. 이권과 관련해서는 실력자가 직접 개입하고, 한 하청업체의 지분을 요구했다는 설도 있다. 그 사이 황당사건 1위에 오를 만한 ‘첼시 리 족보 위조’ 사건이 발생했고, 연맹 고위층은 책임지지 않았다. KBL도 비슷하다. 구시대의 표상인 김영기 총재는 두 번째 수장을 맡으며 약속한 농구중흥을 이끌지 못했다. 지난 6월말 임기가 끝나면서 마땅히 물러나야 했는데 ‘좋은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KBL총재를)더 하겠다’고 발표했다. 소가 웃을 일이다. 현 총재가 딱 버티고 있는데 ‘좋은 사람’이 나타나겠는가? 전임자가 깨끗하게 물러나야, 좋은 후임자가 나오는 것은 애들도 다 안다. 요즘 KBL은 2명의 Y대 출신 실력자가 김영기 총재에게 신임을 받기 위해 애처로운 충성경쟁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친구 사이 우정에 금이 갈 정도로.

#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권력’과 ‘적폐’는 정치영역뿐이 아니라 도처에 존재한다. 최고 정치권력과 관련해 워낙에 황당한 경험을 한 까닭에 그동안 사회 곳곳의 적폐는 청산할 여력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태생적으로 규율을 잘 따르는 체육인들인 까닭에 적폐청산에 익숙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순실이 스포츠를 부정부패의 무대로 삼았던 만큼 이제 스포츠계에서도 제몫을 못하는 권력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예전에 그랬고, 앞으로 그래야 한다. 괜스레 비판을 했다가 불이익을 당할까 하는 비겁부터 버려야 한다. 한국체육은 지금은 눈을 뜨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몹시 부끄럽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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