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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승의 골프 타임리프] 디 오픈 이야기 (3) - 그라운드 게임 vs. 에어 게임, 남자골프의 강국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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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회 디 오픈이 열릴 로열 버크데일 골프장의 18번홀 스탠드 전경.


19세기의 골프코스를 상상하며

157년 전, 1860년에 제1회 대회가 개최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디 오픈이 이번 주에 잉글랜드의 로열 버크데일 골프클럽에서 개최된다. 7,156야드에 파70으로 플레이 될 제146회 디 오픈을 재미있게 시청하려면 상상력이 좀 필요하다.

우선 비바람이 몰아치는 19세기의 골프코스를 상상해야 한다. 바람 부는 바닷가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페어웨이는 딱딱하고 굴곡이 심해서 공이 끝없이 굴러간다. 페어웨이 가운데에 떨어진 공도 어디에 멈출지 예측하기 어렵다. 잘 친 공이 러프나 항아리 벙커로 가기도 하고, 페어웨이에 멈추더라도 내리막 경사일지 오르막 경사일지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수들은 좋은 샷을 하고도 자기의 공으로 다가가면서 어떤 라이에 공이 멈췄을지 불안해 한다.

퍼팅그린도 콘크리트 같이 딱딱해서 그린 위에 떨어진 공이 굴러서 퍼팅그린 밖으로 나가 버린다. 그래서 선수들은 공을 띄우지 않고 굴러서 멈출 위치를 계산하여 낮은 공을 치게 된다. 결국 힘과 정확성만으로 승부하는 골프가 아니고 상상력, 운, 경험, 지혜가 필요한 게임이다. 그래서 디 오픈의 골프를 ‘그라운드 게임(Ground Game)’이라고 하고, 높은 공을 쳐야 유리한 미국의 골프를 ‘에어 게임(Air Game)’이라고 부른다. 또한 다른 메이저 대회보다 경험 있는 노장 골퍼가 우승할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은 대회이다.

바람과의 싸움

디 오픈에서 공을 낮게 쳐야 하는 이유는 강한 바닷바람 때문이기도 하다. 스코트랜드에는 “바람이 없으면 골프가 아니다” 라는 말이 있다. 바람 때문에 골프가 어려워지지만 또 바람이 없으면 재미가 없다는 뜻이다. 자기의 힘을 믿고 바람과 싸워서 이기려 한다면 그 골퍼는 크게 패배하게 되고, 바람을 이용하거나 타협하는 지혜를 가진 선수는 성적이 좋아진다. 인간이 자연의 힘을 이길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쳐 주는 대회가 디 오픈인 것이다.

결국 디 오픈이 재미 있으려면 우선 코스가 19세기 코스처럼 딱딱하게 말라있어야 하고 때때로 비바람이 몰아쳐야 한다. 아름다운 초록색 페어웨이는 필요 없고, 단단한 페어웨이와 누렇게 자란 긴 러프가 필요하다. 선수들은 모든 종류의 샷을 쳐야 하므로 약점을 감출 수가 없으며 바람을 읽는 자만이 우승할 수 있다.

만일 경기 당일에 코스상태가 소프트하고, 바람이 없다면 미국 골프처럼 에어게임으로 변해서 디 오픈만의 그라운드 게임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는 밋밋한 대회가 될 것이다. 로열 버크데일에서 열렸던 1998년 디 오픈의 우승 스코어는 이븐파 280타였고, 2008년에는 3오버파 283타가 우승, 12오버파가 7등이었으니 올해의 우승스코어도 이븐파 근처로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소프트한 코스에 바람이 없어서 에어게임의 조건이 되면 코스는 선수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게 될 것이고, 10언더파를 훌쩍 넘기는 우승스코어가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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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버크데일 골프장의 2번홀 그린. 전형적인 영국의 링크스 코스로 '그라운드 게임'이 승패의 관건이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출전선수가 많은 대한민국


우리나라는 8명의 선수들이 출전자격을 얻었다. 미국, 영국, 호주(11명), 남아공(9명)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은 것으로 대한민국이 남자골프의 강국임을 증명하고 있다. 한국 다음으로는 스페인, 일본이 4명으로 뒤를 따르고 있다.

한국선수들을 보면 장이근, 김기환이 한국오픈에서, 김경태가 미즈노오픈에서, 강성훈이 PGA 퀴큰론스에서, 송영한이 싱가포르오픈에서 각각 출전권을 받았고, 왕정훈이 2016 유로피안 투어 상금랭킹으로, 안병훈이 2015 BWW PGA 챔피언 자격으로, 김시우가 2017 플레이어스 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한다. 김경태와 강성훈이 30세가 되었을 뿐이고 다른 선수들은 모두 20대 초중반의 유망주들이다. 사실 출전만으로도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우리 선수들 모두가 선전해 줄 것을 바라지만, 강성훈 장이근 김기환 송영한 김시우는 디 오픈에 처음 출전하므로 컷을 통과하면 크게 칭찬해야 한다. 링스 코스에 가면 잔디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웨지샷을 치더라도 디봇의 크기가 달라지면서 스핀의 양도 변하여 다른 구질의 공이 나온다. 처음 가는 선수에게는 그런 미묘한 차이를 파악할 시간적 여유가 없고, 확고한 게임플랜을 세울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경험하지 못했던 강한 바람 때문에 컷 통과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기대가 되는 선수는 역시 맏형 김경태이다. 일본 투어에서 13승, 아시안 투어 2승 등을 기록하고 있는 김경태는 디 오픈에 여섯 번째 출전하므로 링스 코스의 경험이 믿음직한 자산이다. 안병훈이 다섯 번째, 왕정훈도 두 번째 출전이므로 컷 통과를 기대할 만하다. 2008년 이곳에서 열린 디 오픈 때 최경주가 2라운드 후 선두에 나선 바 있다. 8명 중 그런 놀라움을 선사할 해 줄 선수가 나왔으면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티샷이 페어웨이를 지키는 것인데 누가 바람 아래로 샷을 하는 지혜를 발휘할지 궁금하다. 최고의 샷 기술을 이미 갖춘 우리 선수들에게 당부한다. 바람과 싸우지 말고, 땅을 이용할 것이며, 상상력을 발휘하여 샷을 창조해 내라고.

* 박노승 씨는 골프대디였고 미국 PGA 클래스A의 어프렌티스 과정을 거쳤다. 2015년 R&A가 주관한 룰 테스트 레벨 3에 합격한 국제 심판으로서 현재 대한골프협회(KGA)의 경기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건국대 대학원의 골프산업학과에서 골프역사와 룰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위대한 골퍼들의 스토리를 정리한 저서 “더멀리 더 가까이” (2013), “더 골퍼” (2016)를 발간한 골프역사가이기도 하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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