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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종훈의 빌드업] (22) 고려대 정택훈, ‘축구+공부’ 두 마리 토끼 모두 잡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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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택훈은 지난 U리그 개막전 아주대와의 경기에서 골을 기록했다. [사진=정종훈]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정종훈 기자] 최근 학원스포츠에서는 ‘공부하는 운동선수’가 화두로 떠올랐다. 대학 스포츠의 경우 올초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KUSF)의 C(2.0) 학점 미만 출전 제한 규정으로 후폭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서울의 모 대학은 결국 규정을 충족한 선수가 부족하자 U리그 불참을 선언했다.

운동과 공부, 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참 어렵다. 그런데 운동뿐 아니라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는 학생선수들이 종종 눈에 띈다. 단순히 출전을 목표로 C°학점(2.0)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먼 미래를 보고 펜을 잡는 경우는 더욱 반갑다. 고려대 축구부 주장 정택훈(22)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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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택훈(19번)은 올 시즌 주장 완장까지 차며 고려대를 이끌고 있다. [사진=정종훈]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 모두 소화 가능한 멀티플레이어 - 축구

정택훈은 대학 초반 그리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다. 동기들이 받는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졌다. 입학과 동시에 ‘에이스의 상징’ 10번을 단 김건희(22 수원삼성)를 비롯해 이상민(22 수원삼성), 장성재(22 울산현대), 이은성(22 울산현대), 임승겸(22 나고야 그램퍼스)은 새내기 때부터 피치를 밟았다. 반면 정택훈은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더 길었다.

그러던 중 2015년 2학년 말 U리그 왕중왕전 때 정택훈에게 천금 같은 기회가 주어졌다. 김건희가 대표팀 차출로 빠지자 고려대 서동원 감독은 정택훈을 최전방 공격수로 기용했다. 본래 포지션이 수비수였음에도 불구하고 골을 기록하며 조금씩 두각을 드러냈다.

그는 3학년인 지난해 김건희가 프로 진출로 빠진 공백을 완벽히 메꾸며 주전으로 도약했다. 그리고 올해에는 주장 완장까지 차며 고려대를 이끌고 있다. 올 시즌 초반에는 경기당 1골씩 기록할 정도로 좋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최전방 공격수뿐 아니라 경기 중 상황에 따라 중앙 수비수와 미드필더까지 소화했다. 공격수로 피치를 밟는 시간이 더 길었지만, 정작 그는 수비수에 대한 욕심을 더 강하게 어필했다.

“프로에서는 공격수로 주로 용병을 쓰잖아요. (공격수로) 계속 뛰고 싶기도 한데, 길게 봐야 하니까요. 수비 봤을 때 다부진 면은 조금 부족하지만, 예측하고 팀원들을 컨트롤하는 부분을 주변에서 좋게 평가해주시더라고요.”

프로에서 정택훈을 바라보는 시선도 긍정적이다. 최근에는 한 프로팀의 R리그에서 테스트생 신분으로 90분을 모두 소화했다. 중앙 수비수와 최전방 공격수로 번갈아 나서면서 자신의 기량을 뽐냈다. 정택훈은 좋은 경험을 했다고 돌아봤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했죠. 대학과는 많이 다르더라고요. 예를 들면 대학에서는 분명 크로스 타이밍인데, 저도 모르게 접더라. 거기서 한 번 벗겨졌는데 좋은 경험을 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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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정택훈은 축구와 공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진=정종훈]


은퇴 후 새로운 꿈을 꾸다 - 체육교사

고려대는 다른 대학과는 달리 특별하게 체육부를 운영하고 있다. 체육특기자들을 따로 모아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단 교직 이수는 제외). 영어와 같은 외국어는 기초부터 공부하지만, 전공과목은 일반 체육과 학생들이 배우는 것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운동부끼리 수업을 듣기 때문에 학점 얻기는 수월하지만, 그럼에도 학점과는 거리가 먼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보통의 체육특기자들과 달리 정택훈은 꽤 학점이 높다. 1학년 때에는 성적장학금까지 받았다. 학점이 4.0 이상을 기록한 학기는 3번이나 넘는다. 고려대 체육부의 특수성은 존재하지만, 마냥 운동장에서 땀 흘리는 운동만 하다 허리 꼿꼿이 세우고 책상에 앉아 공부하기가 쉽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그 의지가 인상 깊다.

그는 “이왕 하는 거 안 하는 것보다 공부했을 때 저한테 득이 되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운동선수이기 전에 학생이기 때문에 학생 본분에도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라며 웃음 지었다.

정택훈은 지난해에는 교직 이수 수업을 일반 학생들과 진행했고, 올해 1학기에는 교생 실습까지 다녀왔다. 대학생이 가장 꺼리는 팀 프로젝트도 처음으로 해봤다. 모든 것이 다 처음이니 낯설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런 내색을 하지 않으려 힘썼다.

“교직 이수 때 팀 프로젝트를 처음 해봤는데 진짜 힘들었어요(웃음). 학우들이 배려도 많이 했고, 저희 선수들도 최대한 따라가려고 노력했어요. 발표, PPT 전부 같이하면서 그때 배웠어요. 커피 사 들고 가니까 답답한 모습은 안 보이던데요?(웃음)”

이러한 수업 덕분인지 정택훈은 새로운 목표를 얻었다. 은퇴 후 축구 지도자보다는 체육 선생에 대한 욕심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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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투박한 글씨체지만, 정택훈이 수업 시간에 필기한 자료들. [사진=정종훈]


정택훈은 올 시즌 힘겨운 시즌을 보내고 있다. 축구와 공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서다. 대전으로 교생 실습을 나갈 때는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중학교 운동부와 함께 꾸준히 훈련했을 정도다.

4학년 주장으로서의 외로움도 지니고 있다. 동기 대부분은 일찍 프로로 진출했고, 올 시즌 시작을 함께한 송인학과 임승겸은 부상과 J2리그 진출로 팀에서 멀어졌다. 4학년이 팀을 이끌어야 하는 아마추어 대회 특성상 정택훈 혼자 남았기 때문에 다소 고될 것이다. 그는 “아직 외롭지는 않지만, 가끔 생각날 때도 있어요. ‘다 같이 뛰고 있으면 얼마나 재밌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이런 성실함을 바탕으로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에도 발탁됐다. 대표팀 내에서 훈련하며 ‘우물 안 개구리’였던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도 됐다. 약 5개월 남은 대학 생활, 정택훈은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마지막 힘을 쏟아내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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