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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건식의 도의상마] 금수저 스포츠와 흙수저 무예

“대한체육회에 등록되어 있지 않아 신청이 어렵습니다.”(시·도체육회)
“대한체육회에 신청하려면, 시·도체육회에 등록하고 조건을 갖추고 오세요.”(대한체육회)

한 무예단체가 시·도체육회와 대한체육회에 단체 등록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다. 이 단체는 지난해 대한체육회 준회원단체였는데 시·도협회를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결격단체로 지정되었다. 결격사유를 보완하기 위해 시·도체육회에 신청을 하니 위와 같은 답변을 들은 것이다. 다시 대한체육회에 문의하니 또 시·도체육회로 가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여기저기에 묘한 규정들이 존재했다. 이쯤이면 불만이 폭발할 만하다.

지난해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통합하면서 체육단체가 일원화되었고, 통합대한체육회는 93개의 종목단체를 이끄는 거대 조직이 되었다. 하지만 체육회는 통합 이후 칼질을 시작했다. 24개 단체를 결격단체로 지정한 것이다. 대부분이 ‘시·도요건 불충족’이 주된 사유였다.

이 24개 단체 중 무예는 11개나 된다. 체육회 정회원으로는 유도, 태권도, 검도, 택견, 씨름, 우슈, 궁도, 국학기공 등만 살아남았고, 공수도의 경우는 조건은 갖추었으나 관리단체지정 상태여서 보류하다가 퇴출되었으며, 요가와 특공무술은 인정단체가 되었다. 체육회에 20여개의 무예 단체 중 절반이 결격단체로 사실상 퇴출된 것이다.

규정에 의거해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당연히 퇴출이 맞다. 그러나 상급단체의 통합과정이 있었고, 결격사항이 있다고 해도 일정기간 유예기간을 두어 다시 등급평가를 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체육회는 냉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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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통합체육회가 발표한 가맹단체 등급조정내용


그리고 해가 바뀐 올해 체육회는 아무런 후속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결격단체뿐 아니라, 신생 스포츠단체나 무예들도 제도권 진입은커녕 조건을 갖추는데도 힘겨운 상황이 됐다. 심지어 지난해 결격단체가 된 무에타이, 킥복싱, 삼보 등은 월드게임과 실내무도아시안게임, 그리고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의 종목으로 당장 올해와 내년 국가대표를 파견해야 하는데 큰 지장이 따르고 있다.

결격사유에 대해 보완할 기회도 주지 않으면서, 통합대한체육회나 시·도체육회는 무관심으로 아무 답을 주지 않고 있다. 이에 무예단체나 신생스포츠단체들은 과거 체육회나 생활체육회가 해 왔던 기득권 종목의 갑질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국은 어떤 상황일까? 동북아 국가들의 상징은 무예다.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과 달리, 중국과 일본은 어떻게 관리하고 있을까? 심지어 북한에서는 어떠할까?(이 글에서는 중국은 무술, 일본은 무도, 한국은 무예라고 표현했다)

중국, 중국무술협회와 중국기공협회가 장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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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개최된 태극권총회행사 중 시범장면. [사진=중국무술협회]


중국은 무술의 발상지로 이야기할 만큼 수천 가지의 무술이 존재해왔다. 이렇게 분파된 무술들은 현재 ‘우슈(武術)’로 통합해 사용하고 있다. 중국무술은 원래 무예(武藝), 기격(技擊), 기교(技巧)라 불렀다. 이것이 국기(國技)라고 하였다가, 1928년 중국무술관이 성립된 이후에는 국술(國術)이란 용어로 통일되었다. 이 시기에 국술이란 용어는 ‘중국무술’의 줄임말로 쓰였으나 현재는 대만에서만 사용하고 있다.

중국은 1990년 아시아경기대회 이후 ‘우슈(武術, Wushu)’라는 고유명사로 사용하고 있다. ‘우슈’란 ??武術?? 의 중국 표준어 발음인 ??wushu??를 말한다.

이러한 무술을 총괄하는 체육단체는 중국체육의 총괄기구인 국가체육총국이다. 올림픽종목을 비롯, 우리의 생활체육과 같은 건강 중심의 전민건신(全民健身, 대중체육행사), 노동자체육, 농민체육, 소수민족체육 등 여러 분야의 스포츠를 진흥하고 있다. 또한 종목관리는 32개 올림픽 종목과 39개 비올림픽종목으로 구분해 이뤄진다. 올림픽종목이 아닌 무예의 경우에는 우슈와 기공으로 구분해 우슈의 경우 중국우슈협회가 총괄하고, 기공은 중국건신기공협회가 담당한다.

중국우슈협회는 (전통)우슈뿐 아니라 외래무예까지 관리한다. 무예의 표준화, 국제화, 무예의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 중국스포츠연맹과 중국올림픽위원회에 가맹돼 있다.

중국건신기공협회는 기공의 홍보, 보급 및 연구가 주 업무다. 중국스포츠연맹과 대중을 연결하는 가교역할도 한다. 여기에 소수민족체육정책에 대해서도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 중국은 56개 민족 중 한족이 91% 정도를 차지하고, 나머지 55개의 소수민족은 9%수준이다. 하지만 정책적으로 소수민족이 보유한 고유의 민족체육을 보존하고 장려한다. 이는 조선족의 씨름이나 활쏘기, 그네뛰기가 중국정부에 의해 보존되고 진흥되는 모습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중국정부는 4년마다 열리는 중국소수민족체육대회에 국제대회 못지않게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다. 이 대회가 소수민족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중화인민으로서 하나로 만든다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일본, 일본고무도협회가 장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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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고무도연무대회의 포스터. [사진=일본고무도협회]


일본의 무도(武道, Budo)는 19세기 말 일찍이 서구사회에 전파되었다. 세계의 많은 무예인들이 일본무도를 상징처럼 여기고, 그 수련체계에 매료되고 있다. 이런 일본무도의 세계화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일본은 일본체육협회가 체육단체를 총괄하고 있다. 새로운 스포츠를 둘러싼 환경이 크게 변화하는 가운데 일본체육협회는 "스포츠를 보급·진흥하고 국민 체력 향상을 도모" 하는 것 외에도 "스포츠가 갖는 가치와 중요성을 널리 알려 국민이 사는 힘의 육성과 활력 있는 사회의 구축에 기여 "하는 것을 주된 과제로 삼고 있다.

일본체육협회는 현재 59개 단체가 가맹되어 있다. 여기에는 올림픽종목과 아시안게임 종목, 일본의 무예 중 활발하게 보급되어 있는 종목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무예종목은 일본의 무예를 보존하고 진흥하기 위해 정책으로 설립된 일본고무도협회에 소속돼 있다. 고무도협회에는 현재 유술(柔術) 유파 18개, 검술 유파 22개, 거합술과 발도술 10개, 창술 4개, 장출과 봉술 3개, 나기나다 5개, 공수와 류쿠무술 6개, 체술 2개, 포술 3개, 기타 무예유파가 6개 등 79대의 무예유파가 등록되어 있다.

일본의 고무도는 헤이안 말기에서 가마쿠라 시대, 무로마치 시대를 걸쳐 호신술과 겨루기 방법으로 생겨났다. 맨손 무예인 유술과 무기를 사용하는 검술이 주류를 이루었다. 무로마치 말기에는 궁술이 56개, 검술이 718개, 창술이 146개, 유술이 179개의 유파가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메이지 시대 이후 폐도령이 내려지면서 무사계급이 붕괴되고 새로운 현대식 군체제로 개편되면서 무예의 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1978년 일본무도관에서 제1회 전일본고무도연무대회가 개최되면서 고무도에 대한 중앙기관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재단법인 일본무도관이 중심이 되어 고무도 유파 대표들 간의 협의체가 발족되어 1979년 일본고무도를 총괄하는 일본고무도협회가 설립되었다.

고무도는 현대 일본무도의 모체이다. 일본은 이 고무도가 일본무도의 진흥에 큰 역할을 하고 있고, 일본의 소중한 국기라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동양철학과 일본의 신도사조, 국학사상과도 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일본민족의 계몽에 기여했다고 인식한다. 이러한 고무도진흥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일본고무도협회는 각 유파의 교류, 연무 공개, 학술 연구, 전승자 양성 교육, 평생 교육 등의 주요사업을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에게 일본고무도 정신과 기법을 전수하는 등 국민교육에 노력하고 있다.

북한, ‘무술연마 민족체육’정책으로 장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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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추석씨름대회 장면. [사진=KBS ‘남북의 창’]


북한의 체육지도위원회는 1997년 잠시 내각 체육성으로 개칭되기도 했지만 2000년 이후 다시 체육지도위원회란 명칭을 쓰고 있다. 북한에서는 올림픽위원회가 독립된 조직체로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내각의 체육지도위원회위원장과 같은 급으로 올림픽위원장을 임명한다. 체육지도위원회 산하의 경기종목협회는 30여 개가 있다.

그런데 주체사상 탓인지 북한은 유독 민족체육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사회에 가장 많이 보급되고 있는 민족체육 종목으로는 씨름, 그네뛰기, 널뛰기, 줄당기기, 활쏘기 등이 있다. 그들은 1945년 11월 1일 북조선체육동맹을 결성하고 체육동맹 안에 필요한 부서들을 두어 민족체육을 통일적으로 조직하여 지도했다. 1946년 6월에는 씨름을 비롯한 민족체육종목분과를 체육지도위원회에 제시했다. 이후 1990년대 중반부터민족체육이 전국적으로 장려되기 시작했다.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1993년부터 매년 2차례에 걸쳐 연(鳶)경연대회가 개최되었으며, 1994년부터는 전국 윷놀이경기가 개최되고 있다.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전국근로자들의 텔레비죤민족씨름경기’가 진행되었으며, 2002년부터 ‘대황소상 전국민족씨름경기대회’가 TV를 통해 방영되고 있다.

특히 북한에서는 민족체육을 크게 ‘체력단련 민족체육’, ‘지능계발 민족체육’, ‘무술연마 민족체육’으로 구분하고 있다. ‘체력단련 민족체육’에는 격구, 그네뛰기, 널뛰기, 달리기, 말타기, 밭줄당기기, 씨름 등이 있으며, ‘무술연마 민족체육’에는 날파람, 수박, 창쓰기, 칼쓰기, 태권도, 택견, 활쏘기 등이 있다. 또한 ‘지능계발 민족체육’으로 바둑, 장기 등이 장려되고 있다.

국제스포츠계, 15개의 컴뱃스포츠가 국제종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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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스포츠로 인정받은 컴뱃스포츠. [사진=스포츠어코드 홈페이지]


이렇게 동북아 국가들만 봐도 무예진흥에 있어서는 한국과 차이가 많다. 그렇다면 국제스포츠계에서 무예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 우리는 스포츠어코드의 활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포츠어코드는 지난 4월 덴마크의 총회에서 다시 옛 명칭인 ‘GAISF(국제스포츠연맹기구, Global Association of International Sports Federations)’로 변경됐다. 스포츠어코드 조직의 정체성 혼란을 방지하고, 국제 스포츠계 역할을 더욱 명확히 수행하기 위해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이다.

GAISF가 국제스포츠로 인정하는 종목은 92개다. 여기에는 독립스포츠인정단체총연합(AIMS), 하계올림픽국제경기연맹연합(ASOIF), 동계올림픽종목협의회(ALOWF), IOC인정국제스포츠연맹(ARISF)이 있다. GAISF 산하에 무예와 관련된 컴뱃스포츠(combat sports)위원회에는 15개 종목이 속해 있다. AOSIF에 복싱, 레슬링, 펜싱, 태권도, 유도 등 5개, ARISF에 가라테, 무에타이, 우슈 3개, 그리고 AIMS에 아이키도, 검도, 삼보, 킥복싱, 주짓수, 사바테, 스모 7개 종목이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IOC인정국제스포츠연맹에 가라테, 무에타이, 우슈 3개 종목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올림픽 개최지가 선정될 때마다 후보종목군에 올라갈 수 있는데 실제로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가라테가 정식종목으로 열린다.

여기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 대한체육회는 GAISF의 92개 종목에 우리나라의 전통종목까지 합쳐 최소한 100여 개의 회원단체를 목표로 해야 한다. 유력한 국제기구가 인정하고 있는 아이키도, 삼보, 킥복싱, 주짓수, 사바테, 스모, 무에타이 종목은 아직 체육회 가맹단체가 아니다. 이 중에서 킥복싱, 삼보, 무에타이는 결격단체로 사실상 퇴출된 상태다. 그리고 우리의 무예라 불리는 합기도와 용무도도 결격단체가 되었고, 실내무도아시안게임과 2018자카르타 아시안게임종목인 크라쉬나 주짓수도 가맹단체 신청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대한체육회가 통합을 기치로 생활체육회와 하나가 됐는데, 회원단체를 축소하는 것은 통합에 위배되는 내용이다. 기존 단체들이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갑질을 부린 것이라는 비난에 설득력이 실린다.

현장에서는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회에 중복된 종목만 통합이 이루어졌어야 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아직 기반이 조성되지 않았던 생활체육회만의 종목들을 통합 이후 체육회 잣대로 퇴출한 것은 정말 안타깝다. 대한체육회가 생활체육 육성이 아닌 기존 체육회가 추구해 온 전문체육 육성에 치중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대한체육회는 지금이라도 최소한 가맹단체에 대한 기준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다시 고민해야 한다.

무예진흥정책에 답은 없는가?

지난 박근혜정부의 체육은 유신 때보다 더 심한 통제에, 온갖 정치적인 개입으로 국제적인 망신도 받았다. 그런 아픔 속에서 새로운 통합대한체육회장이 선출되었고, 새 집행부가 꾸려졌다. 그리고 촛불민심으로 정권도 바뀌었다.

그런데 지금 대한체육회는 무엇 하나 해결하려는 의지마저 없어 보인다. 아직도 내부 갈등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고, 문체부의 개입이 없는 데도 체육진흥에 대한 정책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개혁보다는 규정에 얽매이며, 움추려 있다. 보은인사 등 선거에서 이긴 사람들만 챙긴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이런 대한체육회가 안정을 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도 체육정책에 있어 큰 변화가 예상되지 않는다. 일부 국회의원과 전문가 들이 학교체육전문가라는 이유로 학교체육진흥에 대해 고민한 흔적은 보인다. 물론 학교체육을 바로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무예계 문제도 빨리 해결해야 한다. 현재 무예종목들의 자립도는 낮고, 수련인구도 적다. 여기에는 무예단체의 내부갈등도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대한체육회에는 분명한 잣대가 있다. 무예단체들은 그 잣대를 충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노력한다면 정부와 대한체육회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대한체육회는 무예종목들이 시·도체육회의 가맹절차를 준수하도록 이끌고, 규정에 의거해 가맹단체로 받아들여야 한다. 정부는 자립도가 낮고 규모는 작지만 육성해야 할 가치가 있는 종목에 대해서는 일본고무도협회나 중국무술(우슈)협회, 그리고 북한의 무술연마민족체육과 같은 진흥책을 내놓아야 한다. ‘스포츠는 금수저, 무예는 흙수저’라는 이야기가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무예인들도 각성해야 한다. 예를 중시하고, 자존심이 강한 무예인들이 삼삼오오 나눠져 세상을 감상할 때가 아니다.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야 산다.

* 글쓴이 허건식은 체육학박사로 예원예술대 특임교수와 WMC 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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