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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전드 오브 풋볼] 축구 종주국의 유일한 월드컵 우승, 1966 잉글랜드 대회 우승 주역 3인방

[헤럴드경제 스포츠팀=김유미 기자] 월드컵에서 가장 많이 우승을 차지한 팀은 어느 국가일까. 1위는 바로 5회 우승에 빛나는 브라질, 2위는 4회 우승의 독일과 이탈리아다. 이들의 뒤를 이어 우루과이, 아르헨티나가 각각 2번씩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다.

정작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의 우승은 단 한 번뿐이다. 종주국의 자부심을 갖고 있는 잉글랜드 축구팬들에게 어쩌면 역린(逆鱗)과도 같은 존재가 바로 월드컵 우승횟수이다. 그나마도 안방에서 달성했다. 잉글랜드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월드컵 우승에 성공했다. 50년도 더 지난 옛날이야기가 됐지만 여전히 잉글랜드 국가대표 팀의 홈구장 웸블리 스타디움에는 당시 대표 팀 감독이었던 보비 무어의 동상을 비롯해 당시의 영광적인 순간들이 곳곳에 걸려있다. 이번 레전드 오브 풋볼에서는 축구 종주국의 유일한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던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우승 주역 3인방을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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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뱅크스는 좀처럼 실점을 허용하지 않는 든든한 수문장이었다. 레스터시티에서 활약하던 당시의 뱅크스.[사진=FIFA 홈페이지]


고든 뱅크스 - 야신을 뛰어넘을 유일무이한 골키퍼

뛰어난 선방 능력으로 ‘잉글랜드의 은행(Banks)’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고든 뱅크스가 첫 번째 주인공이다. 뱅크스는 20세기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평가될 만큼 좀처럼 골을 허용하지 않는 골키퍼였다. 그는 1937년 잉글랜드 출생으로 젊은 시절 탄광 광부, 벽돌공 등으로 일하던 중 우연히 아마추어 경기에 출전해 재능을 발견했다. 1958년에는 체스터필드의 프로 선수로 데뷔해 한 시즌을 보냈고 레스터시티로 이적해 8시즌을 보냈다.

레스터시티에 몸담고 있던 1963년에는 A대표팀에 처음 차출되어 데뷔전을 치렀고, 1972년까지 10년 동안 잉글랜드 국가대표 팀의 수문장으로 활약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 출전해 조별리그부터 준결승까지 443분 무실점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고, 결승에서 프란츠 베켄바워 등이 속한 서독을 4-2로 꺾고 사상 첫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레스터시티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내던 중 리버풀에서 이적 제의가 왔지만 스토크시티의 통 큰 베팅으로 방향을 돌렸다. 스토크시티에서는 7시즌을 뛰었고 이 때 유로 1968,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했다. 멕시코 월드컵 당시 조별리그에서 브라질과 만나 펠레의 헤더슈팅을 선방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이 장면은 지금도 유투브 등에서 동영상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잉글랜드는 8강에 올랐지만 뱅크스의 부상으로 2-3으로 패하며 탈락했다.

1972년 스토크시티에서 한창 전성기를 보내던 도중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다. 교통사고로 뱅크스가 운전하던 자동차가 전복되면서 오른쪽 눈을 잃었고 골키퍼에게 치명적인 부상으로 인해 그는 선수 커리어를 끝내야 했다. 사고가 있은 후 5년이 흘렀을 때 뱅크스는 재기에 도전했다. 미국으로 날아가 플로리다에 연고를 둔 포트 로더데일 스트라이커스에서 두 시즌 동안 37경기를 소화했고, 한창 때에 비하면 기량이 떨어진 상태였음에도 최우수 골키퍼 상을 수상하며 전설의 면모를 보였다. 뱅크스는 77-78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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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사냥꾼 로저 헌트는 리버풀의 레전드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사진=리버풀FC 홈페이지]


로저 헌트 - 리버풀의 전설, 골 사냥꾼(Hunter) 헌트

두 번째 주인공은 타고난 득점 감각을 자랑했던 로저 헌트(1938년생)다. 헌트는 1958년 스무 살에 리버풀에서 프로 선수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최전방 스트라이커로서 득점 능력을 갖췄고 유연성이 좋아서 때때로 묘기에 가까운 어려운 슈팅도 선보였다.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터트리며 떠올랐지만 61-62시즌 리버풀이 2부 리그로 강등을 당했고, 이 시즌 헌트는 41경기에서 41골을 기록하면서 리버풀의 1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다.

헌트는 승격한 지 2년이 지난 63-64, 65-66시즌 리버풀이 1부 리그에서 우승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30골 이상을 터트렸고 리버풀의 FA컵 우승과 64년부터 3년 연속 커뮤니티 실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국가대표 커리어는 길지 않았다. 총 34번의 A매치에 나섰고 18골을 기록했다. 2부 리그에서 뛰던 시절에도 국가대표 팀에 발탁되어 1962년 칠레 월드컵 명단에 속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자국에서 열린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조별리그부터 결승까지 모든 경기를 소화했고 3골을 기록하면서 우승의 주역이 됐다.

그는 리버풀에서만 404경기 245골을 기록한 레전드다. 월드컵 후 리버풀의 빌 샹클리 감독은 리빌딩을 위해 젊은 선수들로 선수단을 꾸리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헌트는 리버풀을 떠나 볼튼 원더러스, 헬레닉 등에서 활동하며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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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비 찰튼은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 잉글랜드의 전설로 통한다.[사진=FIFA 홈페이지]


보비 찰튼 - 잉글랜드의 영웅


앞서 뮌헨 참사를 겪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재건한 잉글랜드의 살아있는 전설로 한 차례 소개한 바 있는 보비 찰튼이 마지막 주인공이다. 보비 찰튼은 최고의 미드필더로 꼽히는 선수로, ‘그라운드의 노동자’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헌신적인 자세와 많은 활동량을 자랑했다.

찰튼은 지역 유소년 팀에서 활동하던 중 맨유 수석코치의 눈에 띄어 맨유에 입단했다. 19살의 나이로 1군 무대에 데뷔해 데뷔전에서 멀티골을 터트렸고 해당 시즌 리그에서 10골을 기록해 팀의 리그 2연패를 도왔다. 다음 시즌 리그 2위, 유러피언 컵 4강에 올랐지만 뮌헨 참사를 겪은 뒤 리그에서 9위까지 추락했다. 이후 찰튼을 비롯한 선수단은 수년에 걸쳐 명가를 재건했지만 힘든 시기를 보냈다.

찰튼은 1958년 A대표 팀에 데뷔한 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 출장한다. 잉글랜드 월드컵은 북한이 돌풍을 일으키고, 이탈리아가 조별예선에서 탈락하는 등 이변이 많은 대회였다. 잉글랜드는 조별리그에서 우루과이, 멕시코, 프랑스와 한 조에 속했고 멕시코와 프랑스를 상대로 승리하면서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잉글랜드는 4강에서 북한을 어렵게 꺾고 올라온 포르투갈과 맞붙었는데 당시 찰튼은 전반 30분과 후반 35분 득점해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이 월드컵에서 득점왕은 포르투갈의 에우제비오가 차지했지만 3골을 기록한 찰튼은 골든볼과 1966년 발롱도르를 수상하게 된다. 또한 올해의 잉글랜드 선수상 수상의 영예도 안았다.

축구 종주국의 유일한 월드컵 우승을 이끈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우승 주역 3인방에 대해서는 ‘축덕들이 만드는 팟캐스트 해축야화 53화’를 통해 자세히 들을 수 있다. 해축야화는 매주 금요일에 1부가, 토요일에 2부가 업로드 되며, 팟캐스트 어플 ‘팟빵’을 통해 들을 수 있다.

* 레전드 오브 풋볼은 축구 팟캐스트 ‘해축야화’의 한 코너입니다. 아래 URL을 클릭하면 바로 방송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0698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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